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임산부 100명 중 3명이 태아 기형을 유발하는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먹는 여드름치료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치료법으로 치료되지 않은 중증의 여드름 치료에 쓰이는 이소트레티노인은 임산부가 복용하면 35%의 태아에서 안면기형, 신경결손, 심장기형, 귀의 선천성 기형, 구순열, 선천성흉선결손증 등 심각한 부작용이 생깁니다.
또 기형이 발생하지 않아도 60%에서 정신박약을 일으키며, 임신부의 20%가 자연유산을 경험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약물이기 때문에 이 약을 먹은 임산부의 약 50%가 임신중절(낙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는 '로아큐탄' 등의 이름으로 30여개 제품이 생산 판매 중이며, 2016년 기준으로 한해 90억원어치가 팔리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임산부약물정보센터(이사장 한정열 단국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2010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2만2천374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9%(650명)가 임신 중 또는 임신 전후에 이소트레티노인성분의 여드름치료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2일 밝혔습니다.
센터는 이런 분석 결과를 11일 국회의원회관서 기동민 의원 주최로 열린 '안전한 출산환경 정책' 토론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임산부의 이소트레티노인 복용 나이는 18세부터 46세까지 다양했지만, 가장 많이 복용하는 시기는 25∼30세 사이였고, 복용 기간은 1인당 평균 18일이었으며, 길게는 10년 이상 복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드름 치료를 위해 이소트레티노인을 먹더라도 태아 기형 예방 차원에서 약을 끊은 지 30일이 지난 후에 임신을 시도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약 80%가 이런 권고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650명 가운데 이소트레티노인 사용 중단 30일 이전에 임신해 부작용 위험에 노출된 임산부가 16%(16.0%)였고, 임신 중에 이 약을 먹은 임산부도 62.9%(409명)나 됐고, 사용 중단 후 30일을 넘겨 안전한 시기에 임신한 경우는 21.1%(137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소트레티노인은 여전히 비급여 처방이 많고, 온라인상에서 불법거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건강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7∼12월 사이 국내 이소트레티노인 처방량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비급여 조제 건수가 17만2천636건으로 보험급여에 의한 조제건수(2만5천522건)보다 6.8배나 많았습니다.
이는 중증 여드름 환자에게만 처방하게 돼 있는 이소트레티노인을 중증이 아닌 경증환자에게도 무분별하게 처방하기 때문이라는 게 센터의 분석입니다.
이처럼 과도하게 처방된 이소트레티노인은 인터넷을 통한 불법거래로 이어져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데, 여드름 환자가 제대로 된 진단이나 상담조차 받지 않은 채 손쉽게 이소트레티노인을 복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센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임신예방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별도의 임신예방프로그램(iPLEDGE)을 만들어 운영 중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의사가 환자를 등록하고 패스워드를 부여한 다음 지정된 약국의 약사한테서만 이소트레티노인을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약물 복용 중 피임과 복용 전후 임신 여부 검사를 환자의 필수사항으로 정했는데, 이런 프로그램은 현재 유럽연합과 영국, 호주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정열 교수는 "이소트레티노인은 대한민국 가임여성과 태아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도 남을 만큼 시중에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어 '태아 저격용 총탄'이라 할 수 있다"면서 "이소트레티노인 불법유통에 대한 법적 제재와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식약처는 국내에도 미국과 같은 임신예방프로그램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안전평가과장은 "이소트레티노인의 부작용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불법적인 거래가 끊이지 않고 오남용도 심각한 게 사실"이라며 "향후 불법거래를 근절하면서 처방 환자의 안전한 임신을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