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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투혼의 동메달' 한민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

[취재파일] '투혼의 동메달' 한민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 아이스하키대표팀 주장 한민수 인터뷰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8.03.24 09:27 수정 2018.03.24 11: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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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투혼의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장애인 아이스하키대표팀의 주장 한민수 선수가 SBS를 방문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1970년생으로 48살인 한민수 선수는 우리나라에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보급된 지난 2000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1세대입니다. 자신의 세 번째 패럴림픽이자 은퇴무대였던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며 꿈을 이뤘습니다.

한민수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 그리고 해단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국민 울보'라는 애정 어린 별명 또한 얻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회식 때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로프의 줄을 당기며 가파른 경사의 슬로프를 오르는 성화 봉송으로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민수 선수의 절절한 한 마디 한 마디는 제 가슴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무엇보다 두 딸(한소연 18세, 한소리 14세)의 아버지이기도 한 한민수 선수가 몸은 불편해도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Q) 축하드립니다. 먼저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꿈만 같아요. 2014년 소치 패럴림픽이 끝나고 은퇴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차마 은퇴를 못 하겠더라고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운동을 했는데 패럴림픽 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퇴한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해서 다시 기나긴 4년을 준비했거든요. 그리고 얻은 값진 메달이고 제가 꿈을 이룬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Q) 동메달을 가져오셨는데 볼 수 있을까요?

네. 이게 동메달입니다. 너무 묵직한 게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 평창 패럴림픽 G-50 행사할 때 제가 대표로 금메달을 공개했어요. 그런데 그 금메달을 너무 갖고 싶은 거예요. 행사가 끝나고 진행 요원들이 다시 돌려달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장난으로 '제가 갖겠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웃음) 그 정도로 메달이 간절했는데 이번에 딴 동메달은 저에게 금메달보다 더욱 값진 것 같아요. 최고의 은퇴 선물이에요. 평창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표팀, 한민수 선수 Q) 이번 대회에서 주장을 맡았는데 어떤 점을 신경 썼나요?

제가 오랜 기간 주장을 맡았어요. 한 10년 정도 주장을 맡다가 최근 3년 동안은 주장을 안 했는데 갑자기 저희 서광석 감독님께서 마지막 은퇴 무대에 주장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을 때 사실 거절했어요. 하기 싫었어요. 왜냐하면 동생들이 3년 동안 돌아가면서 주장 역할들을 잘 해줘서 제가 다시 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우리 함께 마지막 무대를 가는데 꼭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주장을 했었던 것 같아요. 지난 3년 동안 후배들이 주장을 했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 저를 너무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처음 2주 정도는 당황했어요. 제가 할 일을 후배들이 다 하고 있어서. '나는 무엇을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주장으로서 팀 내 라커룸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열심히 했는데 동생들이 너무 잘 따라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Q) 이번 패럴림픽 때 라커룸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었나요?

저희가 미국과 조별리그 3차전에서 1피리어드에 6점을 내줬습니다. 그 분위기로 간다면 남은 2, 3피리어드에서 10골을 훨씬 넘게 실점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민 여러분이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상황에서 그렇게 지면 너무나 속이 상할 것 같아서 동생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서로서로 믿자. 골리는 수비수를, 수비수는 공격수를. 우리가 이 순간을 위해서 열심히 힘든 훈련과 부상을 이겨냈는데 서로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얘기했는데 동생들도 벌써 그런 생각을 다 갖고 있었더라고요.

Q) 이탈리아와 동메달 결정전 때는 어땠나요?

저희가 지난 소치 패럴림픽 때와 지난해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번번이 이탈리아에 발목이 잡혔어요.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하거나,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골을 못 넣다 한 방을 먹는 경우였어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정말 그 뼈아픈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간절함이 컸어요. 이번에도 1피리어드와 2피리어드에 저희가 기회가 많았는데도 골이 안 들어가서 이러다가 또 지는 건 아닌가 불안하고 초조하기도 했죠. 그래서 마지막 3피리어드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죠. 서로서로 믿고 경기 끝나고 우리 웃으면서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Q) 3피리어드 종료 3분 18초 전 마침내 골이 들어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 이제 됐구나!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말고 남은 시간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자고 했어요. 3분이 남았는데 그 시간이 한 2시간 정도 걸린 느낌이었어요. (웃음) 그때 저희가 만약 이탈리아에 한 골을 허용했다면 아마 졌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생각하기에도 끔찍하죠. 관중께서 종료 10초 전부터 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해주셨는데 그때 '자 10초 만 참자'고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Q) 아 그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어요?

네 들렸습니다. (웃음)

Q) 관중의 응원이 큰 힘이 됐죠?

그럼요. 관중의 응원과 함성이 저희들이 갖고 있는 잠재된 능력까지 끄집어냈어요. 100%가 아니라 200%, 300%까지요. 정말 지치지 않더라고요. 미국과 캐나다에 크게 지고 있을 때도 관중석에서 "괜찮아, 괜찮아!"를 외쳐주시는 거예요. 그때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10초, 5초, 1초 남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진짜.

