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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굴의 투혼' 신의현 "63km 별 것 아니에요"

[취재파일] '불굴의 투혼' 신의현 "63km 별 것 아니에요"

평창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 인터뷰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8.03.25 10:21 수정 2018.03.25 13: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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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간판 신의현 선수(38세)는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 평창에서 열린 월드컵 때 만나서 인터뷰를 했을 때 한국 선수 최초로 동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밝혔는데 그것을 이룬 것입니다.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서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더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개막 다음날부터 폐막일까지 9일 동안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7개 종목에 출전해 총 63.93km를 달렸습니다.

썰매에 앉아서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폴대를 쉴새 없이 지쳐야 하고 오르막과 내리막, 좌우 커브가 이어지는 눈밭을 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난데 이를 악물고 모든 경기를 완주했습니다. 게다가 금메달을 기대했던 첫 종목 바이애슬론 7.5km에서 5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주 종목 크로스컨트리 15k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 6번째 종목이었던 크로스컨트리 7.5km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어 감동을 더했습니다.
신의현 선수는 패럴림픽이 끝난 뒤 SBS를 찾아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머니 이회갑 씨(68세)와 베트남 출신 아내 김희선 씨(30세)도 함께 왔습니다. 12년 전, 대학 졸업식 전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신의현 선수를 다시 일으켜준 가족들입니다.
신의현신의현 선수는 198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와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순박한 충청도 아저씨의 느낌을 듬뿍 받았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는 연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쑥스러워했고 겸손해했습니다. 신의현 선수는 항상 패기와 투지가 넘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늘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 흘러 곁에 있는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듭니다. 신의현 선수는 이런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기운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내 김희선 씨 또한 늘 밝은 표정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Q) 신의현 선수, 이번에 무려 7개 종목에 출전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외국 선수들도 몇 명은 전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패럴림픽이 열렸기 때문에 전 종목에 참가하려고 했었고 나름대로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체력에 자신이 있었고요. 제가 장거리 종목에 좀 강합니다.(웃음)"

Q) 체력과 근성하면 신의현 선수 아닌가요?

"주위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네요. 쑥스럽네요. (웃음)"
신의현 경기모습Q) 9일 동안 총 63.93km를 달렸는데 엄청난 거리 아닌가요?

"60km는 큰 거리라고 생각 안 해요. 저희들이 훈련을 할 때 하루에 많이 타면 50km, 60km 이상도 탑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다고 생각이 안 듭니다. 60km는 문제없습니다. 많이 탈 때는 그렇게 타고, 평소에도 하루에 30km, 40km 정도씩은 훈련하기 때문에 60km는 문제없습니다. (웃음)"

Q) 훈련 과정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나요?

"제가 그동안 후회했던 지난 인생을 많이 생각하면서 타요. 옛날 생각하면서 후회되는 인생을 살지 말고 남은 인생이라도 후회없이 살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Q) 경기를 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이번에 금메달을 땄던 6번째 종목 크로스컨트리 7.5km는 '여기는 전쟁터다. 내가 여기서 지면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임했습니다. 진짜 그런 심정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의현 선수는 이번 대회 바이애슬론 사격에서 유난히 많은 실수를 범하며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호탕하게 웃어 넘겼습니다.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때 바이애슬론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그래서 내심 이번에 자신이 있었는데 바이애슬론이라는 종목이 훈련도 많이 해야 하고 상대 선수와 심리전도 펼쳐야 하고 마침 관중도 많이 오셔서 제가 잘 해야겠다는 마음에 사격할 때 저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어제 친구들을 만났는데 총 좀 잘 쏘라고 했어요. (웃음)"

Q) 신의현 선수 군대는 갔다 왔죠?

"제가 특공대 출신인데 행보관 님이(행정보급관) 제가 작업을 잘 한다고 (총 대신) 삽을 많이 주셨습니다. 삽하고 예초기하고 붓하고 페인트를 많이 주셨어요. 아..행보관님! (웃음)"
신의현 노르딕 스키 국가대표 포효하는 신의현Q) 이번에 금메달 따고 포효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앞서 바이애슬론에서 잘 안 풀렸는데 마침내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풀리니까 저도 모르게 함성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운동을 하면서 패럴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면 꼭 눈밭에다 태극기를 꽂고 함성을 질러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 꿈이 실현되어서 함성을 질렀어요. 국민 여러분께서 그걸 보고 좋아했다고 하셔서 저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Q) 금메달을 따는 순간 느낌은 어땠나요?

"제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항상 머릿속에 그려왔습니다. 그렇게 그려왔던 게 이루어지니까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Q) 동계 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것을 이뤘어요.

