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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 "10년 넘게 글쓰기 지옥훈련 했죠"

공부하는 김 기자 - ③

[취재파일]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 "10년 넘게 글쓰기 지옥훈련 했죠"
기생충학자이자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진 서민 교수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지독한 독서가이며 글쟁이라는 점이다. 그가 비범한 글재주를 타고난 것 같지는 않다. 신문에 고정칼럼을 쓰기까지 혼자서 10년 넘게 '글쓰기 지옥훈련'을 해야 했다. 글쓰기 훈련에는 독서가 동반한다. 한 달에 10권 이상 책을 읽었다. 그 결과 기생충학자가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책도 냈다. 3년 전 <서민적 글쓰기>에 이어서 작년에는 <서민 독서>가 나왔다. 서 교수의 책은 편안하게 읽힌다. 솔직함과 유머가 담겨 있어서, 진지한 주제의 글이지만 웃으면서 읽게 된다. 공부하는 김 기자는 치열한 '혼공'으로 자기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한 서민 교수를 만나서 그의 삶과 독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 앞서서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가 지난해 말 '문빠가 미쳤다'는 제목의 블로그 글 때문에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공부 프레임'을 벗어나는 이야기로 인터뷰의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까 우려됐다. 하지만 현안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얘기도 공부 프레임으로 조명해보려고 한다. 서 교수와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 첫 소설 실패로 지옥훈련 시작

김 기자) 서 교수 책을 보면 10년간 글쓰기 지옥훈련을 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의대 교수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글쓰기를 훈련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서 교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서른 살 때 소설을 한 편 썼거든요. 1996년에 나온 <소설 마태우스>라는 책인데, 한마디로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의대 동아리 회지에서 제 글들을 발견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쓰게 된 소설인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글을 꽤 쓴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 책의 실패를 통해서 글을 잘 쓰는 게 결코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게 됐죠. 그때부터 지옥훈련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김 기자) 지옥훈련이라면 어떻게 한 겁니까?

서 교수)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매일 2편 이상 글을 써서 컴퓨터에 저장해야 잠을 잤습니다. 한 편당 길이는 A4 용지로 1장 정도? 소재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썼습니다. 책도 한 달에 10권 이상 읽었죠. 1년에 150권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독서와 글쓰기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도움받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닥치는 대로 읽고 썼죠. 신문 사설도 모아서 읽었습니다.

김 기자) 그렇게 10년이나 계속한 겁니까?

서 교수) 사실 10년도 넘게 했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길게 하라고 차마 권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10년 정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겨레 신문 칼럼을 잠깐 쓰기도 했는데, 제가 역부족이어서 그만뒀습니다. 다시 훈련에 들어갔죠. 제가 글쓰기 수련에서 하산한 것은 2009년 경향신문 칼럼을 시작한 때입니다. 칼럼이 대중의 호평을 받고 나서야 "이제 글 좀 쓸만하다"고 생각했죠.

김 기자) 요즘에는 함께 책 읽기, 글쓰기 모임도 많이 생겼어요. 서 교수가 글쓰기 훈련 중일 때라면 참여를 했을까요?

서 교수) 도움은 될 것 같은데, 제 성격상 참여는 안 했을 것 같습니다. 제게 도움이 됐던 경험을 얘기한다면, 혼자서 몇 년간 글쓰기 훈련을 한 다음에 2004년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알라딘은 '서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글을 올리면 혜택도 줬죠. 책 좀 읽은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온라인에 글쓰기 아카데미가 열린 겁니다. 그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저보다 글 잘 쓰는 사람도 많았지만 제가 '유머'로 평정했습니다. 포인트 경쟁에서 1등을 한 거예요. 그때 자신감을 얻었죠.

김 기자) 그게 일종의 독서 모임 역할을 한 셈이네요. 꾸준히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책도 여러 권 내셨는데, 본인의 전공을 살린 <서민의 기생충 열전>이 드디어 베스트셀러가 됐죠?

서 교수) 그렇습니다. 그 이전에 쓴 책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기생충 열전'이 뜬 이후에는 제게도 일정한 독자층이 생긴 것 같아요. 열심히 이런저런 주제로 책을 썼죠. 2015년에 쓴 <서민적 글쓰기>도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이었고, 작년 말에 낸 <서민 독서>는 현재 3쇄 정도 찍었어요. 그런데 출판사의 기대만큼은 아니어서 죄송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서민 교수의 저서
● 청년들이 목소리를 더 내야

김 기자) 기생충학자가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책을 낸 이유가 궁금한데요?

서 교수)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요, 그들이 너무 책을 안 읽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짧은 글만 읽다 보니까 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서와 글쓰기로 깨달은 점을 공유하고 싶었죠. 사실 저도 서른 살 이전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어요. 인생에 자신감이 없었고 염세적이었습니다. 몸도 약하고, 얼굴도 못생겼고, 세상에서 받은 게 없다고 여겨져서 억울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떠보려고 했습니다. 그 방법 중에서 제일 만만한 게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연마한 유머에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첫 소설의 결과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망했죠.

지옥훈련의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제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여가시간에는 프로야구와 술, 유머에만 관심을 쏟던 제가 사회문제에도 눈을 뜨게 됐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내가 받은 게 많구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스마트폰의 작은 공간에서 벗어나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거리에 나와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더 냈으면 합니다. 노인들보다도 적게 모이잖아요.

