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이 있습니다. 조직력이 아닌 개인 기량으로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신태용호 주장 기성용은 남아공 월드컵을 떠올리며 "당시 경기장에 서면 등번호 7번(박지성의 등번호)이 그렇게 크게 보였다. 어떻게 할 지 모를 때는 지성이 형이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했고 형에게 공을 건네면 경기가 풀렸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박지성이 단지 공을 잘 뺏기지 않거나 공격 전개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박지성과 홍명보, 황선홍은 모두 팀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었습니다. 항상 자신보다 팀을 위했고 팀은 이 선수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 '위대한 선수(great player)'란 어떤 선수인가?
세계적인 기량을 지닌 선수를 꾸미는 말 중에 '월드 클래스(world class)'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위대한 선수(great player)'로 평가받지는 못합니다.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유로 2016 결승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위대한 선수'로 불렸습니다.
호날두는 당시 부상으로 일찌감치 벤치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영국 공영방송 BBC의 축구 수석기자 필 맥널티는 결승전에서의 호날두를 '분노' '리더' '감독' '영감'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며 "그는 위대한 선수가 됐다"고 극찬했습니다.
● 월드 클래스 등극을 앞둔 손흥민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손흥민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느냐’는 우리만 궁금해 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지난달 축구대표팀 유럽원정기간 ‘종주국’ 영국 기자들은 “프리미어리그 스타 손흥민이 아시아인이란 이유로 저평가 되고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두 시즌 연속 20골 달성을 앞두고 있고, 소속팀 토트넘을 리그 선두권으로 이끌고 있는 손흥민이 기량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 손흥민이 풀어야 할 숙제 : 이타적인 이기심
여기서 한계를 넘는 ‘한 발’은 팀을 승리, 나아가 조별예선 통과로 이끄는 ‘결승골’일 겁니다. 바그너 기자는 “손흥민은 늘 발전을 꿈꾸는 겸손한 선수라 그와 인터뷰하는 게 무척 즐겁다”면서도 “공격수라면 조금 더 이기적(egotistic)일 필요가 있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면 일부러라도 좀 더 골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폴란드와 A매치에서 손흥민은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패스를 요구하며 때론 다소 불만 섞인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소속팀 토트넘에선 지난달 본머스와 경기에서도 그랬고, 최근 첼시와 경기에서도 패스하지 않고 슛을 고집하다 ‘절친’인 알리, 에릭센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표팀에선 조금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원정 기간 손흥민 선수는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팀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습니다. 북아일랜드전을 앞두고는 선수들을 모은 뒤 “지난 유럽 원정 때와 같은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서 “단단히 준비해줬으면 좋겠다”고 팀 전체를 독려했습니다. 그라운드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자처한 겁니다. 세 살 더 많은 주장 기성용, 또 아홉 살이나 더 많은 맏형 염기훈이 있지만 손흥민은 신태용호의 또 다른 ‘리더’로 자라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타적인 이기심이 필요합니다. 이기심이라도 팀을 위한 마음에서 나왔다면 팀 안에서 서로 부닥치더라도 팀은 더 강해질 겁니다. 이 난제를 풀어낸다면, 그래서 32개 본선 진출국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다면 손흥민은 한국 축구사에 ‘위대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