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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합병 직후 취소된 에버랜드 호텔 계획…개미들의 눈물

[취재파일] 합병 직후 취소된 에버랜드 호텔 계획…개미들의 눈물
2015년 7월 2일, 삼성물산과의 합병 여부를 결정지을 주주총회를 불과 보름 앞둔 날, 제일모직은 용인 에버랜드 일대 1천3백만 제곱미터 부지에 대한 대규모 개발 계획을 부각시키는 발표를 한다. 여의도 면적의 4.4배나 되는 부지에 호텔과 콘도를 짓고 기존 에버랜드를 더욱 확장해 한국의 디즈니랜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동안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됐지만, 호텔과 콘도가 들어선다던 땅은 여전히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 "합병 찬성 해 주세요" 개미들 설득에 총력 기울인 삼성

에버랜드 대규모 개발 계획이 발표된 시점을 전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관심사는 첫째도 둘째도 합병이었다.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일반 소액 주주들, 일명 개미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구 삼성물산 주주 A씨>
"2015년 두 회사가 합병을 할 때 제가 다섯 군데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삼성전자에서도 전화를 받고 물산에서도 전화를 받고 증권에서도 전화를 받고 미전실(미래전략실)에서도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다섯 군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합병을 찬성해 달라고 5군데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구 삼성물산 주주 B씨>
"저도요. 주식 담당부서에서 과장까지 저희 집에 왔습니다. 찬성해달라고."

<구 삼성물산 주주 C씨>
"저한테도 아주 애걸하고 과장급까지 집에 왔었어요, 집 앞까지. 그래서 저 아는 주변사람까지 외국 사람이 먹튀하려고 그런다하니까 삼성 좀 도와주자 이렇게 했는데.."


삼성 직원이 과일 주스를 사들고 집까지 찾아왔다고 하는 소액 주주도 있는데,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위해 얼마나 다급하게 발로 뛰었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지만 합병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주식 3주로 쳐주는, 그러니까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가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보다 3배가 더 높다는 합병 비율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소액 주주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옷 만들고 놀이공원 운영하는 회사(제일모직)가 아파트 짓고 무역하는 회사(삼성물산)보다 3배나 더 가치가 있느냐'라는 의문이 컸던 상황.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 측이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린 반면 삼성물산의 가치는 깎아내렸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삼성물산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주주들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합병에 찬성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삼성은 합병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에버랜드 일대 대규모 개발 계획이었던 것이다.

● '에버랜드를 한국의 디즈니랜드로'…

미국의 디즈니랜드는 놀이공원 자체의 규모도 큰데다, 주변에 콘도와 호텔 단지가 있어서 며칠씩 묵으며 '관광'을 하는 이른바 '체류형 테마파크'이다. 삼성 측은이걸 모델로 삼았다. 에버랜드 주변에 아쿠아리움과 에코파크, 상업 시설 등을 지어 놀이공원의 크기를 늘린 뒤, 근처에 콘도와 호텔 단지를 조성해 관광객들이 며칠씩 묵으며 구경할 수 있는 체류형 테마파크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여부를 결정지을 주주총회를 불과 보름 앞둔 2015년 7월 2일, 당시 제일모직은 이런 계획을 부각시키는 발표를 하면서 용인시와 업무 양해각서까지 체결한다. 이후 용인시장이 에버랜드 호텔과 콘도가 들어설 부지를 직접 찾는 현장 행정을 벌였다는 기사가 나오는 등, 대대적 홍보가 이뤄진다. 당시 언론에 소개된 투자 비용만 1조 5천억 원. 제일모직 측은 이 대규모 개발 공사를 삼성물산이 맡을 것이라며, 두 회사가 합병을 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주주들을 설득한다. 에버랜드의 대규모 개발 계획을 소개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있었고 기대감은 잔뜩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개발 계획 발표 보름 뒤 열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 측의 바람대로 성사됐다.
에버랜드 개발 조감도
<2015년 발표된 에버랜드 일대 대규모 개발 조감도>
용인시정뉴스 캡처
<'제일모직-용인시, 에버랜드 개발 MOU 체결' 관련 용인 시정뉴스 ('15. 7. 2)>

