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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침밥이라도 먹고서 이런 일을 당했나…" 어머니의 애끓는 기다림

침몰 1년 스텔라데이지호…"블랙박스라도 건져달라"

[취재파일] "아침밥이라도 먹고서 이런 일을 당했나…" 어머니의 애끓는 기다림
 듬직한 맏아들을 지구 반대편 남대서양에서 잃어버린 64살 노모는 오늘도 눈물 바람입니다. 1년이 지났지만, 실종자를 찾기는커녕 사고 원인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게 다 자신 탓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아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진짜 무능해서. 한순간 한순간마다…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시간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밥 먹고 웃고 떠들고. 그랬을 때 내 아들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생각에 오늘 딱 죽겠더라고요 정말."
(윤미자, 박성백 스텔라데이지호 일등항해사 어머니)
윤미자, 박성백 스텔라데이지호 일등항해사 어머니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걱정입니다. 

"아침밥이라도 먹고서 이놈이 이런 일을 당한 건지 그걸 모르겠더라고요."
(윤미자, 박성백 스텔라데이지호 일등항해사 어머니)
스텔라데이지호 선장이 선사 폴라리스 쉬핑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
 2017년 3월 31일, 광석 운반선 스텔라 데이지호가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브라질에서 출발해 중국으로 항해하다가 침몰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우루과이에서도 3,000km나 떨어진 큰 바다 위.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이 실종됐습니다. 
엘피다 호에서 4월 1일 촬영한 구조 장면
 다음날인 4월 1일 필리핀 선원 2명이 구명벌을 타고 표류하던 중 지나가는 배에 구조됐습니다. 선사는 사고 12시간이 지나서야 정부에 사고 사실을 알렸고, 외교부가 우루과이와 브라질에 수색을 요청해 사고 해역에 대한 수색이 시작된 건 2일 오후였습니다. 

 가족들은 희망했습니다. 구명정에 타고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아남아 구조되기를 바랐습니다. 건강히 살아 있다는, 곧 집에 도착하니 맛있는 집밥 좀 해달라는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가족들의 간절한 희망이 무색하게, 현지의 수색 세력은 4월 중순에 벌써 철수했습니다.

 구명정과 구명벌은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상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러면 남은 구명벌 2개는 어디로 갔을까? 가족들은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찾아가 실종자 수습을 요구했지만, 문전박대당했습니다. 수색은 5월 10일부로 '통과 선박 수색'으로 전환됐습니다. 지나가는 배가 실종자를 발견하면 구조한다는 겁니다.

 수색은 사실상 끝났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은 구명벌 2개는 어디 갔을까? 선원들은 당시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왜 아직도 발견되지 않을까? 실종 선원의 가족들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애끓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
 "구명벌 2척을 찾아서 거기에 우리 가족들 생사 확인을 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죽었다고 인정할 수가 없어요. 그게 가족의 마음입니다."
(허영주, 허재용 스텔라데이지호 이등 항해사 누나)

● "블랙박스 수거는 또 다른 비극 막기 위한 첫걸음"

 실종자 가족들은 생업도 뒤로 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서명운동과 농성을 벌이는 등 꾸준히 수색 재개를 요청해왔습니다.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1호 민원, 2018년 새해 1호 민원이 스텔라데이지호 진상 규명과 실종자 수색 재개였다고 밝혔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6월 26일부터 수색선이 재투입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7월 11일에 중단됐습니다. 

 4월 9일, 미군 초계기가 포착했다는 구명벌로 추정되는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왜 당시 촬영된 사진은 공개하지 않는 걸까? 구조된 필리핀 선원들은 선사와 해경의 조사에만 응하고 입을 다물었을까? 가족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하는 가족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그냥 놓아버릴 수 없습니다. 
청와대 근처에 내걸린 현수막
 실종자 가족들은 제대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선 배의 블랙박스를 반드시 건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원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탈출했는 지는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블랙박스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에 스텔라데이지호와 똑같은 유조선을 개조한 광석운반선이 27척이 더 있습니다. 이 똑같은 노후선박들이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제 동생의 동료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배를 타고 있습니까?"
(허영주, 허재용 스텔라데이지호 이등 항해사 누나)

 정부는 오는 4월,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사고 지점의 수심은 3,000m.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미 지난 2011년 추락한 비행기의 블랙박스를 수거한 전례가 있습니다. 정부는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은 검토하되 블랙박스 수거에는 소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족들의 기다림은 아직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생환은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이 저희한테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희는 이런 재난이 저희한테 발생할 줄 몰랐어요. 재난이 발생하는데 기적이 발생 안 할까요?"
(허영주, 허재용 스텔라데이지호 이등 항해사 누나)

●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비극… 반복 막아야

 구조된 필리핀 선원은 그리스의 엘피다호에 구조된 직후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등항해사는 우리 배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었죠. 그는 우리 배 상태가 정말 나쁘다고 얘기했어요. 배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배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어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는 광화문광장에서 슬픈 이웃을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낡은 선박을 개조해서, 제대로 된 점검도 하지 않고 운항했습니다. 해경은 한국선급이 스텔라데이지호를 허위 검사를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1년의 기다림, 시민문화제'
 사고 1년째인 3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선원들의 생환을 기원하고 블랙박스 수거를 촉구하는 시민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곳에 나온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해 영상을 보며 다시 한 번 눈물바다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1년 전 같은 시간에는 평범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재난 피해의 당사자가 될 거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막상 재난 피해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까 너무 한순간 한순간이 고통이에요." 
(허영주, 허재용 스텔라데이지호 이등 항해사 누나)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의 기다림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 특히 해외에서 사고가 났을 때 이렇게 국가가 이렇게 국내에서 사고 난 것하고 해외에서 사고 난 것하고 다르게 취급하면 안 되잖아요.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앞으로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사고가 나도 안전한 국가에 대해 믿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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