김 기자) 초등학생이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제한하자는 이색 제안도 하셨더군요?

서 교수) 초등학생의 수준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고전이나 성인소설을 억지로 읽으면 책이 싫어지고 어른이 되어서 오히려 책을 읽지 않게 됩니다. 차라리 초등학생 책의 권수를 제한하면 책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요? 고전읽기는 꼭 권하고 싶은데요, 단 중학교 이후에, 삶의 경험이 쌓였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축약본이 아니라 원본으로요.

김 기자) 서 교수만의 글쓰기 방식이 있습니까?

서 교수) 지옥훈련 때부터 했던 것인데요, 지금도 항상 글쓰기 노트와 필기도구를 가지고 다닙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 두죠. 그리고 밤에 컴퓨터로 글을 씁니다. 작년에는 보통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글을 썼죠. 저는 올빼미형 인간인 것 같아요. 그렇게 쓴 글이 책이나 신문으로 인쇄되어 나온 것을 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감동하고 희열을 느낍니다. 원고를 보내기까지는 불만스럽고 부끄럽다가, 인쇄가 되어 나오면 이상하게 너무 잘 쓴 것 같은 거예요.
서민 교수의 글쓰기 노트
김 기자) 서 교수는 글이나 말이나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자기 글의 특징을 꼽는다면?

서 교수) 저는 그냥 솔직하게 쓴 건데 사람들이 '자기비하'라면서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제 글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읽기가 쉽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쓰거든요. 올해 들어서는 의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을 소개하는 의학 에세이를 냈습니다. 너무 훌륭하게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뜨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욕먹을 발언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많은 책을 내서 독자들이 내게 식상한 건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김 기자) 욕먹을 발언이라면 이른바 '문빠' 관련 발언?

서 교수) 그것도 있고, 페미니즘 옹호 발언으로 일부 남성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죠.

● '문빠' 발언의 진의는?

김 기자) 인터뷰의 주제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서 교수를 만났으니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지난해 12월이죠. '문빠가 미쳤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고 며칠 후에 사과의 글을 또 올렸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서 교수는 그동안 진보적인 입장을 보여오지 않았습니까?

서 교수)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 하신 일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한 적도 없고요, 정말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 지지자들 가운데는 행동이 지나친 분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싶은 기사가 나면 몰려가서 댓글을 달면서 여론을 돌리려고 하더군요. 제천 화재나 여검사 성폭력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현 정권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쓸 경우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도 예외 없이 공격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런 지나친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는 분들이 많아졌죠. 문 대통령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은 문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빠가 미쳤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겁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반성하고 사과한 것은, '문빠'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글을 썼다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문빠라고 하면 누구를 말하는 지 사람들이 다 아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문 대통령의 일반 지지자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지지자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다시 올린 거죠. 제가 신문 칼럼을 쓸 때는 몇 번씩 미리 검토하고 나서 보내는 데 그 블로그 글은 순식간에 썼어요. 앞으로는 좀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쓰려고 합니다.

김 기자) 앞으로도 '문빠' 비판을 계속할 생각인가요?

서 교수) 그렇습니다. 댓글의 흐름을 보다가 지나치다 싶은 게 있으면 말을 해야죠. 제가 얘기를 한 다음에, 사람들이 비판할 게 있으면 좀 더 자신 있게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기자)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 일부가 자발적으로 댓글 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댓글 공작과는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 교수) 물론 불법은 아니죠. 하지만 문빠의 댓글 행태도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난독증이 많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베스트 댓글을 보고 자기 의견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조작하면 여론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이돌 스타의 팬클럽에서 우호적인 댓글을 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지만,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는 존재가 아닙니까?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도록 감시와 비판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적으로 옹호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노트를 보는 서민 교수
● 댓글 전쟁과 인터넷 난독증

기자는 지난해 SBS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던 인연으로 서 교수를 알게 됐다. 딱딱한 주제에 대해서도 톡톡 튀는 솔직한 발언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솔직함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이른바 '문빠'를 비판하는 글에서 수위가 높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는 예전부터 그런 특유의 독설과 '돌려서 까는' 어법을 구사해왔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서 그의 글을 담백하게 해석하는 게 그의 진의에 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이 될 것 같다. 공감하는 입장이건, 비판하는 입장이건 간에.

하지만 이런 평이한 해석을 모두에게 기대하기에는 우리 현실의 풍경이 무척 살벌하다. 포털에서는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기사의 댓글창마다 베스트 댓글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놓고 '평화올림픽' vs '평양올림픽'이라는 '실검 전쟁'도 벌어졌다. 서 교수의 진의가 이런 댓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인되거나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매일 제각기 관점이 다른 수많은 기사와 무수한 댓글을 접한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선이 형성된다. 이런 미디어 전쟁 상황에서 <서민독서>가 우리 사회의 문제로 지목한 '인터넷 난독증'과 자기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어버버증'은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 서 교수는 책에서 '독서'라는 처방을 내렸는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그도 새삼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다. 10년 지옥훈련까지는 아니더라도, 책 읽고 글쓰기를 연마하지 않으면 남의 의도에 끌려가기 쉬운 세상이다. 공부와 무관한 듯이 보였던 사건이 이렇게 공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공부하는 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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