● 합병되자 '에버랜드 개발 취소'…"사기 아니냐" 의혹

그런데, 합병이 성사되고 4개월 뒤,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삼성이 에버랜드 일대 대규모 개발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1조원 넘게 투입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던 삼성의 사업이 어떻게 1년도 아니고 불과 4개월 만에 전격 취소가 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이후 개발이 예정됐던 부지는 매화단지로 용도가 변경된다. 취재 중 만난 에버랜드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당시 삼성이 에버랜드 개발을 취소할 만한 사유가 딱히 없었던 걸로 본다고 얘기한다. 당시 다른 업체들은 에버랜드 근처에 호텔 신축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삼성만 개발 계획을 취소한 것이 의아했다고 공인중개사들은 말한다. 삼성과 양해각서까지 체결한 용인시 공무원들도 “황당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용인시청 공무원>
"이거 뭐 개발 한다고 했다가 바람만 잔뜩 잡고 MOU도 체결하고 막 했다가, 갑자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취소를 한다는 게 의도적으로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이거를 이렇게 '금방 뒤집을 만큼 검토가 안 된 채로 한 건가?'하는 생각은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에버랜드 개발 계획을 주총 보름 전에 발표했다 합병 직후 취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지난 3월 22일 열린 통합 삼성물산 주주총회에 참석한 소액 주주들은 에버랜드 개발 계획이 취소된 점 등을 문제 삼으며 뒤늦게 항의를 쏟아냈다.

<주주 A씨 / 3월22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中>
"(2015년 당시) 그 콘도 짓고 호텔 짓고 이런 다는 게 유야무야 딱 6개월 후에는무산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자빠져 있고. (2015년 합병은) 삼성물산을 위한 게 아니고 제일 모직을 위한 거예요.이재용 부회장이먹거리가 없으니까 삼성물산이 먹거리가 돼버린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의장님? 이재용 부회장이 주주들 돈을,칼만 안 들었지 3분의 2를 가져가버린 겁니다.그때 당시 임원으로 계신 분들은 전부 물러나야 됩니다. 직원들만 정리해고 하지 말고 임원들도 정리해고를 좀 하십시오. 주주들 위해서, 이 에버랜드 이런 것을 들먹이지 마세요."


● 삼성의 반박..알고보니 거짓말

지난 3월 19일 SBS 8뉴스를 통해 이런 개발 계획 의혹을 보도가 나가자, 삼성물산은 곧바로 반박 자료를 내놨다. 그 내용은 이렇다.

「삼성 측 반박자료 」
※ 합병이 성사되자 호텔건립을 보류했다는 보도는 지나친 억측입니다.

"회사는 2014년 7월 호텔 개발에 대한 실시계획 인가 신청을 용인시에 제출하고, 사업성 검증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후, 2016년도 경영계획과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불확실한 경영 환경과 사업 발전 방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호텔 건립을 보류하고 사업성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고 언론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인근에 4개 호텔이 총 800실 규모로 인허가를 받고 건립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당사가 호텔을 건립할 경우 공급 과잉 및 사업성 저하가 상당부분 우려되었고, 외국인 관광객 감소, 다양한 경쟁재의 출현 등 관광시장 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근에 또 다른 호텔 4개가 건립을 추진하는 상황이어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게 과연 사실인지 다시 취재에 들어갔다.

먼저, 에버랜드가 얘기하는 인근 호텔 4곳이 어디인지 알아봤다. 용인 라마다, 더 숨 포레스트, 스위트 유스호스텔, 골든 튤립 4곳으로, 모두 에버랜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들이다. 이 호텔들이 정말 삼성의 말대로 에버랜드 개발 계획이 발표됐던 2015년 당시 건립을 추진 중이었는지 알아봤다.

- 스위트 유스호스텔:6년 전인 2009년부터 영업을 하고 있던 호텔
- 더 숨 포레스트:1년 전인 2014년 12월 착공해, 2015년에버랜드 개발발표당시는 거의 완공 상태
- 용인 라마다:1년 전인 2014년 말, 에버랜드 근처에건립 될 것이라는 계획이 언론에 보도됨
- 골든튤립: 2018년 3월 현재 한창짓고 있는 호텔로, 2015년 당시엔 건립허가 신청 전

정리하자면, 삼성이 2015년 7월 에버랜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후 2015년 11월 취소할 때까지, 호텔 4곳 중 3곳은 이미 영업을 하고 있거나, 곧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고, 한 곳은 건축 계획조차 제출되기 전이었다. 삼성이 이 호텔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로 1조 원 넘게 들어가는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리 만무하며, 이런 대규모 사업을 불과 4개월 만에 철회할 정도로 이 호텔들이 돌발변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반박 자료에 적힌 '호텔 4곳이 당시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취재진은 이런 사실을 알리고 삼성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삼성물산은 질문을 문자로 달라고 하고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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