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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순된 일자리 창출 정책, 겉은 노동친화 속은 구조조정

- 일자리의 양과 질 동시에 키우는 묘약은 없다

[취재파일] 모순된 일자리 창출 정책, 겉은 노동친화 속은 구조조정
● 일자리 창출 정책에 일자리 줄이는 중소기업 

현 정부의 출범 1주년을 맞아 여러 기관들이 내놓은 평가를 보면 대체로 대북관계나 외교 에선 후한 점수를 준 반면, 가장 인색한 평가를 내린 부분이 경제 분야였다. 특히 '소득 주도' 성장이란 명분 아래 단행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은 그 좋은 취지와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비판과 논란의 근거가 실재적 사실인지 과장인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아봤다. 국내 산업단지 가운데 가장 많은 중소기업이 몰려 있다는 시화 반월 산업단지와 서울 성동구의 도금업체 밀집단지가 취재진이 찾은 장소였다.

일자리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훨씬 중요하다. 우리 근로자 1천800만 명 가운데 90%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현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청년실업 대책 역시 중소기업 취업지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시화 반월 산업단지에는 전자, 기계부품, 화학, 금형 등 국가 차원에서 유지 발전시켜야 할 이른바 뿌리 산업이 2만 개 가까이 몰려 있다. 그런데 경기부진이 오래 이어지면서 산업단지는 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공장 가동률이 50%를 넘는 곳이 드물었고, 단지 곳곳 눈길 가는 곳엔 공장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부동산 현수막이 수십 미터 간격으로 줄줄이 붙어 있었다. 아예 공장 문을 닫아 빈 공장에 자재가 뒹구는 폐업 회사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한 때 2만 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활동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많게는 연간 천개씩 기업이 사라지면서 일자리 역시 한 해 2만 개씩 줄고 있었다. 경쟁대상인 일본이 엔저로 경쟁력을 회복한데다, 내수경기 부진, 중국산 저가제품의 공세가 지속적으로 몰아친 탓이다.

그런데 요즘 이들 기업들을 더욱 맥 빠지게 하는 건 바로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곧 단행될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최저임금은 당장 올해만 명목상 16% 넘게 올랐는데, 야근이 많은 중소기업의 특성상 야근수당에 50%의 할증이 붙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론 임금이 30% 가까이 올랐다는 게 중소기업 사장들의 이야기였다.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비용이 크게 상승하자 사업주들은 납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종전에 시키던 야근을 대폭 줄였다. 그러자 근로자들은 근로자들대로 야근 수당이 크게 줄어 전체 임금이 감소했다며 불만을 호소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역시 태풍의 눈이었다. 허용 근로시간을 줄이는 만큼 사람을 더 고용하라지만 한 사람이 잔업으로 감당할 일을, 두 사람을 고용해 일을 시키라는 건 경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사업주들은 불만을 호소했다. 게다가 획일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특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는 중소기업들에겐 숨통을 막는 조치이며 그에 따라 생존력이 있는 우량 중소기업들마저 고사위기로 내몰 거라며 제도개선을 호소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주요 경쟁력 가운데 하나가 일본에 비해 품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밤을 새서라도 빠른 납기를 할 수 있는 강점이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 역시 부정적인 의견이 대체로 많았다. 대기업 직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이른바 '워라밸', 즉 일과 생활의 균형을 누릴 진 모르지만,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신들은 일을 더해서 그 수당으로 임금을 보충해야 하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활이 더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사업주는 임금부담과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필요할 때 공장을 충분히 못 돌려서 불만이고, 한 푼이 아쉬운 중소기업 근로자는 일을 더해서 수당을 벌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해 불만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영여건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가지 악재까지 예상되자 중소기업들은 신규 인력 채용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오히려 퇴직 인력을 보충하지 않는 식으로 자연감소를 유도했다.
 

● 통계로 나타나는 일자리 충격

이런 현실은 실제로 통계로 반영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직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자는 62만 8천여 명으로 1년 전보다 7%, 4만 명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급한 실업급여 총액이 1조 5천억 원 정도로 전년보다 16%나 증가했는데, 수급자나 지급액 모두 통계작성 이후 최고치이다. 1분기 취업자 수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큰 도소매업과 음식 숙박업에서 1년 전보다 9만 8천 명이나 감소했다.

이 와중에 정부의 취업 지원책도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 취업 때 연간 1천만 원을 지원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의 예산 집행률은 지난해 55%에 불과했다. 또, 최저임금 인상부담을 덜어주려고 사업주에게 주는 임금지원 제도인 일자리 안정자금 역시 신청건수가 지난 1월 기준 대상 근로자의 0.7%에 그치고 있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건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이른바 에코붐 세대가 성장하면서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 25세에서 29세 사이 인구가 40만 명가량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적절한 대책이 없을 경우 이 가운데 14만 명이 실업자가 될 거란 게 정부의 분석이다.

● 일자리 양과 질 동시에 높이는 묘약은 없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들이 일자리 창출보다는, 실제론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라고 진단한다. 얼핏 보기엔 근로자만을 위한 정책같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론 부실기업들을 퇴출시켜 좋은 일자리만 남기는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노동정책들이 중소기업 구조개혁과 일자리 창출이란 사실상 상호 모순된 목표를 동시에 지향하면서, 시장에 혼란을 주는 동시에 정책의 실효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와 사업주의 표심을 동시에 얻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동시에 늘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이다.

따라서 다소 정치적 부담을 지더라도 정책을 좀 더 정교하고 현실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일변도 관점에서 벗어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 기업경쟁력이 높아져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같은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시행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애매하고 무리한 정책으로 우량 중소기업들마저 무너진다면 일자리 창출은커녕 국가 경쟁력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중소기업 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 급속하고 획일적인 적용보다는 일감이 몰릴 시기엔 근로시간을 늘리고 적을 땐 줄일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한다.
 

더불어 현재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해 똑같이 적용하고 있는 최저임금 제도에 대해서도 내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해 차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개선도 필수이다. 우량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자연스레 커 나가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정부가 바라는 소득주도 성장의 결실도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자금의 투입방향도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확대나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임금 지원보다는, 직업훈련이나 산업구조 조정에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더불어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고착화된 안정 일변도의 구직 패턴을 깨고 사라진 창업 열기도 되살려야 한다.
 

새로운 기업이 계속 생겨나서 그 기업이 성장하지 않고선 절대로 일자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강소 기업이 되고, 그런 기업에 청년들이 취업해 자신의 가능성과 회사를 함께 키워 나간다면 우리가 꿈꾸는 가장 바람직한 일자리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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