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옷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직접 골라 입고 왔다는 이날의 패션은 심은경의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보여준 스타일이었다. 애써 꾸미지 않았지만 본인만의 개성이 두드러졌다.
심은경은 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배우다. 여성 배우들이 통상적으로 부여받는 팜므파탈 혹은 청순가련 캐릭터에서 벗어나 속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헨젤과 그레텔', '불신지옥'),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4차원 캐릭터('수상한 그녀','걷기왕'), 프로정신 투철한 전문직 여성('특별시민') 등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왔다.
10살 무렵 데뷔해 어느덧 데뷔 15년 차를 맞은 심은경은 최근 작품 선택의 폭을 넓히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여타 여배우들과 달리 영화에서 장식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은 비결에 대해 "요즘 영화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의식적으로 염두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저 역시 남성 배우 위주의 작품에 대해 아쉬움이 있긴 해요. 한국에도 좋은 배우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동안 그 쓰임이 폭넓진 못했죠. 여배우, 남배우를 굳이 나누는 게 그렇지만, 여성 배우들을 위한 영화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품은 그런 것들이 많이 반영된 영화였던가' 한번 돌이켜보게 되고요. 작품을 고르거나 연기를 할 때도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일단은 제가 (연기를) 잘 해야겠죠. 그래야 감독님들이 저를 쓰시는 운용 폭도 넓어질 테니까요."
상업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도시개발과 철거민 문제를 다룬 '염력'에 대해 심은경은 "의식을 하지 않고 들어간 건 아니에요. 다만 평범한 사람이 초능력을 갖게 됐을 때 어떤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재개발 문제라던가 용산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공동정범'이라는 영화에서 잘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염력'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감독님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어요.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포인트는 초능력에 좀 더 맞춰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과는 '서울역'으로 인연을 맺어 '부산행', '염력'까지 3번째 작품이다. 심은경은 "본인만의 색깔이 뚜렷하신 분이에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하시는 게 놀라워요. 보편적인 것에 대해 비틀어서 바라보는 시선을 좋아하고 늘 존경해 왔어요. 배우로서는 일단 디렉션이 명확한 감독이라 좋아요."라고 말했다.
심은경은 이번 영화에서 아빠 석헌(류승룡)과의 갈등과 화해를 설득력 있는 연기로 보여줬다. 호흡을 맞춘 류승룡과는 '불신지옥'(2009)으로 첫 호흡을 맞춘 이래 '서울역', '염력'으로 오랜 인연이 이어졌다.
'염력'에 이어 오는 28일에는 '궁합'을 선보인다. '궁합'은 조선 최고의 역술가 서도윤(이승기)이 혼사를 앞둔 송화 옹주(심은경 분)와 부마 후보들 간의 궁합풀이로 조선의 팔자를 바꿀 최고의 합을 찾아가는 역학 코미디. 2013년 개봉해 전국 900만 관객을 동원한 '관상'에 이은 역학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심은경에겐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후 무려 6년 만의 사극이다. 이번 작품의 의미는 심은경이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멜로연기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신랑감을 찾아다니는 송화옹주로 분해 조선 최고의 역술사 서도윤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연기했다.
'궁합'에서 심은경은 무르익은 미모를 한껏 뽐냈다. 오방색깔의 한복을 소화하며 단아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면모를 발산했다. "인생에서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사옵니까?"라는 당찬 대사는 연애 적령기인 실제의 심은경의 상황과 오버랩되며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2018년 상반기 2편의 영화를 선보인 심은경은 하반기에는 일본 활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난해 일본 소속사 유마니테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심은경은 일본 영화 출연을 위한 담금질을 시작했다. 관계자와의 미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어 공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어는 아직 자랑할만한 수준은 아니에요.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일본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면서 느낀 것은 거기서나 여기서나 '나만 잘하면 되겠다'였어요. 올해도 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