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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비하인드]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선언과 침묵

[사건 비하인드]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선언과 침묵
배우 유아인은 소신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는 몇 안되는 배우다. 지난해 많은 이들이 그런 유아인을 지지했다. 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 붙었을 때다. 유아인은 적극적으로 SNS를 통해 누리꾼, 칼럼니스트, 정신과 박사 등과 설전을 벌이는 데 물러서지 않았다. 페미니즘과 이른바 메갈 이슈에서 소신과 주장, 반박을 멈추지 않았고, 그 논쟁은 사회적 담론으로 확대됐다.

유아인의 당시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신선했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논쟁에 임하는 유아인의 자세는 진지했고 용감했다. 익명성 뒤에서 조롱과 혐오를 드러내는 일부 세력들과는 달랐다. 유아인은 그런 논쟁 자체가 ‘퍼포먼스’이며, 현재를 반추하는 하나의 ‘이벤트’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동의했고 지지했다.

하지만 지난 9일 SNS에서 유아인이 올린 영상을 본 이들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해당 영상은 종교박해로 마녀로 몰린 남성이 화형식에 처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날은 故 조민기의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유아인이 이 영상을 게재한 이유는 뭘까. 영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짧은 글에서도 비유와 수사를 즐겼던 그였다. 이미지에 내포된 예술적 메시지 찾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그였다. 평소 유아인을 떠올린다면 영상과 故 조민기 사망 사건의 연관성에 선을 긋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하지만 유아인은 침묵했다. 더 이상 글을 통해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숱한 추측과 비판이 이어졌지만 유아인은 침묵했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로 비쳐지기도 했다. 

사실 유아인의 침묵에서 이전과는 다른 이질적 분위기가 감지된 건 그 이전부터다. 유아인은 #미투운동이 문화계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이후에도 쭉 침묵했다. 지난해 페미니즘 논쟁에 용감히 뛰어들며 대한민국 남자로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던 그였다. 그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남성이란 성별을 가진 배우가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건 흔치 않은 일이었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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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유아인은 #미투 운동에 어떠한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미투 폭로가 가장 많이 터져 나오는 건 그가 속한 문화계였다. 그런 가운데 공교롭게도 조민기 사망 당일 유아인의 SNS에 이른바 ‘마녀사냥’이라고 불리는 화형식 영상이 게재됐다. 청주대 제자 10여 명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던 교수 출신의 배우가 경찰 조사를 앞두고 사망한 걸 두고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다는 생각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의도하지 않았면 소통 실수이고, 실제로 그랬다면 #미투 운동에 대한 유아인의 생각은 지지를 얻기 어렵다.
 
#미투운동은 일부 페미니스트의 전유물도, 여성들만의 것만도 아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권력이나 위계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나도 당했다”는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게 #미투의 본질이다. 일각에서 비판도 제기되지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 취지는 지지를 받는다. 가해자를 벌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회의식을 변화하기 위한 자정 노력으로 이 운동을 받아들여서다.

유아인의 침묵이 더 아쉬운 건 이 때문이다. 침묵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점에 이견을 달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아쉽다. ‘마녀사냥’ 영상은 더욱 유감이다. 페미니스트를 선언했던 유아인이기에 그렇고, 어떤 논쟁에서도 비판을 받을지언정 소신을 밝히는데 물러섬이 없었던 유아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SBS funE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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