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일본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4가지 이유

[월드리포트] 일본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4가지 이유
그제(25일) 폐막식을 끝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내렸습니다. 일본은 금메달 4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린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당시의 10개를 뛰어넘었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동계 올림픽 선수들은 하계 선수들에 비해 열악합니다. 장비는 크고 많죠, 전지 훈련지는 멀기만 합니다. 그래도 일본 선수들의 환경은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동계 스포츠 선수들을 지원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 상금은 넉넉하지 않지만…광고가 있다.

우선 일본도 우리처럼 메달리스트들을 위한 각종 상금이 있습니다. 기본 상금은 일본 올림픽 위원회(JOC)와 각 경기단체, 이렇게 두 곳에서 나옵니다. JOC의 경우 금메달 500만 엔, 은메달 200만 엔, 동메달 100만 엔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경기 단체들의 상금은 재정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돈이 많은 일본 스케이트연맹은 JOC와 비슷한 수준의 상금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고다이라 선수는 기본 상금으로만 JOC 500만엔+스케이트연맹 500만 엔=1000만 엔을 받게 됩니다.
일본 여자 컬링팀이 한국과의 준결승 도중 의견을 나누는 모습
반면 재정사정이 안 좋은 컬링협회는 상금이 없습니다. 동메달 리스트인 여자 컬링팀의 경우 JOC 상금 100만 엔뿐입니다. 뒤늦게 전국농협(JA) 측이 '장려쌀' 명목으로 6톤 분량의 쌀을 주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낳기도 했죠. 물론 소속 기업이나 단체가 주는 격려금도 있을 겁니다.

유명 선수들은 방송 출연, 광고 촬영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얻기도 합니다. 일본에선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운동선수들이 TV광고에 나옵니다. 조만간 평창 메달리스트들의 광고도 쏟아질 전망입니다. 
여자 레슬링 55kg급 올림픽 3연패의 요시다 사오리 선수가 유산균음료 광고에 나오고 있다.
학원업체 광고에 나온 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우치무라 코헤이 선수.
● 역시 기업들이 핵심 후원자

경기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운동선수를 돕는 것은 역시 후원기업들입니다. 유명 선수들은 대기업들이 앞다퉈 지원에 나서죠.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메달 종목/소속/회사 소재지/확인된 연간 매출액(한화 환율기준)]

1) 하뉴 유즈루=[남자 피겨 금메달/ANA/도쿄도/19조2500억 원]
2) 고다이라 나오=[스피드스케이트 여자 500미터 금메달+여자 1000미터 은메달/아자와 병원/나가노현/미확인]
3) 다카기 나나=[여자 팀추월 금메달+매스스타트 금메달/일본전산 산큐/나가노현/1조3616만 원]
4) 다카기 미호=[여자 팀추월 금메달+여자 1500미터 은메달+여자 1000미터 동메달/일본체육대 조교/없음]
5) 키쿠치 아야카=[여자 팀추월 금메달/후지큐코/야마나시 현/5080억 원]
6) 사토우 아야노=[여자 팀추월 금메달/다카사키 복지대학 학생/군마 현/없음]
7) 히라노 아유무=[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은메달/기노시타 그룹/도쿄도/8050억 원]
8) 와타베 아키오=[노르딕 복합 노멀힐 은메달/기다노 건설/나가노 현/7100억 원]
9) 우노 쇼마=[남자 피겨 은메달/도요타 자동차/아이치 현/116조 원]
10) 후지사와 사츠키 등=[컬링 여자 동메달/LS 키타미(팀명)/지역 중소기업 10여 곳이 지원] 
11) 히라 다이치=[남자 모굴스키 동메달/일본대 학생/없음]
12) 다카나시 사라=[여자 스키점프 동메달/일본 체육대 학생]

인기가 높은 남자 피겨에는 ANA나 도요타 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후원에 나섰군요. 메달 가능성이 높은 유망 선수들도 주요 기업들이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기업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곳은 바로 고다이라 선수를 지원해온 나가노의 중소병원 아이자와 병원입니다.
고다이라 나오
아이자와 병원은 고다이라 선수가 무명 시절이던 2009년부터 지원을 해왔습니다. 병원 이사장은 일본 언론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스케이트만 생각하는 성실한 선수였다. 우리 지역인 나가노를 대표하는 스케이트 선수가 됐으면 했다. 고다이라가 우승한다고 우리 병원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가끔 우승하면 병원을 돌면서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곤 하긴 했다."
고다이라 선수가 2013년 소치올림픽 대표팀 선발 이후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아이자와 병원 블로그)
여자 컬링팀 일명 'LS기타미'팀을 지원해온 홋카이도 시의 작은 기업들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컬링팀 선수 5명은 모두 후원 기업에 한 명씩 취업해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후지사와 사츠기 선수는 아래 명단 맨 아래 보험대리점 '컨설팅재팬'에서 일하고 있군요.
일본 여자 컬링팀 후원 기업들은 대부분 홋카이도의 중소기업들이다.
지난해 말 홋카이도 키타미 시에서 열린 컬링팀 평창올림픽 출정식. 후지사와 사츠키 선수는 컬링팀을 후원하는 지역 보험대리점 소속직원이다.
● 운동선수의 취업을 지원하는 '아스나비'

