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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공미술은 어떻게 '도심 흉물'이 됐나

[취재파일] 공공미술은 어떻게 '도심 흉물'이 됐나

'자기 표절' '저질 작품' 수두룩 그들만의 리그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18.05.26 09:09 수정 2018.05.28 17: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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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한 상가건물 앞에 사람 키 보다 큰 조형물이 하나 있다. 주변엔 담배꽁초와 캔이 굴러다니고 표면엔 때가 들러붙어 있다. 광고지가 붙었던 테이프 흔적도 많다. 조형물을 가리켜 주변 상인들은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다. 노숙자들이 오줌 눠서 지린내가 얼마나 나는지 그야말로 애물단지”라고 말한다. 그들 말처럼, 조형물에 다가가니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대문구 다른 상가건물 앞에도 5m 50cm 높이 조형물이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뾰족 솟아오른 주 조형물 주위로 둥근 공 모양 부속품이 3개 있다. 원래는 4개여야 하지만 하나가 통째로 떨어져나갔다. 그 흔적이 그대로 방치돼있다. 서대문구 한 건물 앞 ‘책 읽는 사람’을 형상화한 조형물의 ‘책’엔 보기 민망한 낙서가 가득했다. 서울 공공미술의 현주소다.(관련기사- ▶ 낙서에 방뇨까지…도심 속 흉물로 전락한 '공공미술')

● '흉물' 된 공공미술품…'그림'으로 사들여 꽁꽁 숨겨놓기도
[취재파일] 공공미술은 어떻게 ‘도심 흉물’이 됐나문화예술진흥법은 연면적 1만㎡ 이상 건축물을 짓는 건축주에게 건축비 일부를 미술품 설치에 쓰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다.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늘리고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한국 공공미술 시스템의 근간이다. 2011년부터는 미술품 설치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형 건물 앞을 지날 때 조각 작품을 흔히 보게 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취재파일] 공공미술은 어떻게 ‘도심 흉물’이 됐나이렇게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공공미술품)이 현재 전국에 1만 7,019개 있지만 상당수가 앞선 경우처럼 망가지거나 관리되지 않아 흉물로 방치돼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25개 구에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 3,400여 개 중 23개 구에서 지난해에만 183개가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제도 정비 전 ‘권고 사항’으로 설치돼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술품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미술품이 훼손·용도변경 되거나 분실됐을 땐 시·도지사가 해당 건축주에게 원상회복을 명령하게 돼 있지만 건축주 잘못일 때만 해당된다. 누가 훼손했는지 따지기도 어려울뿐더러 원상회복을 안 해도 건축주가 받는 처벌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관계자는 “공공미술이라지만 건축주의 사유재산이기에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난감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공공미술의 주류를 이뤄온 조각보다 회화나 실내 설치미술을 택하는 건축주도 늘고 있다. “공간만 차지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손 타 훼손되기 쉬운 조각보다 낫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개발한 마곡지구의 경우, 2016년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 35개 중 회화는 2개뿐이었지만 2017년엔 31개 미술품 중 절반 넘는 18개가 회화였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기자가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현황’을 확인해 찾아간 마곡지구의 한 ‘회화 설치 건물’은 일반인 출입이 아예 불가능했다. 공공이 즐길 수 없는 공공미술품이라면 법 취지는 무색해진다.

● '자기 표절'도 문제…'복수 설치' 작가 60여 명, 18점 수주한 부부 작가도

한 작가는 거대한 크기의 사람 형상 조각으로 유명하다. 3m 넘는 높이의 사람이 허리를 숙인 모습을 형상화 한 이 작가의 작품은 서울 용산과 마포에도 있고 부산 기장과 전북 익산에도 있다. 허리를 폈느냐 굽혔느냐, 손을 뻗었느냐 말았느냐, 무엇을 들었느냐 맨손이냐의 변주가 있고 높낮이가 다를 뿐 대부분 같은 양감을 하고 한 가지 색으로 도색돼있다.

어떤 작가는 한 사람 또는 가족이 바람을 맞으며 움직이는 모습을 한 만화적 형상 조각으로 유명하다. 이 작가 작품 역시 서울에도, 대구에도, 경기 광명에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작가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을 원해서, 작가에게 노골적 복제를 부탁하는 건 건축주의 선택일 수 있다. 파격 대신 안전함, 낯선 것 보단 낯익음이 편할 수 있다. 이에 부응하는 작가의 선택 역시 존중할 수 있다.

