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다시 뜨겁게!] 이방인의 나라 스위스…'국가란 무엇인가'

알바니아, 코소보, 스위스 그리고 세르비아

[취재파일-다시 뜨겁게!] 이방인의 나라 스위스…'국가란 무엇인가'
월드컵은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 중 하나지만 종종 살벌한 전쟁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돌파' '후방침투' '역습' 등 전략전술용어를 중계방송에서 듣다 보면 전투와 가장 비슷한 종목이 축구라는 생각도 듭니다. 월드컵은 실제 전쟁사(戰爭史)와 더불어 이야기 거리가 더 풍부해지기도 하죠. 축구 경기는 때론 대리전(代理戰)입니다.

교통의 발달, 문화 융합, 경제 통합 등으로 국경의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현대 국민국가가 유지되는 건 월드컵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죠. 하지만 이 농담 속엔 적어도 월드컵 현장에선 아직 국가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뜻도 녹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 4명 중 1명이 외국인인 나라, 스위스에선 어떨까요.

● '이방인의 나라' 스위스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국적 취득이 까다로운 나라로 유명합니다. 유럽연합(EU) 가입국도 아닙니다. 이렇게 국경이 높은 데도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로 꼽힙니다. 공용어만 해도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만어 등 4개에 이릅니다.

인력을 중시하고, 능력을 갖춘 인재(人才)라면 받아들이는 스위스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역사가 증명합니다. 독일 출신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물리학자), 헤르만 헤세(소설가), 프리드리히 니체(철학자), 또 영국 출신의 찰리 채플린(영화인)과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수) 등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스위스에서 업적을 일굴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헤세, 아인슈타인, 채플린. 태어난 곳을 떠나 스위스에서 업적을 이룬 위인들
스위스 기업 3개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이 창립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를 설립한 앙리 네슬레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민 온 약사였고, 스위스 시계회사 스와치는 레바논 출신 니콜라스 하이에크가 세웠습니다.

축구 선수도 예외가 아닙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스위스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든 23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명이 외국 출신이거나 이민자의 후손이었습니다. 이번 대표팀에도 스위스 국적을 '선택'해 스위스 대표팀의 운명을 바꾼 이들이 있습니다.

● 자카와 샤키리…스위스의 운명을 바꾼 주인공들

그라니트 자카(아스날)가 대표적입니다. 자카의 부모는 모두 알바니아 사람입니다. 쟈카가 스위스 축구대표 선수가 된 건 '발칸의 화약고'로 불리는 코소보의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코소보는 1913년까지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이후 여러 차례 분할되며 알바니아, 이탈리아, 유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세르비아로 국적이 바뀝니다.

알바니아인들은 지속적으로 '코소보 독립운동'을 펼쳤는데, 쟈카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대학생 시절이던 1986년 코소보 독립운동을 펼치다 3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된 뒤 코소보를 둘러싼 갈등은 더 커졌습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무력으로 독립운동을 진압했습니다. 나아가 알바니아인의 취업을 제한하고 차별했습니다. 쟈카의 부모는 이 무렵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고 1992년 쟈카를 낳았습니다.
스위스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자카
알바니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나가던 쟈카는 청소년기에 기로에 섭니다.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챈 스위스 축구협회가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선 겁니다. 결국 한 살 위 친형, 타울란트 자카가 알바니아 대표 선수가 된 것과 달리 쟈카는 스위스 대표팀을 선택합니다. 그렇다고 자카가 알바니아를 배신한 건 아닙니다. 자카는 지금도 "나는 온전히 알바니아인이다"고 말합니다.

1991년 코소보에서 태어난 세르단 샤키리(스토크시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샤키리는 "나는 스위스인으로 살고 있지만 내 몸에는 코소보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샤키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알바니아와 경기에 앞서 스위스 국가 연주 당시 입을 굳게 다물었고, 골을 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축구화에는 코소보, 알바니아, 스위스 3개의 국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샤키리의 축구화. 스위스 국기 아래 코소보와 알바니아 국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1990년 스위스로 이민 온 발론 베라미(우디네세)와 블레림 제마일리(볼로냐)까지. 하나같이 A매치만 60경기 넘게 뛴 스위스 전력의 주축입니다. 이들이 모두 알바니아 대표가 됐다면 스위스의 월드컵 운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 운명의 상대, 세르비아를 만나다

알바니아 피가 흐르는 이들에게 스위스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고 축구 선수로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들은 스위스 대표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덕분에 스위스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16강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명이 참 얄궂습니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스위스가 세르비아와 한 조에 속한 겁니다. 세르비아의 억압을 피해 알바니아를 떠났던 이들이 스위스 유니폼을 입고 '운명의 상대'와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겁니다. 우승 후보 브라질, 복병 코스타리카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스위스와 세르비아 모두 반드시 승리를 챙겨야 하는 경기입니다. 해외 도박 사이트의 예상을 종합해보면 스위스가 이길 확률이 37%, 세르비아가 승리할 확률은 33%로 초박빙입니다. 정말 '전쟁' 같은 경기가 펼쳐질 겁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