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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신생 오성운동, 창당 9년만에 집권 눈앞…정치지형 대격변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맹비난하며, 투명성과 청렴함을 강조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신생정당 오성운동이 창당 9년 만에 이탈리아 집권당이 되는 불가능해 보이던 과업에 바짝 다가서며, 이탈리아 정치권에 일대 지각 변동을 몰고 왔습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76) 이탈리아 대통령은 23일 오성운동과 동맹이 공동 정부를 이끌 총리 후보로 지명한 주세페 콘테(54) 피렌체대학 법학과 교수에게 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상하원의 신임투표라는 관문이 남아있긴 하지만, 오성운동과 동맹의 합계 의석이 상원과 하원 모두 절반을 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오성운동과 동맹의 공동 정부가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한 셈입니다.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반체제 성향의 오성운동과 마테오 살비니가 대표를 맡고 있는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은 지난 3월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에서 각각 약 32%, 17%를 웃도는 표를 얻어 원내 제 1,2당으로 약진한 뒤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을 벌여왔습니다.

오성운동은 이번 총선에서 단일 정당으로는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올라서며 연정 협상을 주도해왔고, 이날 정부 구성의 최종 권한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 승인을 이끌어내며 이탈리아 정치권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습니다.

변방의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신생 정당이 쟁쟁한 기성 정당들을 제치고, 당당히 중앙 정치 무대의 주연이 된 것입니다.

오성운동은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69)와 컴퓨터 공학자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에 의해 2009년 첫발을 뗐습니다.

오성운동에서 다섯 개의 별을 뜻하는 오성(五星)은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 등 정당의 5가지 주 관심사를 의미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답게 선거에 나갈 모든 후보와 주요 정책을 자체 사이트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등 기성정당과는 차별화되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등 좌파 색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폐쇄적인 이민정책과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등 우파적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이념의 범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오성운동은 총선 데뷔전이었던 2013년부터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에 편승, 애초 예상보다 10%포인트 높은 무려 25%를 득표해 집권 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2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후 2016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도 로마와 제4의 도시 토리노의 시장을 당선시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고, 이를 계기로 집권을 향한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안 없이 비판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반체제 포퓰리스트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 오성운동은 이후 작년 9월 대표를 전격 교체하며 이미지 탈색에 착수했습니다.

분노와 항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창립자 그릴로가 2선으로 후퇴하고, 말쑥한 외모에 비교적 온건한 성향을 지닌 디 마이오 하원 부의장이 새로운 대표로 나서며 오성운동은 집권을 향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디 마이오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공개한 국정 운영 프로그램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의 오랜 방침을 폐기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원천 배제했던 당의 기존 원칙에서 선회해 집권 가능성을 열어놨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특히 저소득층에 월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이라는 오성운동의 대표 공약이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청년 실업에 신음하는 젊은 세대, 빈곤에 매몰된 낙후된 남부의 몰표는 오성운동의 집권의 기반이 됐습니다.

디 마이오 대표는 연정의 파트너인 동맹이 수긍할 수 있는 제3의 총리 후보로 자신의 개인 변호사이기도 한 주세페 콘테 피렌체대학 법학과 교수를 지명함으로써, 비록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는 기회는 놓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콘테 교수가 대통령으로부터 정부 구성권을 부여받자 "오늘로 이탈리아 3공화국이 시작됐다"며 감격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정계는 대규모 부패 수사 '마니 풀리테'로 기독민주당 정권이 몰락한 1990년대 초반까지를 제1공화국,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제2공화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디 마이오 대표의 말처럼 오성운동이 역시 정치적 변방으로 인식되던 동맹과 손잡고 연정을 출범시킨 것은 이탈리아 정계를 뿌리채 뒤흔드는 '대변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성운동과 동맹 모두 '이탈리아 우선'을 앞세우며 유럽연합(EU)과 각을 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종전의 정치 세력과는 달리 엘리트 정치를 혐오하고, 대중을 전면에 앞세우는 등 정치 철학 면에서 지금까지의 이탈리아 집권 세력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추구합니다.

또한, 앞으로 정치 전면에 나설 인물들의 면면도 완전히 바뀐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정치권은 과거와는 단절 수준의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성운동과 손잡고 기성 정치 체제 전복을 합작한 동맹은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1991년 우파 정치인 움베르토 보시가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창설한 정당입니다.

2013년 총선에서 득표율이 4%에 불과할 정도로 그동안 큰 존재감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집권 시절 연정의 소수 파트너에 만족해야 했던 동맹은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반(反)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키며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났습니다.

북부에 지지세가 국한된 정당에서 전국 정당을 만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총선 전 과감하게 당명을 변경한 살비니 대표도 약 25년 동안 우파의 '얼굴' 노릇을 하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따돌리고, 우파의 새로운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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