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검찰 과거사위는 캐비닛을 열 수 있을까?

[취재파일] 검찰 과거사위는 캐비닛을 열 수 있을까?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차 사전 조사 대상 사건을 추리고 있다. 그제(27일) 대법원에서 진범에 대해 징역 15년이 확정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 1차로 12건을 선정한 데 이어, 2차로 6~7건 정도가 선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 대상 사건에는 ‘장자연 사건’과 ‘용산 참사’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사건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이유는 간명하다. 은폐된 과거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것이 미래에도 해악을 끼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검찰이 덮어버린 진실을 다시 파헤쳐 진실을 덮어버린 사람이 누군지를 규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위원회의 이름엔 '과거'가 들어가 있지만, 위원회는 ‘미래’를 향해 있다.
'약촌오거리 살인' 진범 15년 확정
● 제한된 시간, 제한된 조건…'미래'를 위한 사건 선정

하지만, 모든 사건을 다시 살펴볼 수는 없다. 검찰이 잘못 결론 내렸거나 덮어버린 사건이 셀 수 없이 많을 테지만, 제한된 시간과 인력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국민적 의혹이나 관심이 큰 사건, 소위 '시국 사건'으로 범주화된 사건들이 추가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검찰 과거사위의 시선이 '미래'를 향해있다면, 어떤 사건을 다시 살펴보는 게 미래에 더 도움이 될지도 대상 사건 선정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건을 다시 살피는 게 오염된 과거와 현재를 바로 잡아 미래로 전염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지, 어떤 사건이 좀 더 나은 검찰의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검찰의 고질적 악행 '몰래 변론'…은폐된 62건

지난해 11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청탁 명목으로 수임료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이 확정됐다. 홍만표 변호사를 기소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홍 변호사가 62건의 몰래 변론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몰래 변론’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론하는 걸 뜻하는데, 주로 법원 검찰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이 이용하는 불법 변론 방법이다.

선임계를 내지 않으니 수임료를 신고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변론하고 있는지 외부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때문에 변론 과정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고, 사건 처리가 공정했는지도 담보할 수 없다. 그런데 검찰은 홍 변호사를 기소하면서 몰래 변론한 사건 62건의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변호사에 대한 징계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에 징계를 신청하면서도 홍 변호사의 몰래 변론 목록은 전달하지 않았다.
홍만표 변호사
● 검찰 과거사위가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길 원한다면

당시 변협은 징계를 위해선 몰래 변론 내역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의뢰인 정보가 담긴 수사 자료를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면 지방변호사회를 경유해 선임계를 제출한다. 정상적이라면 변협은 어떤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 의뢰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의뢰인 정보가 담겨 있다는 이유로 자료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검찰의 이야기가 납득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듯하다. 몰래 변론한 사건 내역이 공개되면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검찰 지휘라인이 드러난다. 홍 변호사가 누구와 접촉했는지, 사건 처리는 정당하게 이뤄졌는지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홍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은 대부분 아직도 현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입장에서 사건 처리의 불공정성 여부를 떠나 홍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검찰은 재작년 홍만표 변호사를 기소하며 홍 변호사의 불법 행위에 연루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물론, 홍 변호사가 몰래 변론을 통해 청탁을 했더라도 담당 검사가 거절하고, 사건 처리를 공정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증은 해볼 일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내부 비리에 관대했고, 스스로를 ‘무결점 기관’으로 합리화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처럼 스스로 합리화해 온 ‘무결점 기관’은 허상임이 드러나고 있고, 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직 검사의 사례처럼 덮어버린 내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누군가는 홍 변호사의 몰래 변론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 전관 변호사의 전화와 검찰의 암묵적 혹은 적극적 호응 속에 누군가는 인생이 파괴되고,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검찰 과거사위가 사건 선정 기준으로 제시한 ‘인권침해 의혹’과 맞닿아 있고, ‘유사사례의 재발방지’라는 과거사위의 활동 목적과도 일치하는 사건이 홍만표 변호사의 몰래 변론 사건이다. 그 숫자가 62건이나 되고, 관련자 상당수가 현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재조사 결과가 미칠 파장과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다는 이유로 검찰 과거사위는 주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회자되고 있는 ‘장자연 사건’이나 ‘용산 참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검찰 과거사위가 단순히 과거 잘못 처리된 사건을 바로 잡는 것만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것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홍만표 변호사의 몰래 변론 사건도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까운 과거를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