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시간만 일해도 정규직 공무원"
꿈같은 문구를 내걸고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일주일에 20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4시간 근무하면서도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건데, 특히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고안한 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종일 근무가 어려워 직장을 그만둔 여성도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재취업해 일과 가정, 또는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홍보만 한 게 아닙니다. 정부는 시행령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직 공무원을 뽑을 때도 정원의 1%를 정부가 추진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뽑아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정부의 대표적 일자리 정책으로 꼽힐 만큼 강력하게 추진됐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수차례 자화자찬도 했습니다.
반응 역시 뜨거웠습니다. 시행 첫 해 서울시 9급 일반행정직 공무원 시간선택제 공채에는 66명 채용에 2천 681명이 몰려 무려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다른 시도에서도 시간선택제 공무원 평균 경쟁률은 2014년과 2015년에 10대 1, 2016년엔 12대 1에 육박했습니다. 정책을 시행한 4년 동안 현장에는 5천 여명의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배출됐습니다.
● 차별과 냉대, 불합리한 처우로 절반 떠나
장밋빛 일자리 약속한 정부, 믿고 뛰어든 사람들. 4년이 지난 지금, 인사혁신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이들 중 절반이 현장을 떠났습니다. 남아 있는 이들은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가 당초 도입 취지와 전혀 다르게 운영됐고, 처우도 대단히 불합리했다고 지적합니다.
근무 시간이 오전 혹은 오후로 고정돼 육아 중인 여성끼리 2인 1조가 되면 둘 중 한 명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에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단시간 근무에 맞는 직무가 없어 일반 공무원과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업무에 쫓겨 초과 근무가 잦았습니다. 취재 결과 서울시 26개 자치구 가운데 10곳이 한 달에 50시간 넘게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업무 시간에 비례해 월급을 준다는 원칙을 감안해도, 자격증을 따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은 똑같은데 자격증 수당을 절반만 받거나 성실근무수당 등을 절반만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전문가들은 고용률을 높이려 정책을 졸속 도입한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실제 당시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라고 홍보했습니다. 조태준 상명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세계적으로 공공 부문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어 낸 사례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단시간만 일하고 퇴근할 수 있는 공무를 개발하기 어렵고, 전일제 공무원과 차별 없는 인사 및 급여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일반 공무원이 육아 등으로 일시적 유연 근무를 하거나, 민간에서 필요에 의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일반적입니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고민 없이 정책 도입부터 했다는 지적이 가능합니다.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엉뚱한 해법을 내놓습니다. 지자체에 대한 시간선택제 1% 의무 채용 시행령을 삭제하기로 한 겁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직 채용을 정부에서 강제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도 폐지가 아니라 지자체 스스로 수요를 판단하라는 취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선 실패한 정책에 대한 ‘고사 전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 매년 600여 명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해왔던 서울시에선 1% 조항이 삭제된 올해, 시간선택제를 단 한 명도 뽑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전일제 공무원 전환" 주장 나오지만 '공정성 논란'…관계자 머리 맞대야
그렇다고 2천 5백여 명 되는 이들을 현장에 방치하는 게 공정할까요? 이들은 양질의 일자리라는 정부 정책 믿고 들어왔다가 수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기능직 공무원도 원하면 내부 시험 등 제한적 경쟁을 거쳐 일반행정직이 될 수 있는 데 이를 참고할 수도 있다”고 제언합니다. 지금이라도 단시간 업무에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고 근무 시간대 선택을 가능하도록 해 제도 도입 취지를 살려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풀어 나갈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은 겁니다.
답을 내기 위해선 제도를 도입한 정부가 나서 당사자와 전문가들을 불러 앉히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취재진에게 행정안전부 측은 “공청회나 간담회 계획이 전무하다”며 “1% 시행령을 없앴으니 더 이상 중앙정부 소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인사혁신처 담당자 역시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지방직이니, 국가직 공무원만 관리하는 인사혁신처와는 무관하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숫자도 적고, 힘도 없으니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토로입니다. 정책이 실패하면 해결과 수습에 나서기보다 외면하는 정부,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보다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