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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년 준비해 1분 뛴 올림픽…"그래도 행복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취재 후기

[취재파일] 4년 준비해 1분 뛴 올림픽…"그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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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는 35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남측 선수 23명, 북측 선수 12명입니다. 남측 선수 23명 중엔 열심히 훈련을 했지만 올림픽 무대를 마음껏 밟아보지 못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북측 선수들도 12명 중 5명을 제외하고는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단일팀 21번 공격수 이연정 선수는 4번째 경기까지 한 번도 뛰지 못했고, 마지막 스웨덴과 7~8위 결정전에선 두 차례 나와 1분 33초 뛴 게 전부였습니다.

엔트리를 구성하는 건 감독의 판단이지만 올림픽 시작 전 갑자기 꾸려진 단일팀, 북측 선수들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북측 선수들까지 고려해야 하니 아무래도 기존 선수들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겠죠. 여기까지만 보면 안타깝고, 좀 화도 나는 일입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이런 안타까움과 우려 속에 올림픽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전 전패, 꼴찌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시작은 혼란이었고 결론은 아쉬움입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땠을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정은 '사랑' 이었습니다.
[비디오머그]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마지막 연습 이연정 선수
● 21번 공격수 이연정 "많이 졌지만, 많이 행복했던 올림픽"

스웨덴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던 지난 20일, 관동하키센터 훈련장에서 이연정 선수를 만났습니다. 이날까지 이 선수는 올림픽 무대에 한 차례도 뛰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자가 이날 이연정 선수를 만나려고 했던 건 전날(18일) 스위스와의 1차 순위결정전 경기장에서 보여줬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이연정 선수는 스위스와의 1차 순위결정전 때 3층 관중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는 경기를 출전하지 못한 북측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4번째 경기까지 엔트리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모습이 비디오머그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북측 김은정 선수와 손을 꼭 붙잡은 채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자신의 휴대폰을 북측 선수들에게 보여주며 대화했습니다. 약 2시간 가까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선수는 북측선수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왜 손을 잡고 있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북측 선수들이랑 많이 붙어 있고, 매일 훈련도 같이 하기 때문에 너무 친해졌는데 아쉬웠어요. 그래서 손을 잡고 있었어요. 휴대폰으로 보여준 건 가족사진인데, 북측선수들이 제 가족 궁금하다고 해서 사진 보여줬어요. 막 '언니 아빠 닮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경기를 뛰지 못해 속상하진 않는지, 그래서 혹시 북측 선수들이 원망스러울 땐 없었는지도 물었습니다. 이 선수의 답은 혹시나 했던 기자의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왔는데 못 뛰어서 너무 아쉬워요. 처음에 안 친해졌을 땐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우리가 이기자'는 목표 한 가지만 보고 와서 괜찮아요. 너무 값진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많이 졌지만, 많이 배워가는 것도 많아서 행복했어요."
(수정)[비디오머그] 마지막 경기 앞둔 남북단일팀이 이별
● 다가오는 이별의 날…서로를 위해 선물 준비하는 선수들

지난 17일 훈련 때는 북측 선수인 39번 황충금 선수가 남측 20번 한도희 선수를 와락 끌어안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로 볼을 만지고, 머리카락도 떼어주고, 링크 위에 한참을 서서 서로 웃고 있었습니다. 매일 긴장되고 무뚝뚝한 모습만 보이던 북측 선수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생경했습니다.

한도희(남측) 선수 (19일 마지막 훈련 끝난 후)
"이제 헤어지니까 아쉬워서요. 기회 되면 막 안고 그래요. 사진도 많이 찍고요. 충금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북측 선수들 12명 모두에게 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고 있어요. 헤어질 때 선물로 주고 싶어서요."

최지연(남측) 선수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먹을 거 말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서 찾고 있어요. 사진도 많이 찍으려고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남는 건 사진밖에 없잖아요."

북측 선수들도 마음의 문을 많이 열었습니다. 이제까지 긴장된 모습만 보여왔던 북측 선수들은 최근엔 남측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측 선수들과 친하냐는 질문에도 큰 소리로 "정말 친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수정)[비디오머그] 남북 단일팀 마지막 경기 있던 날…선수도 감독도 '눈물'
● 5전 전패 '꼴찌'…하지만 역사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 과정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결정 과정은 분명 '정치'였고 선수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올림픽 여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정치적 고려를 떠나 남북 선수들이 서로를 대하는 진심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남북단일팀은 5차례 경기를 모두 졌고, 그 결과 꼴찌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꼴찌들이 만들어낸 하루하루는 어떤 정치나 외교 행위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화합'이었습니다. 실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새러머리 감독은 모든 경기가 끝난 후 "단일팀은 정치인들이 만들었지만 실제 하나로 뭉친 건 선수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감동을 선사해준 남북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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