"그런 꿈을 계속 가져야만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뤘다고 생각해요. 저도 해보니까 꿈과 목표를 갖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Q) 이번에 관중의 응원도 큰 힘이 됐죠?

"네. 관중의 응원이 있었기에 제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응원 소리를 들으니까 등 뒤에서 누군가 저를 미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운이 엄청 났어요. 또 골인한 다음 자리를 가득 메운 관중을 보고 감동도 많이 느끼고 가슴이 많이 뜨거웠어요."

Q) 이번에 신의현 선수가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어요.

"제가 좋은 영향을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앞으로도 제가 운동을 하는 동안 계속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신의현 선수의 패기 넘치는 모습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항상 패기 있게 살려고 해요. 제 원래 마인드가 그래요. 항상 패기 있게 도전하고 안 되면 또 수정해서 도전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핸드 사이클 종목으로 2020년 도쿄 하계 패럴림픽에 도전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요?

"제가 원래 노르딕스키보다 핸드 사이클을 먼저 시작했어요. 이번에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뤘으니까 하계 패럴림픽에서 핸드 사이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일단 먼저 핸드 사이클로 도쿄 하계 패럴림픽 출전권부터 따야 되니까 그게 첫번째 목표입니다. 지금 당장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여행도 가고요.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하계 패럴림픽을 준비해야죠. 너무 몸을 안 움직이면 안 좋은 것 같아요."

Q) 해단식 때 울먹이면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죠?

"장애인 스포츠도 충분히 재미과 감동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국민들도 함께 관심을 갖고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번 대회를 많이 별러왔습니다. 장애인 스포츠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런 마음을 갖고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Q) 응원해주신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이 없었으면 제가 메달을 못 땄을 겁니다. 응원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신의현 되겠습니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신의현 선수는 어머니 이회갑 씨에게도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신의현 선수와 어머니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부담을 가질까봐 특별히 말씀은 많이 안 하시고 항상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셨습니다. 제가 이번 대회 첫 경기였던 바이애슬론 7.5km에서 금메달 못 따고 5위에 머물렀을 때 경기 후에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났어요. 아마 경기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어머니께 메달을 걸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고 어머니가 항상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머니를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가족이 잘 사는 모습 계속 보여드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웃으면서 살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신의현 선수의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두 다리를 잃고 방황하던 신의현 선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긍정적인 마음이었습니다.

신의현 선수 어머니 이회갑 씨

"나는 마음 속으로 얘가 다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여태까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거예요.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이번 대회에서 너무 많은 종목에 출전해서 처음에는 다칠까봐 걱정했어요.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음 졸이며 지켜봤어요. 첫 종목에서 메달을 못 따고 제 품에 안겨서 울었는데 그 때 '다음에 따면 되니까 괜찮다'고 위로했어요. 그리고 '항상 몸 조심하고 너가 힘 닿는데까지 해보라'고 응원했어요. 그러다가 동메달 따니까 걱정이 사라지고 이제는 금메달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금메달 땄을 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자랑스러운 아들이죠. 앞으로 바라는 점은 지금처럼 성실하게 아이들한테 잘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철인' 신의현을 만든 가족의 힘 신의현 선수는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 김희선 씨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제가 전지훈련을 가면 40일, 50일씩 집을 비우는데 이 때 애 엄마가 부모님 밥도 차려드리고, 아이들 학교도 데려다주고 했어요. 애 엄마가 없으면 거의 집이 안 돌아갈 정도에요. 정말 큰 역할을 해줘서 제가 금메달 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쑥스러워서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날만큼은 용기를 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철 없는 나를 만나서 고생 많았고 이제 철 좀 들고 있으니까 잘 보살펴주고 더 잘 할 테니까 우리 행복하게 살자. 사랑한다. 하하하. 아..이런 걸 시키시고 그래요."

아내 김희선 씨는 신의현 선수가 2006년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직후 결혼했습니다. 두 다리를 잃고 방황하던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국제 결혼을 권유했고, 김희선 씨를 반려자로 맞이 했습니다. 김희선 씨는 헌신적으로 신의현 선수를 뒷바라지 해왔습니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서 밤 농사를 짓는 시부모를 도우면서 남편과 딸 은겸(11세) 양, 아들 병철(9세) 군을 돌봤습니다. 수확한 밤을 창고에 실어 나르기 위해 지게차 운전면허까지 땄습니다.
신의현과 가족들 신의현 선수는 이번에 자녀들에게도 금메달을 따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축하드린다고 하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모습 보니까 저도 모르게 가슴도 뜨거워지고
가족들에게 더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가족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살아갈 시간이 많으니까 더 잘 하고 보살펴주겠습니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한 획을 그은 신의현 선수. 앞으로도 계속 패기와 투지 넘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듬직한 가장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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