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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기원은?…평화로운 그곳 '널문리 가게'

하현종 기자 mesonit@sbs.co.kr

작성 2018.05.15 18: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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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판문점에는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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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인근의 한 작은 마을.
너른 논밭과 초가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봄에는 모내기로
여름에는 보리 수확으로 분주했던
소박한 마을 ‘널문리’에 
갑자기 낯선 천막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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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0월 25일.
널문리의 작은 주막 앞 콩밭에 세운 천막에서 
첫 ‘휴전회담’이 열린 겁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휴전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널문리를 한자로 표시할 때 ‘판문’
거기에 작은 ‘점포’할 때 ‘점’ 해서
‘판문점’ 이 된 거죠.”

-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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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널문리 하늘엔
중립휴전지대임을 알리는 열기구가 띄워졌고
유엔군과 중국군, 북한군이 지내는
막사도 속속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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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이 생긴 후
전 세계에서 기자들까지 모여들면서
마을이 어수선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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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주변으로는 폭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활동 공간이었습니다.”

-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널문리 사람들은
남한·북한 구분 없이
묵묵히 삶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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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이곳 판문점은
남·북한 간 회담을 위한 장소와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0년 동안 잊고 있었던 
널문리의 본래 모습들.
2018년 봄, 다시 한번 그곳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판문점은 1951년 경기도 파주 널문리 한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널문리 마을은 너른 들판에 벼, 감자, 콩이 자라던 소박한 농촌이었습니다. 38선 부근에 있던 이 동네는 아직 남북 구분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작은 주막이 있었는데, 판문점은 이 주막을 주변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판문점'이라는 이름은 이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번역한 말입니다.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동네에는 폭격이 제한됐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다른 지역보다 평화로운 동네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글·구성 권수연, 정세림 인턴 / 그래픽 김태화 / 기획 하현종 김유진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