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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투리의 재발견…마이너(minor)의 재평가

[취재파일] 사투리의 재발견…마이너(minor)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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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지만 여운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 모두 최선을 다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 중에서도 컬링 여자대표팀이 받은 애정과 관심은 대단했다. 각종 패러디가 만개했고 대대적인 컬링 붐까지 일었다. 최근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평창 올림픽 중 가장 흥미로웠던 종목(2개 종목 복수선택)으로 응답자의 70%가 컬링을 뽑았다. 2, 3위가 스피드, 쇼트트랙 스케이팅으로 각각 29%, 26%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새롭게 관심 갖게 된 종목에서도 컬링이 55%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현상은 열악한 환경, 불모지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땄다는 사실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실력뿐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 컬링 여자대표팀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만 컬링은 특히 팀원들간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스톤이 빙판을 미끄러져 목표한 지점에 정지하거나 상대팀 스톤을 쳐낼 때 스피드와 방향이 중요한데 팀원들간 의사소통으로 이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김은정 스킵(주장)의 “영미” 외침만큼 화제를 일으킨 건 이들이 경기를 하면서 쏟아내는 사투리였다. 사투리로 작전회의를 할 때면 TV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지역출신 해설위원이 통역(?)을 해주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으니까.
SBS 컬링 중계팀-경북 의성여고 출신 이슬비 해설위원(오른쪽)
컬링 여자대표팀원 전원이 경북 의성군 출신이다. 인구 5만 3천여 명, 그나마 계속 줄고 있어서 30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방자치단체 1위로 꼽힌 지역이다. 컬링 대표팀이 쓰는 의성 사투리는 넓게 보면 경북 북부 방언에 속한다고 한다. 이 지역 사투리는 영화나 TV드라마 같은 데서 거의 노출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특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중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대부분 부산, 경상남도 방언이기 때문이다. 변변한 연습장 하나 없는 인구 절벽 위기의 초미니 고장 선수들이 생소한 사투리를 외쳐대며 쟁쟁한 외국팀을 차례차례 격파해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스토리가 있는 감동이다. 마이너가 메이저를,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시킬 때 느끼는 쾌감이랄 수 있다.
컬링 한국여자대표팀 은메달 수상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사투리는 열등하고 창피한 어떤 것, 그래서 감추고 고쳐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돼 왔다. 서울말을 쓰면 세련돼 보이고 지역 방언으로 말하면 촌스럽고 투박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정도 차이는 있으되 이런 정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치 차별적인 정도가 심한 것 같다.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사고로 단기간에 압축적 발전을 거듭해온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표준적인 것을 앞선 것으로 규정해 놓고 주변의 다양한 것들의 가치와 특성을 부정하고 복속시켜 획일화해야 개발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개그맨은 사회 곳곳에 배어있는 이런 현상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해 한 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개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개그 방송 프로 사투리 코너를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사투리 쓰는 사람을 희화화한다. 사투리 자체를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물론 지방 사람이 어색한 억양으로 서울말, 표준말 하려고 애쓰는 것을 비웃는 식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한 때 영화, TV드라마 속의 폭력배 같은 악역이나 험한 직업 군은 예외 없이 특정 지역 사투리를 쓰는 걸로 그려지는 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치적 편견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 사투리 수업이 있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국어과목 성취기준에 따라 교사들은 학생들과 각 지역 사투리 수업을 해야 한다. 일례를 들면 명필 한석봉과 그 어머니의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를 각 지방 사투리로 역할극을 하도록 하면 학생들이 조를 짜서 그 지역 사투리를 조사한 뒤 연습한 것을 발표한다. 교사는 정확한 억양과 어휘구사, 표정 연기 등을 보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식이다.

세종시 연세초등학교에서 국어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김누리 교사는 사투리 수업의 교육적 효과를 이렇게 말한다. “내 세대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주위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을 많이 해서 따라서 하기도 했고…… 그래서 대충 들으면 어느 지역 방언, 사투리인지 아는데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른다. 알더라도 사투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란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 방언도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세대가 바뀌면서 사라지고 있다. 과거 보다 사투리 교육이 더 필요한 이유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한다. 경북 의성 출신 컬링 여자대표팀이 이룬 이번 쾌거를 기화로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더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비 인기종목 컬링처럼, 그들이 사용한 사투리처럼 그 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던 사회 곳곳의 비주류, 마이너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이 아니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게 참다운 올림픽 정신이 아니겠는가? 또 그것이 탈중앙화, 분권화를 추구하는 디지털 세대의 시대 정신과도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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