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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거래 혐의' 라트비아 은행, 정부에 구제금융 요청

북한과 연계된 기업들의 돈세탁을 지원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을 위기에 직면한 라트비아의 ABLV 은행이 자국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2일 보도했다.

ABLV 은행은 이날 중앙은행에 최대 4억8천만 유로(약 6천400억 원)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은행 측은 돈세탁 혐의는 부인했으나 과거에 징계 조치를 받을 만큼 큰 준법상의 과실이 있었다는 점은 시인했다.

이 은행의 에르네스츠 베르니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은행의 안정성을 다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준법 업무 책임자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라트비아 금융규제당국은 ABLV의 구제금융 요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중앙은행 측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ABLV는 라트비아의 3대 은행이어서 이 은행의 위기는 정부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큰 사안이다.

하지만 인접국인 러시아와의 긴장,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하면 구제금융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미묘한 문제다.

라트비아 국민들은 ABLV에 대한 구제금융은 이 은행과 거래하는 러시아 갑부들을 도와주는 셈이라고 보고 있다.

라트비아 의회도 법적 동의 절차를 요하는 구제금융에 대체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국방위원회 소속의 아이나르스 라트보프스키스 의원은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라면 생각도 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과거 수 세기 동안 지배했던 동유럽 지역에서 적대적 행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 지난해 수백 명의 지상군 병력과 소규모의 전차 부대를 라트비아에 파견했다.

라트비아 정부도 이에 호응해 방위비를 늘리고 러시아의 선동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음에도 의회가 공립학교에서 러시아어의 사용을 금지키로 의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트비아 시중은행들에 예치된 자금의 절반 가량은 비거주자들의 명의로 돼 있고 특히 러시아와 몰도바의 개인과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ABLV가 3대 은행으로 도약한 것도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한 덕분이었다.

라트비아 은행 감독 당국도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은행 금융당국들로부터 돈세탁 감시가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은행 감독 당국은 지난 수년간 유럽의 은행 감독 당국들에 라트비아가 시중은행들을 통해 불량국가, 국제적 제재를 받는 독점 재벌, 러시아 범죄조직의 돈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고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유럽의 은행 감독 당국도 여러 차례에 걸쳐 라트비아 당국이 자금 흐름을 감시할 인력과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의 제재 방침이 발표되자 ABLV에 대한 전면적인 지급 정지를 서둘러 발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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