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최순실 1심 선고] ① '같은 뇌물' 롯데엔 왜 유죄가 선고됐나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8.02.17 16:19 수정 2018.02.18 16: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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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최순실 1심 선고] ① 같은 뇌물 롯데엔 왜 유죄가 선고됐나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월드타워 면세점이 특허심사에서 탈락하는 사건을 경험한 후 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 취득이 절실했던 피고인의 입장에서,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러나 피고인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기업인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모두 피고인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뇌물을 공여하였다는 사정이 분명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이기는 하나, 그 영향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 대통령의 요구가 먼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70억 원이라는 거액의 뇌물을 공여한 피고인을 선처한다면, 어떠한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경쟁을 통과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실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다소 위험이 따르지만 손쉽고 보다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뇌물공여라는 선택을 하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재판장이 읽어내려가는 선고문을 들으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고 한다. 법정에 들어간 동료 기자가 실시간으로 전달한 내용을 읽고 있었던 나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별도의 통역 없이 2시간 20분 내내 선고 내용을 들었던 신 회장은 처음엔 이해를 하지 못하다가 변호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재판장이 법정구속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습니까"라고 물었고, 신 회장은 작은 목소리로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최후의 주문을 읽는 순간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선고문 곳곳엔 신 회장의 실형 선고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 많았다. '국정농단의 시작과 끝'이라 불린 최순실 씨와 함께 재판을 받아온 탓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신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역시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만하다. 1심 판결문에 나타난 신 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살펴본다.
롯데 면세점 추가, 비리1) 변호인단 "면세점 특허는 해결된 현안…독대 후 오히려 불리하게 진행"

변호인단은 신동빈 회장이 2016.3.11. 안종범 전 수석을 만났을 때나 2016.3.14.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가졌을 때, 면세점과 관련된 부탁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2016.2.18. 무렵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수를 확대하기로 하는 정부의 방침이 이미 정해져있었고, 그룹 차원에서도 그와 같은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월드타워 면세점의 경쟁력을 고려해 볼 때,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수를 확대하기만 하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검찰 측 주장과 달리 당시 면세점 특허 문제는 독대 전에 이미 해결된 현안이었다는 거다.

또한, ① K스포츠재단과의 협상 과정 및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았을 때 임원진들의 태도나, ② 단독 면담 이후 특허 수 확대정책 발표가 2016.4.로 연기되고, 사업자 선정 일정이 2016.9.에서 2016.12.로 변경됐으며, ③ 대통령이 2016.4.25. 특허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朴-申의 독대' 이후 면세점 신규 특허 절차가 오히려 롯데에 불리하게 진행된 점을 보더라도 당시 면세점 관련 청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2) 재판부 "제3자 뇌물 제공 이뤄졌으면 실제 부정한 처사 존부 필요치 않아"

그러나 변호인단의 이런 주장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기재부 이OO 사무관과 이OO 과장에  따르면, '2016.1. 청와대 지시 이후 면세점 제도개선 방안 발표 시점은 애초 2016. 3.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특허 부여에 따른 롯데, SK에 대한 특혜 시비가 2016.4.13.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면서, 결국 특허 수 확대 부분은 2016.3.31. 보세판매장(면세점) 제도 종합개선방안에서 제외됐다. (이후 2016.4. 말에 따로 발표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됐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특허 수 확대정책 발표와 사업자선정 일정이 늦춰진 배경엔 다른 면세사업자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와 총선이나 정기국회 일정 등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5년 메르스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 수가 감소해 2016. 8.경 관광동향연차보고서가 발간되고 나선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신규특허신청 공고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관광동향연차보고서가 발간되기 이전, 그리고 월드타워 면세점 영업종료일(2016.6.30.) 이전인 2016.6.3. 신규특허신청 공고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신규특허 일정이 롯데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황금연휴 시작대통령이 경제수석실에 '면세점 신규특허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닌지 재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는 사정 역시 대가관계에 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없었다는 정황이라는 변호인단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달리 판단한다.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특허의 수와 관련해 기재부에서 관세청이 제시한 3개보다 많은 5~6개를 제시한 이유에 관해 3개보다 더 숫자를 늘려야 된다고 했던 것은 롯데와 SK를 선정하기 위한 것 자체라기 보단, '롯데와 SK가 선정되더라도 다른 업체도 같이 선정될 수 있도록 조치함으로써 롯데와 SK만 선정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특혜 논란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뜻이 더 컸다'는 이OO 사무관의 진술이 근거가 됐다. '면세점 신규특허의 수에 대해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반드시 롯데에 불리한 내용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거다.

"...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단독 면담 이후 면세점 신규특허 일정이 오히려 롯데그룹에 불리하게 변경되었고, 이러한 사정은 대가관계에 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형법 제130조의 제3자뇌물수수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제공하게 하면 성립하고 실제로 부정한 처사를 하였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최순실 씨·신동빈 회장 1심 판결문 中

3) 롯데 "대통령 요구 및 대가관계 부존재" vs. 재판부 "安 진술 등 증거…충분히 인정"

롯데 측은 대통령이 2016.3.14. 단독 면담 자리에서 피고인 신동빈에게 하남 거점 체육시설 건립자금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이나 롯데그룹은 대통령의 K스포츠재단에 대한 지원 요구가 스포츠 활성화와 인재양성이라는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뿐, 대통령 혹은 특정인(최순실)의 사익추구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대가관계에 관한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신동빈그러나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명확했다. 대통령이 2016.3.14. 단독 면담에서 신 회장에게 K포츠재단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거다. 유죄의 증거로 제시한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안종범 수첩의 2016.3.14.(단독면담이 있었던 날) 기재
->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는 '3-14-16 VIP'라는 기재 아래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 올림픽, 아세안, 인재양성, 5대 거점, 하남시 장기 임대, 시설 75억 스위스 뉴슬리 → K sports'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 기재 내용 중 대통령과 다른 대기업 회장의 단독 면담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기재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에는 해당 기업의 명칭이나 해당 기업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시가 있는 반면, 위 2016.3.14.자 부분에는 그와 같은 기재가 없는 점을 언급한다. 위 수첩 기재만으로는 대통령이 신 회장과 단독 면담을 마친 후, 단독 면담에서 있었던 대화라고 전해 준 내용을 안 전 수석이 기재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인다.

