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주의 친절한 경제] 반성문 쓰고 해병대 훈련받고…기업들의 위기 대처법?

김범주 기자 news4u@sbs.co.kr

작성 2018.04.23 10:27 수정 2018.04.23 10:4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오랜만에 친절한 경제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휴가였습니다. 일주일 쉬고 왔더니,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라서, 대한항공에다 드루킹 새 뉴스들이 하나 가득 새로 생겼는데, 그 전 사건들도 잊으면 안 되죠, 지금 기사 좀 줄어들었지만 지난주에 찍힌 한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누구냐면은, 보름 전에 큰 문제를 일으켰던 지금은 기사가 좀 줄어든, 삼성증권의 부장급 이상 높은 사람들입니다.

회사가 이런 중고참 200명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서 이번 일에 대해서 각자 뭘 잘못했는지, 단체로 반성문을 쓰자, 이래서 지금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걸 또 삼성증권 직원이 직접 사진을 찍어서, 우리가 이렇게 반성합니다, 하고 언론사에 돌렸습니다. 이거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반성문 쓰라고 했던 기억도 나면서, 꽤 낡아 보인다, 저래서 고쳐질까,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 꽤 되실 겁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진이 또 겹쳐서 떠올랐는데, 2년 전에 배 만드는 현대중공업에서 자꾸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숨지니까 회사에서 안전의식을 높인다면서 임원들을 해병대 캠프로 보내서 줄타기, PT 체조 이런 걸 시켰습니다.

정신 못 차려서 그러는 거다, 군대 정신이 부족해서 회사에 사고가 났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을 했던 모양인데, 글쎄요, 이제 4월인데 올해도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벌써 4명이 숨진 것을 보면, 어쨌든 효과는 없었지 싶습니다.

이런 걸 평판리스크라고 부릅니다. 회사가 생각하지 못했던, 회사에 명성에 금이 가는 위기를 종종 맞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실력이 드러납니다. 이 문제가 왜 생긴 것인지 빨리 찾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회사는 잘 나가지만, 윗사람이 책임도 져야 하고, 일이 커지니까, 피하는 길부터 찾는 회사는 결국 어려워집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번에 대한항공이죠. 물컵 사건 터진 지 열흘이 넘어서, 일요일 오후 어제(22일)서야 조양호 회장이 첫째 딸, 둘째 딸을 물러나게 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많이 늦었죠. 그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도 사실이 아니다, 과장됐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다가 못 막을 지경이 돼서 저런 발표를 한 겁니다.

대한항공을 타는 국민들, 일반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은 게 아니라, 오너 일가 심기만 쳐다보고 있다가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초기에 사과하고 뜯어고치셔야 됩니다'란 말을 했던 사람들은 정말 없었던 건가, 아쉬움이 남고요.

비슷하게 5~60대 중장년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반성문을 쓰고, 해병대 훈련을 받고 하는 것도 회사 사장, 회장에게 보여주는 행사일 뿐이지, 이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는 고려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 2년 전에 미국에 컨설팅회사, 매켄지가 국내 직장인 4만 명한테 '회사가 왜 잘 안 돌아가냐'를 조사했는데, 이걸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윗사람이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가 55점, 또 '지시가 불합리하다'가 39점으로 낙제점 중에 낙제점이었단 말이죠. 현장과 가까운 아랫사람 이야기를 윗사람들이 안 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한 한 외국인은 "임원실이 장례식장 같다" "불합리한 지시를 해도 누구도 왜 '못하겠습니다'란 말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인다"고 말을 하기도 했었죠. 이런 꽉 막힌 문화를 고쳐야만 위기 때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직원들이 평소에 문제를 찾아내 얘기해도 고치지 못하는 회사가 위기에는 그게 되겠냐는 말이죠. 더 안 되겠죠. 입은 닫고 들어라, 대한항공, 삼성증권 일을 보면서 윗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