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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변화열망·러 불개입에 아르메니아 '시민혁명' 승리

남(南)캅카스의 옛 소련 소속 아르메니아에서 3주만에 철옹성 같은 정치권력이 무너지고 반정부 시위 지도자가 권력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총탄 한발, 피 한방울 없이 오직 평화적인 시위로만 이뤄낸, 이른바 '벨벳혁명'입니다.

8일(현지시간) 의회가 야당 의원 니콜 파시냔(42)을 총리로 선출하는 순간, 수도 예레반의 심장부 공화국광장은 수만명의 함성과 환희가 솟구쳤습니다.

예레반 시민들의 얼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변화를 스스로 실현했다는 감격과 기쁨으로 달아올랐습니다.

공화국광장에 선 파시냔 신임 총리가 "이제부터 아무도 아르메니아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 군중은 "니콜! 니콜!"을 연호했습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이러한 변화를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0년간 대통령에 재임한 후 지난달 9일 퇴임한 세르지 사르키샨(63) 전 대통령은 내각제 첫 총리직에 올라 권력을 연장하려 했습니다.

그가 이끄는 공화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을 점유하기에 이 계획이 실현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인물이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의 군소정당 대표 니콜 파시냔(42) 의원입니다.

파시냔 의원이 지난달 14일 수십명과 함께 국립 라디오방송을 기습 점거하며 사르키샨 총리 선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때까지만 해도 그는 카키색 티셔츠에 야구모자, 확성기를 든 '데모 선동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위를 다룬 외신도 극소수에 그쳤습니다.

아르메니아 시민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시위대는 수십명에서 순식간에 수백명, 수천명으로 불었고, 공화당이 사르키샨 전 대통령을 총리로 선출한 지난달 17일에는 공화국광장에만 4만명이 운집했습니다.

시위 지역도 규므리, 아라라트, 바나조르 등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사르키샨 총리 선출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시위는 뿌리깊은 부패와 경제난 등 실정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했습니다.

특히 국부를 장악한 소수 재벌, 즉 '올리가르히'와 이에 결탁한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며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가 이번 반정부 시위에 앞장섰습니다.

공화당은 이달 1일 표결에서 파시냔 의원의 총리 선출을 무산시켰으나 성난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수도를 마비시키자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집'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정정 불안이 국내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삼가면서, 정국이 조기에 안정돼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인구가 290만밖에 안 되는 내륙 국가 아르메니아는 경제적·전략적으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입니다.

인접 산유국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실효 지배하는 데에도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파시냔이 이끄는 반정부 시위에서 공화당 정부의 부패에 비판 목소리는 높았지만 반러 구호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소식통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크림반도나 나고르노-카라바흐 이슈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서 러시아는 사태가 조기 해소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파시냔 총리에게 보낸 축전에서, 파시냔 총리가 양국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신임 파시냔 총리는 소수 정부를 이끌며 국민의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무거움 부담을 짊어졌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재벌, '올리가르히'는 개혁정책에 강력히 저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평론가들은 파시냔 의원의 총리 취임은 혼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당장 정부구성과 조기총선 등 일련의 정치 일정으로 정국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수 있습니다.

정치평론가 스테판 사파랸은 AFP통신에 "아르메니아는 이제 불안정기에 진입했다"면서 "파시냔은 국민의 열망과 거대 야당의 반대 속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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