(2) 안 전 수석의 진술
-> 그러나 재판부는 다음 사실(안종범의 진술)과 결합해 수첩 기재 내용의 신빙성을 판단한다.

안 전 수석은 2016.11.2. 처음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2016.2.16.경으로 기억되는데 대통령께서 그 당시 SK, 롯데, 포스코, 엘지, 현대, CJ 등 대기업 회장들과 1대1 면담을 하시면서 기업들의 애로나 해외순방 시 동행이나 각 기업의 수출 증진을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하셨다, 그 때 기업인들에게 K스포츠재단과 위 대기업들이 체육 관련된 여러 사업을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개별 면담이 끝난 후 그러한 취지로 저한테 말씀을 해 주셨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저한테 특정 기업들과의 협조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라고 하신 점에 비추어, 아마 2016.2.16. 대기업 회장들과의 개별 면담 시 K스포츠재단과 체육 분야에서 협조하는 방안을 각각 말씀하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것으로는 롯데의 경우 5대 거점 스포츠인재 양성 사업을 K스포츠재단과 하는데 대통령 지시를 받고 그 진행 경과를 정OO에게 전화하여 체크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후 '대통령이 2016.2.말경 신동빈 회장을 개별 면담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신 회장에게 5대 거점 사업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대통령께서 저한테 그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K스포츠재단에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셔서 제가 정OO한테 연락하여 물어본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안종범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위 진술이 자신의 수첩이나 일정표를 전혀 제시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후 안 전 수석이 K스포츠재단에서 롯데에 제안한 사업의 진행 상황을 알아보았다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안 전 수석은 이후에도 '대통령은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5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안 전 수석이 지원 중단을 건의하였을 때 비로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데, 어떤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답했고, 법정에서도 '기본적으로 신 회장과 만났을 때 K스포츠재단과 협력사업을 제안했다는 정도는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라고 증언한다.

(3) 쐐기를 박는 '추가 출연금 70억 반환'
-> 재판부는 대통령과 K스포츠재단의 요구에 따라 롯데가 지급하기로 한 금액 75억 원(실제로 지급한 금액은 70억 원)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가장 많이 출연한 삼성그룹의 79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고, 두 번째로 많이 출연한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의 43억 원의 1.6~ 1.7배, 롯데그룹에서 출연한 17억 원의 4배를 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롯데에서 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출연한 17억 원은, 다른 14개 대기업 그룹과 함께 전경련회비(사회협력비) 분담 비율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출연한 것인 데 반해, 추가 출연한 70억 원은 K스포츠재단에서 정한 금액으로 추가출연 그룹도 롯데가 유일했다. 롯데의 스포츠분야에 대한 연도별 지원 금액은 2013년 30억 원, 2014년 52억 원, 2015년 49억 원으로, K스포츠재단에 지급한 70억 원은 최근 3년 동안 롯데가 스포츠 분야에 지원한 각 연도의 전체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추가지원금 70억 원이 반환된 경위를 주의 깊게 봤다. 박 전 대통령은 당해 5~6월 "롯데의 추가 출연은 부적절하다"는 안 전 수석 건의를 받아들여 반환을 지시했다고 스스로 인정했고, 재판부는 이를 두고 "대통령이 사업 중단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그 시작에도 관여했음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간접사실"이라고 밝혔다.

"... 안종범으로부터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K스포츠재단은 정관에서 정한 이사회 소집절차도 생략한 채 바로 그 다음 날인 6. 7. 이사회를 개최하여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70억 원을 반환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날 롯데그룹에 그 사실을 통보한 후 2016. 6. 9.부터 같은 달 13.까지 70억 원을 반환하였다..."

"...대통령과 안종범은 위와 같이 반환을 지시하면서, 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롯데그룹에서 출연하였던 17억 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K스포츠재단 역시 위 17억 원은 반환하지 않았다. 피고인 최서원, 대통령, 안종범 모두 롯데그룹으로부터 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지급받은 17억 원과 추가로 지급받은 70억 원의 성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 최순실 씨·신동빈 회장 1심 판결문 中


재판부는 신 회장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뇌물을 공여하였다는 점은 유리한 양형요소라고 언급했다. (대법원 양형기준도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를 특별감경요소로 삼고 있다.)
법원, 재판, 생중계하지만 그보다 앞서 "통상적으로 공무원의 요구에 의하여 재물을 교부하는 경우,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입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걱정과 재물을 교부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공존하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는 점을 들어 "공무원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뇌물죄가 동시에 성립하면 그 상대방도 뇌물공여죄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뇌물공여 기업을 겁박에 의한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재판부는 신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 및 법정구속을 선고했다.

▶ [취재파일][최순실 1심 선고] ② 삼성의 청탁은 왜 이번에도 인정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