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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몰카 유출' 디지털 성범죄, 근절할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개설이 갖는 의미

[취재파일] '몰카 유출' 디지털 성범죄, 근절할 수 있을까
●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짓”, 리벤지 포르노
 
얼마 전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피해를 겪는 사례 가운데 40%가 전(前) 애인의 짓이라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기사였다. 표본 자체가 작은 통계이기는 했지만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한 몰래카메라 이용 디지털 성범죄 (사이버 성폭력) 피해사례는 나날이 급증하는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1년 1,523건 정도였던 피해 사례는 5년 만인 2016년 5,185건에 달했다.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몰카 등 영상물 삭제 요청 건수는 지난 2016년에만 7,235건이다. 피해를 겪고도 남에게 쉬이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인지가 어렵다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 혹은 관계 당국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당사자도 모르게 촬영되거나 혹은 유포된 동영상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해자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는 물론이고 “누군가 보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상상조차 어려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 대인 기피증에 경제적 고통까지…끔찍한 2차 피해
 
더 잔인한 건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2차 피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니만큼 피해자를 직접 취재할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으로 접한 피해 사연은 참담했다. 영상 삭제요청과 수사기관 신고를 위해 자신이 나오는 동영상을 일일이 돌려보며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적 특징이 나오는 장면을 일일이 캡처해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수치심과 괴로움에 손을 덜덜 떨고 구토가 올라와 몇 번씩 화장실을 오갔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경제적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 피해 사례가 늘면서 영상 삭제요청을 대행해주는 이른바 ‘사이버 장의사’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기자가 취재한 한 업체의 경우 ‘건당 200만 원’을 제시했는데 이마저 가장 저렴한 수준이라고 했다. 평균적으로 4~5백만 원까지도 나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비용을 들이고도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각 업체마다 3~6개월의 사후 모니터링, 이른바 A/S 기간을 두고 있지만 이후에 영상이 올라갈 경우에는 추가 비용이 불가피하다. 이쯤 되면 그 어떤 중범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 가운데 하나’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 “정부가 지워준다”…디지털 성범죄 지원센터 문 열다
 
피해가 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30일부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상담과 삭제 지원은 물론 수사와 소송, 사후 모니터링까지 돕는 지원체계다.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하는 기관이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정부가 지워준다”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삭제 지원 서비스다. 센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제공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피해자가 일일이 증거를 수집해 삭제 요청이나 신고를 해야 했다면, 이제부터는 센터에서 대신 해 준다. 상담을 거쳐 피해 상황을 우선 파악한 뒤 증거를 수집해 동영상 유통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방통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경찰 신고를 위한 채증과 함께 이를 위한 법률 자문도 제공한다. 삭제 지원 이후에는 일정 기간 사후 모니터링도 실시한다. 법적 절차를 위한 피해자를 위한 무료 법률서비스와 의료비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이런 서비스를 세금으로 다 제공하는가 하면 또 그렇진 않다.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소요되는 인건비나 추가 비용 등은 가해자에게 부과할 수 있다. 정부가 우선 비용을 부담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된 데 따른 변화다. 법 적용은 9월부터다.
 
☞ '몰카' 성범죄 영상, 내일부터 정부가 대신 지워준다 (2018.04.29 8뉴스)
  
● 대신해주면, 근절할 수 있나?
 
다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몰카 등 리벤지 포르노 문제는 완벽한 해결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삭제했다고 해서 다시 인터넷에 유포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개인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던 영상을 다시 올릴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비슷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송 사무처장은 “디지털 성범죄가 무섭고 고통스러운 건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정부 지원센터 인력만으로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이번에 문을 연 센터의 인력은 상담과 삭제 지원 인력을 모두 합해 16명이다.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이들이나 그동안 말 못했던 피해자들이 몰릴 것을 감안하면 수요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센터 개설 초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감당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신숙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장은 “우선 올해 배정된 6억 4천 9백만 원의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해보고 수요가 늘어날 경우 확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 몰카 규제·처벌 강화 등 근본적 대책 병행해야
 
여성보호단체나 학계,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결국 몰래카메라 판매 규제나 처벌 강화와 같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대책이든 완전할 수는 없지만 다각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범죄 발생 자체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가족부 역시 지난해 9월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에 따라 여러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대책에는 변형 카메라 사전 규제와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곳에 영상기기 설치 금지,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재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심의 중에 있다.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을 위한 법률안’은 화장실·목욕실·탈의실 등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장소에는 CCTV나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 웨어러블 등 각종 영상촬영기기를 설치·부착·거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하도록 했다. 또 디지털 성범죄영상 촬영자나 온라인 게시자에게 열람이나 삭제를 청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피해자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주는데도 그동안 가해자들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영상 촬영이나 유포자에게는 벌금형 없이 5년형 이하 ‘징역형에만’ 처하도록 했다. 형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남의 인생 망치면 자기 인생도 분명히 망친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취지가 분명하다면 위에 언급한 법 모두 무사히 통과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교 여자화장실 몰카 발견
● “국민의 개인적 고통도 국가가 책임진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온 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 발표 자리였다. 지난해 5월 5일 대선 직전 문재인 캠프는 10대 국민 공약을 발표하면서 4번째 항목에 “몰카, 리벤지 포르노 완전 근절”이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생활밀착형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다고는 하지만 당시 대선을 취재하던 기자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어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도 (여당과 정부가 국가 정책을 협의하는 회의)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추경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거시적인 국가 정책을 주로 논의하는 당정 협의에서 ‘몰카 근절’ 같은 주제를 다룬 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따라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건 이번 피해자 지원 센터 개설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 대책의 의미다. 누군가의 나쁜 의도 뿐 아니라 만에 하나 순간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불행이라 하더라도 사회 정의에 어긋나고 국민 개인의 행복을 현저하게 해친다면 국가가 책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대책을 두고 “개인적인 일까지 국가가 세금 들여서 도와줘야 하나”라는 의견도 물론 있다. 가해자에게 비용을 부과한다고 하지만 초기 비용이나 센터 운영 전반에 드는 비용 일부는 국가 예산으로 부담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이 느슨한 법 제도와 기술의 발달 같은, 사회가 용인한 변화에 어느 정도 기초한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그 짐을 나눠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디지털 피해자 지원센터 개설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더라도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덧붙여 당부드리고 싶은 건 정부 당국의 꾸준한 의지와 ‘섬세한’ 행정이다. 수많은 밤을 설친 피해자들이 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취지는 좋은’ 정부 사업들이 시행 과정에서 변질되고 허울만 남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2차 피해에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3차, 4차 피해 더 이상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세심한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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