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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회고록을 검증한다⑤] "점심 먹는다며 연락두절된 전남경찰국장"…사실은?

[전두환회고록을 검증한다⑤] "점심 먹는다며 연락두절된 전남경찰국장"…사실은?
"광주사태 초기에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그로 인해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경찰차가 불타는 등 소요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시위진압을 지휘해야 할 전남경찰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다며 경찰국 청사를 떠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연락두절 상태가 된 것이다. 안 국장은 이날 오후 늦게 업무에 복귀했지만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후였다."
- 전두환회고록 1권 p.494
● 점심 먹는다며 연락이 두절됐다니…

故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은 5·18 당시 광주 경찰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전두환회고록 1권에는 이 안병하 전 국장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경찰이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해 계엄군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입니다. 특히 점심을 먹는다면서 나간 뒤에 연락두절됐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오후 늦게 업무에 복귀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는 겁니다. 회고록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급박한 시점에, 밥을 먹는다고 나간 뒤 연락두절이 됐다니, 참 무책임하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 전두환 씨 측 "지휘 실패는 수사를 통해 규명됐다."

5·18 재단은 '연락두절'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법원에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근무지를 이탈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죠.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전두환 씨 측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안병하 당시 전남도경국장의 지휘 실패에 대한 책임은 수사를 통해 규명됐다"고 합니다. "(안 전 국장의) 작전지휘 실패로 경찰관 순직 4명, 부상 144명, 경찰무기 200여 정 피탈 등 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생겼다"는 게 전두환 씨 측 주장입니다. 전두환 씨 측 답변서에는 '점심 먹는다고 나가서 연락두절'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 "지휘 실패는 수사를 통해 규명"…어떤 수사였을까?

안병하 전 국장의 지휘 실패는 수사를 통해 규명되었다. 전두환 씨 측이 근거로 든 '수사'는 과연 어떤 수사였을까요. 바로 1980년 당시 '합동수사본부'의 수사였습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안병하 등 주요 직위자는 합수부에서 직접 수사하고, 나머지 68명의 경찰은 경찰 자체에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1980년 전두환 씨가 장악했던 합동수사본부가 안병하 씨의 지휘 실패를 규명했다고 주장하고, 2017년 전두환 씨가 그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끄집어내 안병하 씨의 지휘 실패는 수사를 통해 규명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 피의 사건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전두환 씨가 근거로 든 합수본부의 수사 결과는 '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 피의 사건'이라는 문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지휘 실패를 규명했다고 하면서도, 정작 문건에는 "전남도경국장 안병하(당시 52세)의 직무유기 여부를 조사하였으나 동 피의 사실을 발견할 수 없어 치안본부에 이첩, 지휘 책임을 물어 면직 시킨 사건임"이라고 돼 있는 겁니다.

지휘 실패는 규명했는데, 직무유기 피의 사실은 발견할 수 없다, 지휘 실패는 맞는데 직무유기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휘 실패가 맞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습니다. 어쨌든 전두환 씨의 합동수사본부가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직무유기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점심 먹는다고 나가서 연락두절?' 수사 결과 문건에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 안병하 전 국장 "데모 군중에 포위… 식사도 공급 안 돼"

전두환 씨의 합수부도 안 전 국장의 '연락두절'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연락두절의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안 전 국장의 낮 시간대 행적은 어땠을까요. 안 전 국장은 1980년 치안본부(현재 경찰청) 감찰계에서 진술조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는 진술조서에서 "5.19~21 16:20 광주 시내를 철수할 때까지 경찰국이 완전히 데모 군중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위됨에 따라, 식사문제와 화학탄 공급이 안 되었다. 경찰국 기동대 병력 520명과 경찰국 직원 300명, 지방경찰서 지원 병력 약 500명, 약 1,320명이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자체 경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식사 공급 자체가 제대로 안 됐다는 증언입니다.
안병하 전 국장 진술조서(1980년 치안본부에서 작성,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전두환 씨가 "점심 먹으러 나갔다"고 주장한 만큼, 안병하 전 국장의 낮 시간대 행적도 기록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1980년 당시 전남경찰국이 작성한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이라는 문건이 있습니다. 문건에는 안 전 국장의 지시사항과 움직임이 시간대 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건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의 조사 때도, 2017년 전남경찰청이 5·18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역사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문건에 기록된 시간은 조작 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없고, 전두환 씨 측이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으며, 당시 경찰이 시간이나 내용을 조작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습니다.

