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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의원 해외 출장 파헤치기 ① - 청탁금지법도 막지 못한 '관행' (끝까지 판다)

[취재파일] 국회의원 해외 출장 파헤치기 ① - 청탁금지법도 막지 못한 '관행' (끝까지 판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가는 게 어떤 문제가 있을까? 문제가 되는 지점은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의 관계입니다. 피감기관은 문자 그대로 감사를 받는 기관입니다. 즉, 국회의원들로부터 제대로 국가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을 했는지 지도·감독을 받는 기관을 말합니다.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의 예산도 쥐락펴락할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와 같습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갑'인 국회의원이 '을'인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 논란이 불거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률가들의 압도적 다수 의견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출장 가는 건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은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KOICA 2억 3천만 원 들여 국회의원 해외 출장 7건 지원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관행'이란 이유로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인 2017년부터 올해까지 2억 3천만 원을 들여 모두 7번의 국회의원 해외 출장을 지원했습니다.

국회의원과 코이카에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에 대해 묻자, 하나같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코이카는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에 권익위에 자문을 구했고, 문제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코이카가 권익위에 문의했는데 문제없다고 했으니 '관행대로' 지원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청탁금지법
하지만, 권익위의 답은 달랐습니다. 권익위는 '공식적 행사, 공무상' 출장일 경우에 청탁금지법 예외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이지, 무조건 지원해도 된다는 '백지수표'를 준 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권익위가 애매한 답변을 준 문제도 없지 않아 있지만,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특히, 일부 국회의원들은 돈의 출처조차 모르고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심재권 외교통일위원장은 '외통위 자체 예산으로 출장을 다녀왔지, 피감기관에 의뢰해서 출장을 다녀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심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코이카의 돈 5천여만 원을 지원받아 6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고, 그 가운데 한 번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였습니다.

● 상임위도 아닌데, 마음 맞는 의원들끼리 가는 출장도 공무?

코이카의 소관 상임위인 외통위 소속도 아닌 의원들이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3월, 자유한국당 소속 원유철, 조훈현, 김순례, 문진국 의원은 4박 6일 일정으로 쿠바를 다녀왔습니다. 4명의 의원을 위해 코이카가 지불한 돈은 5천300만 원, 1인당 1천만 원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4명의 의원 가운데 외통위 소속은 원유철 의원뿐이고, 조훈현 의원은 교육문화위, 김순례 의원은 보건복지위, 문진국 의원은 환경노동위 소속입니다.

코이카는 해외 원조 사업이 교육, 보건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다른 상임위원들이 참석하는 게 문제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이 어떻게 결정됐느냐는 물음엔 외통위 행정실로부터 명단을 통보받았다고만 답했습니다.

그런데, 외통위 행정실은 외통위가 먼저 코이카의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쿠바 출장 건은 외통위 소속인 원유철 의원의 요청이 있어 외통위 행정실이 대신 공문만을 보내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코이카와 외통위 행정실의 말을 정리하면, 결국 원유철 의원의 주도하에 함께 출장을 갈 구성원들이 결정됐고, 외통위 행정실은 원 의원의 요청에 따라 코이카에 공문을 보냈고, 코이카는 외통위 공문에 따라 원 의원 일행의 출장을 지원한 것입니다.

4명의 의원의 설명을 듣기 위해 의원실을 방문하고, 전화와 문자로 연락했지만 결국 의원들에게 답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문진국 의원실 관계자는 원유철 의원이 가자고 해서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고, 원유철 의원실 관계자는 코이카에서 다른 상임위원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여당은 여당끼리, 야당은 야당끼리' 출장

청탁금지법 이후 7번의 출장을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모두 여당은 여당끼리, 야당은 야당끼리만 다녀왔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출장을 계획할 때는 여야가 고루 섞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는데, 출장을 갈 시점에 여러 사정으로 '끼리끼리' 출장이 됐다는 겁니다.

국회의원이 공무를 보는데 여야 의원이 항상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여야로 구성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대변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상' 목적으로 나가는 해외 출장의 대부분이 여당은 여당, 야당은 야당끼리 간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 국회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 원칙적으로 금지"…사전 심사 의무화

피감기관 지원 출장 논란이 커지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대책의 핵심은 피감기관 돈으로 가는 해외 출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국익을 위해 기관에서 요청한 출장은 사전 심사를 거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입법이나 정책개발 등 꼭 필요한 출장인지 사전에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회의장 직속으로 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
해외 출장을 떠나기 전 국회의장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고, 출장에서 돌아오면 20일 이내로 출장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사전 심사를 통해 부적절한 출장이라고 판단되면 국회의장이 출장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출장 취소를 요청할 순 있어도 강제할 순 없습니다. 또, 꼭 필요한 출장인지를 판단할 심사자문위원회 구성원이 국회의원으로 꾸려지는 것도 이번 대책의 한계로 지적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 대책을 내놓으면서 '국민 신뢰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국민 신뢰 회복 여부는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해외 출장을 금지하자는 지적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출장이라면 국회 예산으로 당당하게 다녀오면 됩니다. 국익을 위해 피감기관에서 요청한 출장은 정말 국익을 위한 것인지, 국민의 눈으로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심사하면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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