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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단서 표현 트집잡더니…뒤늦게 보상

[취재파일] 진단서 표현 트집잡더니…뒤늦게 보상
지난 2016년 여름, 한 50대 여성이 오른쪽 어깨에 파스를 붙였다가 물집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이 여성은 제약사 소비자상담실로 전화해 항의했고, 그 다음날 제약사 직원들이 찾아가 상처 부위를 확인했습니다. 피해자 말에 따르면, 제약사 직원들은 부작용 부위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은 뒤 사진을 찍었고 치료비 지원도 약속했습니다. 피해자는 이 같은 내용을 녹음하겠다고 이야기한 뒤 전화 통화를 녹음해뒀습니다. 2016년 12월에 녹음 된 내용을 들어보면, 제약사 담당자는 “전문의 소견에 의해서 치료가 필요하고, 레이저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경우 도의적인 책임 차원에서 비용을 지불해 드리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피해 여성은 1년에 걸쳐 레이저 치료 등을 받은 뒤, 치료비 영수증과 피부과 전문의의 진단서를 제약사에 제출했습니다. 제약사의 말 바꾸기는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피해자가 지난해 11월 녹음한 전화 통화의 일부입니다.
 
제약사 : 일단 저희 제품을 사용하셨다는 그런 증명이 좀 필요합니다.
피해자 : 여보세요? 맨 처음에 저 만나셨던 분 맞아요?
제약사 : 맞습니다, 예.
피해자 : 제가 그때 무슨 파스 썼다고, 제가 그때 파스 갖다가 보여드렸잖아요.
(중략)
제약사 : 진단서를 받았는데, 화상이라고 내용이 나와 있고 저희 제품을 사용했다고 나와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런 부분이 좀 필요하거든요 저희가. 왜냐하면 내용관계증명이라는 부분이.
피해자 : 그러면 이 파스를 갖고 가서, 피부과 가서 이 XXX 파스라는 걸 써 갖고 내가 화상을 입었으니까 그걸 써서 보내 달라는 거잖아요.
제약사 : 그렇죠. 예예.
파스 부작용 치료비 청구했더니 말 바꾼 대형 제약사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상처 부위와 제품 겉봉을 확인했으면서도, 해당 제약사의 제품을 썼다는 증거를 다시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진단서 내용도 문제 삼았습니다. 제약사에 제출한 진단서의 병명에는 ‘2도 화상(우측 상지, 파스에 의한)’, 향후 치료 의견에는 ‘상기 환자는 상기 진단 하에 2016.12.**~2017.11.**까지 화상 처치 및 흉터와 색소침착에 대한 치료를 시행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약사는 자사 파스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진단서에 없으니,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진단서를 새로 발급받으라고 한 겁니다. 피해 여성이 어쩔 수 없이 다시 피부과 의원을 찾아가 진단서를 다시 받았더니, 이번에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며 보상금 지급을 또 미뤘습니다.
 
제약사 : 보내주신 진단서 잘 받았습니다. 근데 내용이 좀 제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대로 읽어보자면 ‘상기 환자는 환자 진술에 의하면’이라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피해자 : 제가 얘기했죠 이거 이 파스를 쓰고 이렇게 됐다고 얘기했어요.
제약사 : 그렇죠. 계속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게 전문의의 소견을 통해서 저희 제품 때문에, 제가 계속 어제 말씀드렸던 ‘사실관계’라는 부분에 대해서 좀 이제 초점을….
피해자 : 저기요 피부과 가서 원장님하고 얘기하세요. 내가 원장님 있는 데서 바꿔드릴게요. 당신네들 이렇게 자꾸 딴 소리하는데….(후략)
 
새로 받은 진단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상기 환자는 환자 진술에 의하면 000회사의 XXX 파스 사용 후 우측 상지에 화상을 입어 본원에 내원하여 상기 진단 하에 2016.12.**~2017.11.**까지 화상 처치 및 흉터와 색소 침착에 대해 레이저 토닝 치료를 시행하였습니다.’ 
파스 부작용 치료비 청구했더니 말 바꾼 대형 제약사
제약사가 문제 삼은 부분은 ‘환자 진술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입니다. 환자 진술에 따른 것일 뿐, 전문의의 소견으로 볼 수 없어서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약사측 주장입니다. 그러나 피부과 전문의들은 ‘환자 진술에 의하면’이라는 문구는 부작용 관련 진단서에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표준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제약사가 원하는 형식의 진단서를 써줄 수 있는 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뿐입니다.

예컨대 환자가 문제의 제품을 붙인 채로 와서 치료를 받았거나, 특정 제품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인과관계가 밝혀졌거나, 이런 몇몇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의사도 그 환자가 특정 의약품을 사용했다고 확언할 수 없습니다. 환부의 모양과 증상, 그리고 환자의 진술을 토대로 문제의 파스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진단서에 그대로 ‘환자 진술에 의하면’이라고 적는 겁니다.
 
제약사가 보다 엄밀한 진단을 원했다면 진단서 표현을 놓고 트집 잡을 것이 아니라, 알레르기 의심 물질을 24~48시간 등에 붙여 놓고 알레르기 반응을 재현하는 ‘알레르기 첩포 검사 결과’를 처음부터 요구했어야 합니다. 첩포 검사 결과 알레르기가 발생했다면, 의사는 제약사가 원하는 형식의 진단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제약사는 이 같은 검사를 요구한 사실이 없습니다.
파스 부작용 치료비 청구했더니 말 바꾼 대형 제약사
이 제약사는 SBS의 취재가 시작되자, 보상을 노리는 가짜 피해자, 이른바 '블랙 컨슈머'가 많아 엄밀한 진단서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아울러 2016년도에 파스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 신고 25건 중 이 한 건만 처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약사는 당초 자사 제품을 사용해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을 증빙해야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보도가 나간 뒤 피해자를 만나 곧바로 보상했습니다. 추가로 서류나 진단서를 받지 않고, 치료비를 모두 지급했습니다.
 
피해자는 뒤늦게 치료비를 받긴 했지만, 제약사와 줄다리기 하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만약 의약품이나 화장품을 사용한 뒤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소비자원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부작용 사례를 신고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약사를 통해 보상 받는 경우라면, 정확한 보상의 범위와 제출해야 하는 서류, 그 내용까지 미리 확인해 둬야 불필요한 혼란과 마음고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 파스 부작용 치료비 청구했더니…말 바꾼 대형 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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