전두환회고록에 안 전 국장이 밥 먹으러 나가서 연락두절됐다고 한 것과 관련해, 2017년 전남경찰청 보고서는 "회고록 등 일부 기록은 안 국장이 5월 21일 당시 지휘권을 포기하고 연락두절 되었다고 기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두환회고록에는 5월 21일이라고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습니다. 회고록에서 '연락두절'을 주장한 부분의 앞뒤로는 5월 18일 상황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에서 안병하 전 국장이 연락두절 된 것이 5월 18일인지, 21일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에 기록된 18일과 21일 낮 시간대 행적을 둘 다 살펴봤습니다.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전남지방경찰청 제공)

* 5월 18일
11:00 광주 시내 시위 발생하자 "분산되는 자는 너무 추격 말 것, 부상자 발생치 않도록 할 것, 기타 학생은 연행할 것"을 지시
11:55 "연행 과정에서 학생 피해가 없도록 유의" 지시
12:55 시위 중인 학생을 철저히 검거하라고 지시
15:32 "16:20부터 공수단이 투입되어 협동작전을 하게 되니 각 부대장은 현장을 유지하고 가스차 피탈이나 인명피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

* 5월 21일
11:40 CAC(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도청에서 이륙
14:13 군용 UH-1 헬기에 의해 전투부대가 착륙 예정인 바, 각 부대는 부대를 재정비하고 현 위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대기 지시
14:35 무기고 소산 지시
15:32 각 서 총기피탈방지 지시
15:46 각 경찰서 총기 소산 지시
16:00 각 서 동원부대 동원 해제
17:21 기동대 철수지시 (국장실에서 기동 1, 2, 118 중대장에게 철수 지시)

● 틈나는 대로 지시… 전남경찰청 기록에도 '연락두절'의 근거는 없어

안병하 전 국장의 5월 18일과 21일 낮 시간대 지시 사항을 보면, 그가 직무유기 수준이었다는 전두환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달라 보입니다. 낮 시간대, 안 전 국장이 지속적으로 시위 관련 지시를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두환 씨 측은 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경찰의 초동 대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현했다고 해서 이를 두고 5·18 재단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은 억지 주장"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주장만 보면 수긍할 만합니다. 당시 경찰 대처에 대해서는 군 입장에서 지지든 비판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밥 먹으러 나가서 연락두절 됐다는 식의 표현은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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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안병하를 왜 음해했나?

故 안병하 전 국장은 강원도 양양 출신입니다. 육사 8기. 총경으로 경찰에 특채돼 1971년 경무관으로 승진했습니다. 5·18 전년도인 1979년 전남경찰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온건했습니다. 5·18 당시 경찰 1중대장은 "안병하 국장은 시위 진압 시 특히 시위 학생들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도망가는 학생을 쫓지 말라고 하는 등 시위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그를 기억합니다. 당시 곡성서장은 안 전 국장이 시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있어도 절대 대응하지 말고, 일절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등 시위 시민과 경찰의 안전을 최우선에 뒀다고 했습니다. 전남지방경찰청의 지난해 5·18 조사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런 온건함을 당시 신군부는 불편해 했습니다. 군에서는 공수부대의 과격 진압을 명령한 반면, 안병하 전 국장은 군과 다른 지시를 내렸습니다. 안 전 국장이 당시 직무유기 혐의로 전두환 씨가 장악한 합동수사본부로부터 수사를 받은 맥락이 이렇습니다. 그 직무유기란, 군의 입장에서 당연히 강경 진압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불만입니다. 안 전 국장은 직무유기 혐의를 벗었지만, 면직 당했습니다.

안병하 전 국장은 합동수사본부에서 수사 받을 때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1988년 10월 숨졌습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안 전 국장은 "직무수행과 관련해 불법 구금, 고문, 혹독한 심문으로 인해 상이(상처)를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투병 중 사망"했습니다. 또 "공무수행과 법률상, 의학상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돼 그는 순직 경찰로 인정됐고, 국립현충원 경찰 묘역으로 이장됐습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숨진 분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자료조사: 서도영)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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