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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테인리스 사천왕이 던지는 화두

참으로 오랜만에 조계사에 갔습니다. 취재원 만나러 간 김에 시간이 남아 잠깐 들른 거였습니다. 무심코 일주문에 들어서다가 걸음이 탁 멈춰졌습니다. 양쪽 기둥에 특이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천왕은 사천왕인데 지금껏 못 보던 사천왕상이었습니다.

우락부락한 인상에 부리부리한 눈, 당장에라도 내리칠 것 같은 긴 칼과 삼지창, 덩치는 좀 큽니까? 휴가철에 유명한 사찰이라도 찾아볼 때면 저를 주눅이 들게 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어려워 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허겁지겁 천왕문을 통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천왕은 좀 다릅니다. 표정은 근엄하고, 갑옷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는 건 맞는데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판지를 오려서 겹겹이 포개 붙인 것 같습니다. 옷깃이며 사천왕의 눈동자, 손톱 하나하나까지 디테일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무섭지 않으니 불경스럽게도 옷자락을 만져볼 엄두도 내봅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입니다. 자세히 보니 용접 자국도 보입니다. 작은 조각, 큰 조각 사천왕마다 8백개 넘는 조각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내친김에 사천왕상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문화재로서의 사천왕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이 성행한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부터라는 게 정설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당시의 명장인 양지가 영묘사에 사천왕상을 조성했고, 이어 사천왕사도 건립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은 682년 세워진 감은사 3층 석탑에서 나왔습니다. 탑을 해체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금동 사리함 4면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배에 짐승 모양을 새긴 갑옷으로 무장한 채 악귀와 짐승을 짓밟고 있습니다. 허리가 잘록한 이국적인 갑옷 차림에서 중앙 아시아적 요소가 느껴집니다.
감은사 3층석탑 사리함에새겨진 사천왕상 (시계방향으로-동,서,남,북)(사진=문화재청 제공)
사천왕은 본래 인도 설화에 나오는 귀신 대장입니다. 야차니 아귀니 하는 무시무시한 귀신들을 거느리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부처의 가르침에 감화돼 수미산 중턱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일을 자처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천왕이 중국을 거쳐 신라에 들어오자마자 열렬한 숭배 대상이 됐습니다. 석탑의 몸체나 석굴 입구, 나중에는 고승의 묘탑에까지 부조 형태로 새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라 전체를 부처가 사는 ‘불국토’로 개조하려고 했던 신라로서는 사천왕이 나라 전체를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당나라가 신라까지 병합하려고 노리고 있었고, 왜구의 침략도 끊이질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석굴암 사천왕상(남 증장천, 서 광목천)
석굴암 사천왕상(북 다문천, 동 지국천)(사진=석굴암 홈페이지 제공)
고려, 조선 초에도 사천왕상의 전통이 이어지지만 석등이나 탑에 새겨진 몇 점 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유명 사찰마다 조성된 거대한 사천왕상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기록상으로 1337년 고려 충숙왕 때 양산 통도사에 천왕문을 만들었다고 돼 있지만, 별도의 천왕문 건물을 세운 것도 1592년 임진왜란 이후의 일입니다.

해학적인 표정도 있지만 이 시기 사천왕들은 대체로 왜놈이건 되놈이건 당장에라도 박살 낼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꽉 다물고 있습니다. 몸집도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천왕문을 세운 사찰들은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의 집결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사천왕에게 밟힌 것도 주로 동물이던 것이 민간인이나 악귀로 바뀝니다. 신대현은 <조계산 송광사>라는 글에서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사천왕상은 거의 모두 목재가 아닌 흙으로 만들었다며 전란으로 어려워진 경제 사정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순천 송광사 사천왕상 (시계방향으로 동 지국천, 서 광목천, 남 증장천, 북 다문천) (사진=문화재청 제공)
사천왕상은 왜 사찰 입구에 세울까요? 사찰을 지키려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보다는 의미가 좀 더 큽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제게 사찰은 문화재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취재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사찰은 불교식 우주관, 그중에서도 수미산을 지상에 재현해 놓은 장소’라는 걸 이해하기 전까지는 반쪽만 알았던 셈이더군요.

수미산은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뜻도 난해해서 저로선 제대로 설명할 재간이 없습니다. 불교 서적에 나온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의 섬 같은 국토가 있는데, 우리는 남쪽 국토에 산다. 이 곳에서 수미산 입구까지 가려면 엄청나게 높은 산 7개와 바다 8개를 지나야 한다. 수미산 입구부터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을 올라야 최정상인 도리천에 이른다. 도리천은 33개의 천상 세계로 이뤄져 있고… 이 도리천을 넘어야 드디어 26단계로 된 허공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부처의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시 성문 연각 보살 3단계를 더 지나야 한다’ 등등… 각 단계 단계마다 ‘00천’이니 하는 이름이 다 있고 이 곳에 사는 신들의 이름도 다릅니다. 도저히 외울래야 외울 수조차 없습니다.

큰 사찰에 가면 일주문에 도달하기 전에 해탈교 혹은 극락교라고 부르는 다리를 지납니다. 수미산 입구까지 바다 8개를 건너야 하니 당연히 다리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어떤 사찰은 진짜로 다리 8개를 놓은 곳도 있고, 어떤 사찰은 다리를 놓기 위해 일주문 앞에 자그마한 인공 개울을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불교의 우주관을 조금이라도 더 충실히 구현하고 싶어서인 거죠.

두 번째 문인 천왕문은 수미산 중턱에 있습니다. 사천왕이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있는 곳이죠. 여기서부터 천상의 세계가 시작되니 사천왕은 단순히 사찰이나 방문객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를 최전선에서 방어하는 수문장입니다. 도심의 비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된 가람 배치를 할 수 없었던 조계사가 어떤 식으로든 사천왕상을 조성하려고 고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는 이런 식으로 사찰의 모든 건물, 성물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도, 또 그럴 의도도 없습니다. 앞서 다소 장황하게 쓴 이유는 사천왕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점을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기 위해섭니다.

과문한 탓인가요? 저는 사찰에서 이런 식으로 친절한 설명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대상만 달랐지 판에 박힌 듯 자랑 위주의 설명뿐입니다. ‘국보 00호, 서기 000년 신라 00왕때 창건, 이후 불에 타 00왕때 중창, 특징으로는 배흘림 기둥이 어쩌구 저쩌구..’ 방문객들은 ‘귀중한 문화재구나’하고 잠시 끄떡끄떡 할지 몰라도 돌아서면 머릿속에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온통 ‘모양과 형상’에 관한 설명뿐이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말하는 중생들은 뭘 모르는지 모르니 의문도 없습니다. 여기에 왜 다리를 놨고, 이 건물은 왜 ‘00궁’ ‘00전’ ‘00각’이라 부르는지, 부처 이름은 무엇이고 왜 오른쪽에 배치했는지, 부처와 보살은 어떻게 다른지, 왜 범종을 치는 당목은 물고기 모양인지, 왜 어떤 부처는 왼손을 가슴까지 올렸고, 또 어떤 부처는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는지, 석탑은 왜 주로 홀수 층인지 등등…

다시 조계사의 사천왕상 이야기로 매듭지으려 합니다. 사천왕상이라는 상(相)은 누구에게는 신성한 숭배 대상이고, 누구에게는 우상이고, 또 누구에게는 그저 스테인리스 조각입니다. 제게 조계사의 사천왕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가 나중에는 이런 저런 공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한 방편이었습니다. 중생에게 더 친근하고 쉽게 다가가는 것, 그래서 중생이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해볼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불교 현대화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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