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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19년 만에 푼 기무사 기억의 봉인

[취재파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19년 만에 푼 기무사 기억의 봉인

이기성 기자

작성 2018.03.31 12:39 수정 2018.04.02 14: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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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스팸 전화로 생각돼 주저하다 혹시나 해서 받아봤더니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 한다.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좀 당황스러웠다. 같은 회사 소속이지만 본부가 달라 교류가 별로 없는데다 무엇보다 기자라는 업무 특성 상 항상 인터뷰를 요청하는 쪽이었지 부탁 받는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주 연속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와 연관된 방송(17년간 봉인된 죽음 - 육군상사 염순덕 피살사건)이 나가는데 거기에 들어갈 인터뷰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1998년부터 3년 남짓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기무사 취재 경험을 염두에 두고 부탁을 해온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전화를 받고 19년 동안 잊고 지내던, 기사로 기무사와 명예훼손 소송까지 간 기억의 봉인이 풀린 느낌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7년간 봉인된 죽음 - 육군상사 염순덕 피살사건군 수사정보기관 기무사는 1950년 육군본부 직할 특무부대가 그 뿌리다. 그 후 육군 방첩부대, 육군보안사령부, 국군보안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조직과 힘이 확대된다. 군사기밀의 보안, 방첩활동, 군 관련 첩보 수집, 특정범죄 수사 등을 주요 임무로 한다고 돼있다. 장교들의 충성도, 성실성, 국가관 등을 수시로 체크해 상부에 보고하는 임무도 겸하고 있어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군 특성상 한 계급 승진이 누락되면 보통 옷 벗고 나가야 하는데 장교, 장성들의 진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보를 주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 대령이 피의자로 수사를 받게 된 적이 있었는데 기무사의 대령은 실질적 지위가 3성 장군과 같다고 주장하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기무사는 국방부 소속이지만 기무사령관이 대통령을 독대해서 보고하기 때문에 국방장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모두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령관 출신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군 내에서의 이런 위상 때문에 계급을 무시한 기무부대원들의 ‘갑질’이 자주 회자 되곤 했다.
국군기무사령부군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군 외부에서도 기무사에 대한 잡음이 많았다. 포괄적 업무 규정 때문에 민간인 사찰 문제가 항상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1990년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양심선언을 했다.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한 정치, 노동, 종교계, 재야 등 각계 민간인 1300여명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 했다고 물증을 제시하며 폭로했다. 말로만 무성하던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국방부 장관, 보안사령관이 모두 경질되고 명칭도 기무사로 바뀌게 된다. 환골탈태하겠다고 간판까지 바꿔 달았지만 그 후에도 민간인 사찰 등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윤석양 이병, 보안사의 민간인사찰 폭로 기자회견김영삼 정부 때 기무사는 또 한번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정치군인집단 하나회는 군내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는데 기무사령관도 하나회 핵심멤버였다. 하나회 별 40개가 우수수 떨어질 때 기무사령관이 포함된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 더해 김영삼 대통령은 후임 기무사령관 계급을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시키고 대통령 독대 보고도 하지 못하게 했다. 군내 사조직을 적발하는 임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이를 조장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잘나가던 때 대장이 보임됐던 사령관의 계급이 소장으로까지 내려가자 기무사 조직이 느낀 위기감은 대단했다. 6개월여 만에 복구되기는 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 기무사가 받은 충격은 컸다.
12.12 직후 쿠데타 주도세력인 하나회의 국군보안사령부 현관 앞 기념촬영15대 대통령 선거는 병역 비리가 화두였다.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병무청 모병관으로 근무하던 원용수 준위의 병무비리 사건이 터졌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돈을 받고 군 면제를 알선해 준 게 적발된 것이다. 병무비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경험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하명사건으로 정해 이를 뿌리뽑도록 지시했다. 일반 검찰, 경찰, 군 검찰로 구성된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가 세워져 서울지역에서만 2백명이 넘게 사법 처리됐다.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무부대원과 헌병까지 병무비리에 연루된 게 드러나자 이들을 전담하는 수사팀까지 꾸려졌다.

그러나 전담 수사팀의 수사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무사가 병무비리 피의자로 수사 받고 있는 기무사 요원을 상대로 수사팀의 불법 수사여부를 조사하고 기밀 사항을 누출시키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등 수사기관 간에 심각한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전담 수사팀이 해체될 위기까지 이르자 군 검찰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SBS에 제보를 해왔다. 기무사 장성과 영관급 장교들이 병무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 중인데 기무사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던 기자는 극비리에 군 검찰관, 군의관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진술서를 확보해 1999년 10월 10일 8뉴스에서 톱으로 3개의 리포트를 통해 보도했다.

반향은 대단했다. 보도가 나가자 마자 타사 기자들과 군 관계자 등으로부터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격려는 물론 염려하는 전화도 많았다. 국방부는 부인했고 기무사는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했다. 일단 다른 언론으로 기사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다. 결국 타 언론의 참여 없는, SBS 홀로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SBS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메인 뉴스 톱으로 기무사 장성 병역비리 연루의혹 리포트를 쏟아냈다.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 얼마나 긴장했던지 새벽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이 도청이 될까 봐 공중전화를 찾아 다니며 제보자들과 은밀하게 통화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수사팀을 축소, 해체하려던 국방부는 방침을 바꿔 SBS가 제기한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수사팀을 보강했다. 그러나 SBS는 소송에서 부분 패소했다. 군 검찰관의 진술과 의견 위주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특수상황에서 명예훼손을 우려해 모든 기사에 병무비리 의혹 장성들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관련 보도가 공공이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정했지만 이 이유만으로 명예훼손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도 당시 기무사 현역장성은 모두 8명으로 소규모 집단이기 때문에 기사에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특정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보도로 회사 안팎에서 큰 상을 많이 탔지만 상처도 그만큼 컸다. 무엇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기무사 관련 보도비평‘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17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묻혀있던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에 기무사가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기무사가 조직 보호 차원에서 사건을 왜곡시킨 걸까? 민주화된 지 한참 됐지만 남북 대치 상태에서 군 관련 취재는 보안과 안보라는 이유로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군의 치부를 드러내는 문제와 연결됐거나 막강한 권력과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기무사를 상대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부디 이번 방송이 촉매가 돼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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