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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라 지킨 의승들의 지휘본부 '중흥사 팔도도총섭' 복원

의승군(義僧軍) 역사 되찾아 호국의식 선양

[취재파일] 나라 지킨 의승들의 지휘본부 '중흥사 팔도도총섭' 복원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나투신데 대한 경의와 환희의 날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탄생 일성 설화는 우주 만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존엄함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석가모니는 이런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의 강고한 계급제도를 부정하고 그릇된 가치관을 바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현실은 여전히 빈부나 귀천, 지위 등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지난 시대 이 땅 승려들의 삶은 더욱 그랬습니다. 

국난을 당했을 때 승려들은 나라를 구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지배층의 그들에 대한 무관심과 비하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역사를 되돌려 임진왜란 당시로 가보겠습니다.

금산전투에서 조헌을 따르는 700명의 의병과 함께 영규를 따르던 800명의 승병들은 처절한 전투 끝에 모두 사망했습니다. 나라에서는 700명 의병의 유골을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 의총이라 부르고, 순의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순직한 800명 승군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신을 위한 초라한 무덤도, 혼령을 기리는 그 흔한 비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구례 석주관 전투에서 1만 명 왜군을 상대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화엄사 300명 승군의 주검은 지리산 계곡에 소리 없이 묻히고, 모두 잊혀졌습니다. 팔도도총섭으로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던 서산대사에게 당시 유생들은 "방자한 마음을 품고 졸개를 거느리며 말을 타고 거만하게 조정대신을 내려다본다"며 질시했습니다
복원된 북한산 중흥사 대웅전
지난 주말 북한산 중흥사를 찾았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 산성입구에서 계곡 탐방로를 따라 수문지, 북한동 역사관, 중성문, 노적사, 산영루를 차례로 지나 올라가면 불사가 한창인 중흥사를 만납니다. 2011년부터 당시 주지였던 지홍스님에 의해 복원 불사가 시작됐고, 지금은 막바지 공사 중입니다. 
중흥사 전경 (1902년 촬영)
사찰 의례의 중심인 대웅전이 복원됐고, 템플스테이와 참선 공간으로 활용되는 만세루도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낯선 이름의 팔도도총섭 건물도 완공돼 준공 검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팔도도총섭 건물이 관심입니다. 도총섭은 조선시대 나라에서 승군에게 내렸던 최고의 승직입니다. 팔도도총섭은 말 그대로 전국 팔도의 승군을 통솔하는 승려입니다. 북한산성 내 팔도도총섭 승영지를 복원한 것입니다. 도총섭은 중흥사 주지를 겸했다고 합니다.
복원된 중흥사 팔도도총섭
팔도도총섭 승영지 (1892년)
중흥사는 본래 30칸 정도 규모의 사찰이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수도 한양의 방위는 국가 차원의 과제가 됐습니다. 이에 따라 숙종은 1712년(숙종 38년) 계파 성능 스님에게 북한산성 축성을 위임하고 팔도도총섭의 직위를 내렸습니다. 성능 스님은 중흥사에 머물면서 9개월 만에 산성 축성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성능 스님 당시 중흥사 규모는 136칸의 대규모 사찰로 커졌습니다. 이때 산성 내에는 11개 사찰에 370여 명의 승군이 주둔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중흥사는 자연스럽게 북한산성 내 우두머리 사찰로서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승군제가 폐지되면서 중흥사를 비롯한 북한산성 내 사찰들은 일시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904년 9월 12일 발생한 화재로 사찰 전체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화재 원인은 실화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을사늑약을 앞두고 조선 의병들의 저항근거를 없애기 위해 일제가 앞잡이를 내세워 방화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추측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태고 보우 영정 (법주사 소장)
중흥사는 태고 보우(1301~1382)가 1341년부터 1346년까지 주석하면서 역사 속에서 크게 부각됐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보우는 고려 말의 고승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간화선으로 깨치고 당시 원나라 임제종 조사를 찾아가 전법인가를 받은 선사입니다. 원나라 황제가 황실로 초청해 법문을 청했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선사의 법맥은 서산-사명으로 이어지며 현 불교 조계종의 역사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각산 전경
올 가을에 사찰 복원 준공식이 거행됩니다. 보우, 도총섭 등의 오랜 역사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중흥사에 승군의 근거지 였던 팔도도총섭을 복원하는 데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팔도도총섭 건물을 의승군 기념관으로 활용해 의승군들의 희생을 기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 역사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불교 조계종에도 보우 선사의 수행처 복원으로 부처님 오신 날 의미를 더하는 좋은 선물이 됐습니다.

중흥사 동명 스님은 복원된 팔도도총섭 건물을 통해서 국난의 시기에 북한산성을 축조하고 방위하던 의승군의 역사를 되찾는 계기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승병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중흥사 복원 준공식이 열리는 날은 북한산에 가 봐야겠습니다. 북한산을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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