그래도 역시 메달 가능성이 적거나 비인기 종목은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기업들과 이어주는 것이 바로 JOC의 '아스 나비(athlete navigation)'입니다. 선수들이 시스템에 등록해 취업이나 후원을 요청하면, 기업들이 이에 응하는 방식입니다.
운동선수와 후원기업을 연결해주는 '아스 나비' 프로그램 이미지
 
이 시스템을 통해 취업한 선수들을 살펴보면 태권도, 아이스하키, 가라데, 육상, 스키 프리스타일 등 종목이 매우 다양합니다. 2010년 가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176명의 선수가 118개 회사에 취업해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여자 아이스하키팀 21명 가운데 14명이 이 '아스 나비'를 통해 취업한 선수들입니다. JOC도 매달 한 차례씩 일본 각지에서 '아스 나비'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어 기업들의 후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후원사에 입사한 선수들은 경기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고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은퇴한 뒤에는 대부분 후원 기업에 직원으로서 계속 다니게 됩니다. 당연히 선수들의 만족도는 높습니다. 86.7%가 "응원해주는 사람이 늘어서 힘이 된다" 66.7%는 "경제적 안정이 생겼다" 60%는 "충분한 연습이 가능해졌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기업들은 왜 선수 채용에 나섰을까요? 2016년 JOC의 설문조사에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복수 답변)
'아스나비'를 통해 운동선수를 왜 채용했나? 2016년 4월 기업 설문조사
선수를 기본적으론 한 명의 직원으로 뽑았고, 해당 운동선수 직원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줘 사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조직의 일체감까지 끌어올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는 겁니다. 외부의 기업 이미지나 경기력이나 대회성적 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무명선수까지 후원하는 시민단체들

평창 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컬링팀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20년만에 올림픽에 진출한 일본 남자 컬링팀도 많은 일본인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일본 남자 컬링팀은 세계랭킹 8위로 한국(랭킹 16위)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4승5패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일본 남자 컬링팀 후원 시민단체가 만든 신년 이미지

남자 컬링팀을 후원하는 곳은 카루이자와라는 지역의 시민단체 '스포츠 커뮤니티 카루이자와 클럽'입니다. 이 시민단체가 지역 후원 기업 20여 곳을 모아 남자 컬링팀을 지원해왔습니다. 연간 2,3억 원의 훈련비용 가운데 3분의 2는 JOC에서 나머지 3분의 1은 시민단체가 부담했다고 합니다. 올림픽 진출은 카루이자와 주민들과 지역회사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야마 현 시민단체 '에가오 스포츠 학원'은 노르딕 복합의 야마모토 고 선수와 스노보드의 고시사카 아야나 선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선수는 평창 올림픽에도 출전을 했지만, 고시사카 선수는 아직 국내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도 국내 8위에 그친 무명선수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선수 후원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 운동선수에 대한 일본 사회의 따뜻한 시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선 운동선수를 외래어로 '에스리토(athlet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에스리토는 마치 유도선수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유도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사람으로서 인정을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운동 선수들이 공립 초중고에 가서 강연도 많이 합니다.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 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죠.

물론 일본에서도 성적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결과만큼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본 여자 컬링팀의 한일 준결승 경기가 평균 시청률 25.7%(순간 최고 34.1%)를 기록했는데요, 이후 3,4위 동메달 결정전도 25.0%(순간 최고 42.3%)를 기록했습니다. 그녀들의 올림픽 도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우리 선수들도 평창에서 일본 못지않은 훌륭한 성적을 거뒀습니다.(금 5 은 6 동 4) 메달권에 들지 못한 선수들도 각자의 종목에서 인생 최대의 도전을 했습니다. 시상식 위 애국가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땀과 노력을 '에스리토'로서 존중해주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평창 선수들 모두 존경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