문제는 특정 작가의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건축물 미술시장을 과점하는 게 여러 작가의 수준 높은 창작을 지원하려는 제도 취지와 안 맞는다는 데 있다. 서울의 경우 최근 3년 동안 건축물 미술작품 354점이 설치됐는데 작품을 두 점 이상 중복 설치한 작가가 62명에 이른다. 한 부부 조각가는 이 기간 18점을 함께 수주했다. 8점 씩 수주한 작가도 2명이다. 왕성한 창작 능력이라고만 보기엔 찜찜하다.

이렇게 설치되는 작품은 가격도 한두 푼이 아니다. 건축물 미술품을 의무설치 해야 할 최소 면적인 1만㎡ 크기 건물을 짓는다 할 때 올해 기준으론 1,85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3천만 원을 주고 작품을 설치해야 한다. 건축비에 맞춰 기계적으로 작품 가액을 매겨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작품의 예술성이나 시장 가치와는 관련이 없다. 길 가다 보게 되는 저 흔한 공공미술품이 거래 가능하다 할 때 수 억 원을 주고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 그들만의 리그 돼 버린 '공공미술 시장'…"진짜 예술가는 외면"

때로 재벌들의 탈세까지 돕는 일부 화랑들이 이런 ‘시장’을 그냥 둘 리 없다. 미술계에서 공공미술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다. 화랑이 브로커 역할을 해 건축주와 특정 건축가를 거간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건 공공연한 현실이다.

문체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7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전체 미술시장 거래액은 3,965억 원인데, 건축물 미술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68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단 319점이 설치됐을 뿐인데 그렇다. 작품 평균가액이 1억 2천만 원에 이른다. 이 돈을 다 작가가 챙기진 않을 것이다.

연면적 1만㎡를 훌쩍 넘는 아파트 시공이 잦은 대형 건설사의 경우 자신들과 연계된 특정 화랑들을 시행사에 소개하기도 한다. 화랑들은 이렇게 따낸 ‘일감’을 특정 작가들에게 몰아준다. 브랜드 아파트 경내마다 어디서 본 듯한 고만고만한 작품이 설치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시 공공미술 자문위원인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지금의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을 “생계형 작가들이 매달리고 우리나라 대표 미술가라 할 만한 작가들은 외면하는 시장”으로 규정했다. “전체적으로 작품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고 비슷비슷한 자기복제 작품과 어디선가 봤던 것들을 절충하는 스타일의 미술이 건축물 미술작품이란 이름으로 양산되고 있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자의식 강한 ‘진짜 예술가’의 작품은 공공 영역에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공공 공모' 무관심한 건축주…"원하는 건축주만 지원" 목소리도

대안은 없을까. 안 교수는 “열린 공모와 전문적 심사로 역량 있는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가 두루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히 예술에 관심 가진 건축주가 아니라면 작가·작품 선정 단계에서부터 전문가가 참여해 공공이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시의 경우 원하는 건축주에 한해 건축물 미술작품 공모를 대행해주지만 공공 공모를 통한 설치는 지금까지 단 2건에 그치는 등 참여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법에 따른 의무 설치임을 감안해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서울시는 분야별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미술작품심의위원회’가 건축물 미술작품의 예술성과 공공성, 환경과의 조화 등을 심의한다. 과거 80명의 전문가 풀이 돌아가며 심의를 맡다보니 일관된 심사가 어렵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경혜 서울시 공공미술관리팀장은 “다양성과 조형성, 안정성을 엄격히 심사하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의 승인율이 예년에 비해 굉장히 낮아졌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건축주에겐 번거로운 ‘규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나아가 그 예술을 대중과 함께 즐기고 싶은 선의를 가진 건축주가 아니라면, 건축주에게 공공미술품은 결국 건물 짓기 위한 절차 중 하나일 뿐이란 것이다. 건물 짓고 준공 따낸 뒤엔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공공미술품은 도심 흉물로 방치된다. 원하는 건축주에 한해 설치 과정을 돕고, 철저한 사후 관리 책임을 지워 세제 지원 등을 하는 것도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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