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의 한 식물원 숲 속에 거대한 나무거인들이 들어섰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이름 없는 숲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등극시킨 그 나무거인이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설치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포천 평강식물원을 찾았다. 높이 5~7미터의 나무거인을 처음 본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큰데도 입체적인 얼굴과 거친 털, 손톱 발톱 다 있는 손발 등 그야말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가만히 거인 얼굴을 쳐다보면, 당장이라도 살아숨쉴 것만 같은 느낌에 압도됐다.
더 놀란 것은 이 나무거인이 쓰레기로 만들어졌다는 것. 얼굴의 합판을 제외하고 모든 재료는 공사판에서 버려진 폐목자재였다. 인간에게 한 번씩은 버림당한 전력을 가진 나무들이 얼기설기 엮이더니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조형물로 되살아나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거인의 창조주(?)인 세계적인 업사이클링 아티스트인 토마스 담보(thomas dambo)와 만났다. 그는 4년 전부터 10개국에 35개의 나무거인을 만든 덴마크의 자랑이다.
포천 평강식물원의 초청으로 지난 2월 한국을 찾은 그는 낮엔 나무거인을 만들고 밤엔 동료들과 맥주파티를 벌였다. 그러기를 약 한 달…어느 새 숲 속에 나무 거인 다섯 개를 세웠다.
인터뷰는 시작부터 끝까지 쓰레기 얘기였다. 업사이클링이나 환경 관련 이야기로 인터뷰를 자주 해봤지만 이토록 흥미롭고 창의적인 ‘쓰레기 스토리’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쓰레기는 섹시한 것이고, 행복한 것이고, 재밌는 것이에요. 또 쓰레기는 돈이고 비즈니스고 기회에요.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저의 일이죠. 제가 만든 나무거인은 핀란드 전통동화에 나오는 숲속요정 트롤(troll)인데, 제가 만든 트롤은 이렇게 말하죠.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쓰레기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이니까요’라고요.”
혼자만의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작품이다. 쓰레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그의 프로젝트에 항상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쓰레기가 섹시하다’는 그의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쓰레기로 만든 작품은 실제로 ‘월드 클래스 매력’을 뽐낸다. 그의 발길이 닿은 숲은 나무거인이 살고 있는 동화 속 숲으로 탈바꿈했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세상 사람들을 끌어당긴 그 매력적인 나무거인이 사실 다 쓰레기에요.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보세요. 쓰레기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는 길을 가다 폐목자재, 폐비닐, 플라스틱, 병 등을 보면 수레에 담는다. 그걸로 가구도 만들고, 집도 만들었고, 조각품도 만들고, 심지어 궁전도 만들었다. 사람들은 쓰레기로 만든 궁전에 놀러 와 님보를 즐기고 파티를 열며 즐거워했다. 모두 쓰레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정확히는 쓰레기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한 남자 덕분이었다.
그는 나무거인 뿐 아니라, 그 지역의 고유문화에 맞는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미국 플로리다에는 초대형 나무 거미를 만들었고, 호주 시드니에서는 대형 나무 캥거루를 만들었다. 그가 무언가를 만들면 아이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 작품 위에 올라타 뛰어논다. 어른들이 작품을 보호하려고 아이들을 제지하면 토마스담보는 이렇게 얘기한다.
“아이들이 올라타서 놀게 하려고 만든 작품이에요. 제 작품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올라가 노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좀 기스 나면 어때요? 그 자체가 바로 자연인 거죠.”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친 뒤 그의 다음 행선지는 멕시코다. 그곳 아이들과 함께 ‘플라스틱 숲’을 만들 예정이다. 온갖 플라스틱 폐기물을 모은 뒤 사람 키보다 큰 꽃을 무려 1000개나 만들 거라고 했다. 조악할 것이란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예전에 만든 플라스틱 꽃 작품을 그가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예뻐서 놀랐다.
그는 앞으로도 전 세계를 돌면서 ‘쓰레기가 만드는 기적’을 몸소 보여줄 계획이다. 쓰레기의 가능성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뒤 그 이야기를 영화와 책으로도 만들어 더 널리 퍼뜨릴 예정이다. 제목도 정해놨다고 했다.
'작은 사람들과 큰 트롤의 위대한 이야기(the Great Story about little people and big trolls)’.
세상 사람들의 눈에 쓰레기가 아름다워보이게 하겠다는 그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날 그의 작품을 직접 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한 기자는 그 뒤부터 쓰레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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