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 젖소들이 초원에서 볕을 즐기는 중이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돌아다니거나 풀을 뜯는다.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을 한 채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녀석도 보인다.
원로화가 장리석 그림 '목장의 초하'에 담긴 초여름 목장 풍경이다.
196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출품작을 당시 청와대가 사들였다.
이번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을 준비하던 자문위원들 사이에서는 이 그림을 두고 "간접적인 민족기록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1960년대는 낙농업이 본격화하면서 점박이 젖소, 즉 홀스타인종을 대량 수입하기 시작한 때다.
'목장의 초하'는 무심한 풍경을 통해 시대상을 생생히 증언하는 그림인 셈이다.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가 9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개막했다.
한국화 4점, 서양화 8점, 조각 4점 등 총 16점으로 규모는 단출하지만, 작품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전시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보다' '사계절을 보다' '청와대를 만나다'로 구성됐다.
전시를 기획한 왕신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대통령비서실 파견)는 "청와대가 소장품을 들여올 때 특히 의미 있게 수집한 시기가 세 차례 있었다"라면서 "국전, 영빈관 건립, 청와대 본관 완공 시기로 나눠 전시를 짰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작품들은 당시 미술계 가장 큰 연중행사이자 작가 등용문인 국전 출품작들이다.
왼편 첫머리에는 1970년 국전에서 "우리 화단사상 보지 못한 현장감"이라는 극찬을 받은 김형근 유화 '과녁'이 걸렸다.
이를 비롯해 이영찬 동양화 '풍악'(1973), 김수현 브론즈 조각 '가을의 여심'(1971), 강태성 대리석 조각 '해율'(1966)은 대통령작 수상작이다.
입선작인 '추성'(1974)은 왜색 논란으로 채색화가 배척당한 당시 화단에서 꿋꿋이 채색화 작업을 선보인 정은영 대표작이다.
40년 만에 최초로 외부에 공개된 영빈관 풍경화 4점도 이날 관람객 발길을 오래 잡아뒀다.
1978년 건립된 영빈관은 유럽 건축 양식에 태극과 무궁화, 단청 등 한국적 요소 장식을 더한 건물이다.
우리 산야를 자주 그린 박광진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한테서 영빈관 2층 연회장 벽을 장식할 사계절 풍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세로 2m 안팎 대작 4점을 한꺼번에 작업하기가 여의치 않던 작가는 오승우에게 연락을 취했다.
설악의 봄·여름·겨울 풍경은 박광진이, 여름은 오승우가 그린 이유라는 게 왕 학예연구사 설명이다.
3부 '청와대를 만나다'에는 1991년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립 당시 수집한 작품이 여러 점 나왔다.
이 중 서세옥 '백두산 천지도'(1990)는 최근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더 흥미롭게 보인다.
정권 바뀜에 따라 청와대와 수장고를 오간 전혁림 대작 '통영항'(2006)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남북정상회담 배경으로 등장한 김중만 사진 작품 '천 년의 동행, 그 시작'도 많은 관람객의 호응을 얻었다.
'함께, 보다'는 무엇보다 청와대에 소장되면서 길게는 반세기 동안 바깥나들이를 하지 못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목장의 초하'를 그릴 적 40대 초반이던 장리석 작가는 이제 백 세 노인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1년부터 청와대 본관을 장식한 벽화 네 점도 영상 작품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입장료는 무료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