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시진핑은 왜 '인터넷 차르'를 내쳤나?

[월드리포트] 시진핑은 왜 '인터넷 차르'를 내쳤나?
지난 2014년 중국의 한 고위 관리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의 유명 회사 CEO들이 앞다퉈 이 관리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팀 쿡은 새로 나온 애플 워치를 직접 채워주기도 하고, 자신의 책상까지 내준 마크 저커버그는 중국어를 구사하며 환심을 샀습니다. 미국 CEO들의 이런 정성에 중국 관리가 흡족해 하며 활짝 웃는 사진은 전 세계에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중국 관리는 자신을 환대하는 미국 CEO들의 의도를 다 안다는 듯, 깐깐하게 굴었었죠. 오히려 돈만 벌러 중국에 들어오려 한다며 큰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CEO들에게 핀잔(?)을 준 이 중국 관리는 이듬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전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습니다. 이렇게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중국 관리의 이름은 루웨이(魯火+韋)였습니다. 
루웨이
루웨이를 일컫는 별칭은 '중국의 인터넷 차르(tsar)'입니다. 중국 온라인상에서 황제처럼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인터넷 정책의 책임자로 총애를 받던 루웨이는 중국인터넷판공실 주임을 맡아 악명 높은 인터넷 검열과 통제를 주도했습니다. 만리방화벽으로 불리는 인터넷 감시 시스템을 통해 중국내 모든 온라인 매체는 물론 SNS까지도 철저히 감시 통제했습니다. 중국에서 우회 접속 가상사설망(VPN) 없이는 홍콩, 타이완은 물론 서방 세계 사이트를 접속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중국의 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라는 명분을 앞세워 루웨이는 중국을 향한 '인터넷 통제국'이란 비판을 철저히 외면한 채 변함없는 강력한 감시 시스템을 이어갔습니다.

그랬던 루웨이가 지금은 시진핑 주석이 때려잡겠다는 '부패 호랑이'가 됐습니다. 그것도 시 주석의 절대 권력이 굳건해진 공산당 19차 당 대회 이후 첫 케이스로 말입니다. 중국 공산당 중앙검사기율위가 밝힌 루웨이의 기율 위반 행위 목록은 다른 부패 공무원의 그것보다 이례적으로 길었습니다. 제일 먼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뇌물을 챙기고, 문란한 사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도마에 올랐는데, 이건 부패 관료들이라면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전형적인 내용입니다. 뇌물과 문란한 사생활만큼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 수 있는 부패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관심을 끄는 건 루웨이의 다른 기율 위반 내용입니다. '전형적으로 표리부동한…','겉으론 충성하고, 속으론 비난하고…','당 중앙을 배신하고…','자기 절제가 부족하고…'라는 표현이 곳곳에 적혀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나 명성을 깎아내릴 수 있는 모든 표현들이 총망라돼 있다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루웨이의 기율 위반을 '역사상 가장 엄중하다'고까지 평가했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 차르'가 당중앙에 책 잡힐 일을 해도 보통 크게 한 게 아니라는 걸 짐작케하는 부분입니다. 
중국 국기
말 그대로 급전직하한 루웨이의 몰락에 대해 당연히 여러가지 해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해외 매체들은 루웨이에 대한 처분이 "이례적으로 가혹하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정도라면 '최고 영도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루웨이가 시진핑 주석을 어떤 식으로든 속였고, 그게 시 주석을 매우 화내게 했을 거라는 내용입니다. 

루웨이가 평소 자기 사람을 챙기는 게 시 주석의 눈 밖에 난 이유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루웨이는 평소에도 자기 식구들을 잘 챙긴다는 평을 받았는데, 승승장구한 뒤에도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자기 사람들을 키워나갔다는 거죠. 루웨이는 일단 자기 식구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뒤를 아주 대놓고 봐주는 스타일이었다는데, 최고 권력자 입장에선 그걸 그대로 놔둘리 없다는 얘기입니다. 

중국의 여느 관료들과 다른 루웨이의 거침없는 언변도 루웨이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루웨이는 5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처럼 항상 직설적이고,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스타일이라는 평입니다. 하지만 이걸 중국 권력 사회 특성에 대입해보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멋대로 권한을  남용했다'는 기율 위반 내용상 표현과 맥이 닿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인터넷 황제로 강력한 통제와 감시 이미지가 강한 루웨이가 중국 인터넷 관료의 대표 얼굴이라는 점도 부담스러웠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루웨이가 얼굴 마담으로 존재하는 한 중국의 인터넷 환경이 통제와 감시라는 이미지가 항상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루웨이의 후임으로 중국 인터넷판공실을 맡은 쉬린이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점으로 볼 때, 중국 최고 권력층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차르의 퇴장이 중국 인터넷 해빙기를 조금이나마 가져올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전문가들의 예상은 통제가 더 강화될 거란 쪽이 더 많습니다. 중국 국영 매체 신화통신은 중국 당국이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강제 폐쇄한 인터넷 사이트가 1만 3천 개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도 강제 폐쇄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겠죠. 모바일 통제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SNS 서비스와 개인 메신저에 대한 철저한 검열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암묵적으로 묵인해왔던 우회 접속 가상사설망(VPN) 단속까지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법원은 VPN 프로그램 사업자에게 징역 5년 6월이라는 중형을 선고하기도 했죠. VPN 접속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본보기라고 평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 최고 권력 지도층인 왕후닝 상무위원은 공개석상에서 "인터넷 공간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터넷 메신저로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내보이는 중국인들을 찾는 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