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 농구 스타 김정은은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지녔지만, 데뷔 이후 12시즌 동안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5년 KEB하나은행의 전신 신세계에 입단한 뒤 계속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우승 트로피는 고사하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공식 기록도 없습니다. (2015-2016시즌 유일하게 챔프전에 올라갔지만, 첼시 리 위조 여권 사건으로 기록 자체가 삭제됐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2015-2016시즌부터 2시즌 연속 평균 득점이 한 자리 수에 머무르자, 이제 한물간 것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선수 생활 최대 위기에서 김정은은 유니폼을 갈아입는 모험을 강행했습니다. 30대의 나이에, 부상이 완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건 모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김정은은 정규리그 베스트5에 오르며 당당히 부활을 알렸고, 데뷔 13시즌 만에 첫 우승 트로피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거머쥐며 자신의 농구 커리어에 화룡점정 했습니다. 제2의 전성기를 연 김정은과 일문일답을 통해 이적 결심부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꿈만 같아요. 동료들이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승을 하면 딱 그 당시만 좋고 다음 날 되면 뭔가 마음이 허하고 또 지옥훈련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힘들 거래요. 솔직히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고, 지금 이 순간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꿈만 같습니다.
Q) 챔피언 결정 3차전 경기가 끝나기도 전부터 눈물을 흘리던데?
마지막에 점수가 벌어지면서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됐을 때부터 감정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누구한테는 우승이 밥 먹듯이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13년 동안 이 우승 때문에 굉장히 힘들기도 했고, 늘 그냥 꼴찌 팀의 에이스라고 불려서 저 스스로 자괴감도 많이 들었어요. 또 지난 2년 동안 부상으로 선수 생활하면서 거의 바닥을 쳤었어요.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었는데 이적을 하고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이렇게 정상에 서니까 더 기쁘고 더 행복하고 더 뜻깊은 것 같아요.
Q) 챔피언전 MVP에 뽑힌 뒤 동료들을 향해 큰절을 올린 이유는?
동료들, 감독님, 코치님 우리은행 모든 분께 절을 한 겁니다. 동료들도 그렇고 감독, 코치님도 저의 재기를 위해서 정말 힘쓰셨고 그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MVP 상 받았을 때 이거는 진짜 감독님, 코치님, 동료들이 만들어 준거다 생각을 했고 너무 감사한 마음에 큰절을 올린 것 같아요.
Q) 올 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제가 팀을 옮길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고 하나은행은 워낙 어릴 때부터 있었던 팀이라 되게 애정이 있었는데, 마지막 즈음에는 내가 더 이상 팀에 있으면 계륵이 되겠다는 느낌을 딱 받았어요. 또, 내 선수생활이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서 이적을 결심했어요. 친정팀을 버리고 우승하려고 배신을 했네 뭐 이런 얘기도 많이 듣기도 했어요.
근데 정말 팬분들이 안 믿어도 좋지만 제 진심은 우승하려고 온 건 아니었어요. 그냥 진짜 감독님이랑 코치님 보고 왔어요. 감독님은 제가 국가대표 때 같이 해봤는데 뭔가 특별한 힘이 있어요. 불호령도 많이 내리시고 되게 독하신 분인 것 같은데 굉장히 인간적인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저를 데리고 오면서 우리 우승해보자 뭐 이런 얘기가 전혀 아니라 "너 꼭 재기시켜주겠다. 나만 믿어라" 딱 이렇게 말씀하셔서 정말 그 한마디 믿고 왔어요.
사람들이 '우리은행 가서 밥숟가락만 얹어서 우승하려고 하네.' 이런 얘기도 많이 하는데 제가 밥숟가락만 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초반) 2연패도 하고 팀이 위기가 많았는데 그래도 팀의 일원으로서 너무 행복했고 감독님 때문에 잘 버텼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설 수 있게 된 게 다 감독님 덕분인 것 같아요.
그냥 감독님을 안았어요. 그러면서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 얘기했습니다.
Q) (우리은행 특유의) 감독을 헹가래 친 뒤 발로 밟는 우승 세리머니는 어땠나요?
저도 그냥 한 번 세게 밟았어요. 밟히는데 감독님도 되게 행복해하시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Q) 이런 세리머니가 전통이 될 만큼 우리은행의 훈련이 힘든가요?
우리은행의 그런 (지옥) 훈련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얘기가 있어서 되게 많이 겁을 먹었어요. 그런데 겁먹은 것 이상으로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와! 이거는 '내가 명예 회복하려고 이 팀에 왔지만 이러다 내가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감독님이 밉기도 하고 그랬어요. 매일 훈련하면서 진짜 우리은행 괜히 왔다 그런 후회도 했었는데 오늘 딱 이렇게 보상받고 나니까 정말 감독님 만난 게 제 농구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고 우리은행에 온 일도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요.
Q) 그렇게 힘든 훈련을 어떻게 견디나요?
아까 얘기했듯이 감독님한테는 약간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대해 주시고 무엇보다 감독님이 "네가 재기하는 게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라는 그 말을 해주셔서 더 잘 버텼던 것 같아요. 또, 우리은행에 와서 진짜 독기가 생긴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한테서 감독님이 그거(독기)를 잘 끄집어내세요. 정말 독하게 하도록 끄집어내시는데, 그거는 타고 나신 것 같아요.
Q) 훈련 이외에 힘든 건 없었나요?
우리은행 이적하고 나서 제가 힘들었던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가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선수이다 보니까 '또 다치면 어떻게 하지?'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매일 겁먹으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제가 우리은행에 이적했을 때 주위에서 감독님을 많이 비난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좀 누가 되지 않을까, 저 때문에 감독님이 비난받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 두 가지가 되게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이 동기부여가 돼서 더 독하게 훈련한 것 같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 김정은을 영입한 우리은행은 이에 대한 보상선수로 KEB하나은행에 26살의 김단비를 보냈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을 데려오기 위해 미래가 촉망되는 선수를 보냈다고 위성우 감독이 비난받을까 봐 시즌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Q) 올 시즌 내내 무릎이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제가 수술한 부위 앞쪽이 이번 시즌 들어가기 직전에 딱 찢어졌어요. 그래서 그때 수술을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진짜 거기(새롭게 도전에 들어가는 순간)서 수술을 한다는 걸 저 자신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꾹 참고 뛰었는데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잘 버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규리그 막판에는 무릎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챔프전 올라가서 내가 3경기를 연달아서 뛰어야 하는데 과연 뛸 수 있을까 되게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다행히 챔프전 올라와서 크게 아프진 않았던 것 같아요. 부상이 생각보다 큰 건 아니지만 이제 찢어진 부위를 제거하는 그런 수술은 필요할 것 같아요. 또 지금도 어깨가 완전하지는 않은데 시즌 끝나고 그동안 안 좋았던 부위도 치료도 하고 재활도 할 생각입니다.
Q) 선수로서 거의 모든 걸 이뤘는데…앞으로 목표는?
제가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선수예요. 워낙 부상을 많이 달고 있고, 진짜 아침에 눈 뜨면 제 몸이 시한폭탄 같아요. 어디가 아프고 이런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제 목표는 내년에 건강하게 한 게임도 빼놓지 않고 다 뛸 수 있는 거고요. 내년에는 보란 듯이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릴 거는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