Q) 이번 대회 최고 감동의 순간이었던 동메달 확정 직후 애국가 제창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아! 다시 생각만 해도 울컥하네요. 서광석 감독님께서 깜짝 준비하셨는데 그 순간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너무나 좋았고 자긍심이 생긴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값진 동메달이기 때문에 아마 감독님이 준비하신 것 같은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전체가 다 울었어요. 그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오셔서 저희를 응원해주셨고, 국민들께서도 뜨거운 응원으로 저희를 감격하게 했습니다. 관중께서 함께 따라 불러주셔서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해냈다라는 성취감도 들었고, 그동안의 힘들었던 준비 과정도 떠올랐어요.

한민수 선수는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오늘날까지 이끌었던 스승들을 떠올리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려 잠시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개회식 때 가파른 경사를 오르며 성화봉송하는 한민수 선수 Q) 개회식 때 성화봉송 얘기를 해 볼까요? 감동적인 그 장면은 어떻게 해서 나온 건가요?

사실 개회식 때 성화봉송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첫 번째로 감독님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다음날이 바로 경기여서. 저도 충분히 그 마음을 알죠.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지만 제 욕심 때문에 팀을 망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갈등을 했어요. 저는 처음에 단순한 성화 봉송으로 생각했는데 개회식 연출하신 분들이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퍼포먼스를 준비하셨더라고요. 슬로프가 되게 경사가 져서 겁도 났었고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 하기로 했어요.

훈련에 지장이 없도록 리허설 횟수도 줄이고 훈련 시간을 피해서 했어요. 그러면서도 마지막 날까지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혹시라도 이걸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오랜 기간 함께 준비해왔던 동료들한테 너무나 큰 누를 끼치는 거잖아요. 저 때문에 팀 전체가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쩌나하고 굉장히 걱정도 되고 망설였어요 사실.


Q) 슬로프를 오를 때 무섭지는 않았나요?

사실 굉장히 무서웠죠. 경사가 심해서 내가 못 올라가면 어쩌나하는 두려움보다는 행여나 내가 다쳐서 많은 동료들이 피해를 보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어요. 하지만 제가 이 순간을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감독님께서도 잘하고 오라고 해서 마음 편하게 그 자리에 서서 멋지게 성화 봉송을 했던 것 같아요.

Q) 성화 봉송 할 때 헬멧에 두 딸의 이름을 붙여서 더욱 화제가 됐는데요?

저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한번은 큰 딸이 학교 갔다 왔는데 그때 마침 제가 집에 있었어요. 그때 딸이 "1년에 300일 밖에 나가계시는 아빠가 오셨네!"라며 저를 크게 반겼는데 그 말을 듣고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아 그랬구나 내가. 그것도 18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했구나.'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딸들이 항상 저를 반겨주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을 텐데 제 옆에 있어주는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가족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한민수 선수 가족 사진 그리고 두 딸 아이의 사춘기가 올 때에 제가 딸들한테 세뇌시킨 게 있어요. "아빠는 몸이 불편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다. 나가서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으니까 기죽지 말고 파이팅하라"는 말을 항상 해줬어요. 제가 너무 세뇌를 시켰는지 딸의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네요. "너희 아빠 너무 멋지고 심지어는 40대에서 나올 수 없는 광이 난다"는 얘기도 하고요. 그런 얘기를 아내를 통해서 듣게 됐는데 그래도 내가 딸 아이한테는 부끄러운 아빠는 아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행복했죠.

Q) 은퇴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까지 장애인 선수 출신의 아이스하키 지도자가 없어요. 그래서 첫번째로 장애인 선수 출신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저의 모교인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엽서 몇백장을 보내왔어요.

그중에 "아저씨 몸이 불편하신데 넘어졌다 일어나는 것도 빨리하시고 너무 멋졌어요. 성화봉송할 때 슬로프 올라갈 때도 너무 멋졌고. 저도 나중에 커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될 거에요"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보며 내가 스포츠를 통해서 많은 청소년들한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너무 보람됐고. 제가 18년 동안 국가대표를 하면서 많은 수혜를 받고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지도자와 강연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습니다.


Q) 이번에 메달을 땄지만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현실은 여전히 척박한데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많이 있죠 사실. 제가 지도자의 꿈을 갖고 있지만 사실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막연한 꿈을 갖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가장으로서 내가 뭐를 해야 될지 좀 막연하기도 하고. 실업팀이 강원도청 한 곳 밖에 없다보니까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거죠. 아직은.

그래서 이 기회에 실업팀이 더 생긴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좀 더 성장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13년째 실업팀을 운영하며 아낌없이 지원해준 강원도청에 진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강원도청 실업팀이 없었더라면 저희가 메달을 딸 수 없었어요. 사실.

스포츠는 투자라는 말도 있지만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미국, 캐나다와 견줄 수 있는 실력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인프라를 만들어야 되겠죠. 안정적으로 생활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장애인 전용 아이스하키장이 없어서 전국 이곳 저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힘든 환경에서 훈련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장애인 전용 링크가 하나 정도는 생겨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해요.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전설 한민수는 이제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를 목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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