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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가 이미 한물간 세대라고?

-시니어들의 의미 있는 반란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는 지난해 하반기에 개봉돼 큰 주목을 받은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극장에서만 327만여 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인공 나옥분 할머니의 좌충우돌 영어공부 분투기는 영화의 핵심과 닿아있으면서도 이야기를 유쾌하게 끌어가는 1등 공신이다. 70 넘은 할머니가 영어공부를 둘러싸고 손자뻘밖에 안 되는 구청 9급 공무원에게 당하는 무시와 수모가 웃음 짓게 한다. 옷장, 전자밥솥 같은 집안 살림살이마다 영어단어가 적힌 포스트잇을 빼곡히 붙여놓고 암기하는 열성 등 영어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 가는 에피소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클라이맥스…할머니가 당당하게 영어로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고 청중으로부터 받는 박수갈채 장면에 이르러서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취재파일]우리가 이미 한 물 간 세대라고?-1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아내의 갑자기 달라진 행동이 무척 신기했다. 50대 중반 전업주부 아내가 새삼스레 영어 공부한다고 학원 수강 신청을 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김씨가 영문을 몰라 이유를 물었더니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 생활화 등 영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영어를 대부분 잘한다. 남편도 직장 생활하면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웬만큼 하는 편이다. 집안에서 가족끼리 대화 중 등장하는 영어단어를 자신만 못 알아 들을 때가 있는데 내색은 안 했지만 소외감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는 거다. 집 밖에서도 영어 때문에 곤란하고 자존심 상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얼마 전 해외로 자유 가족여행 다녀온 것이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여행이 즐거웠기는 했지만 영어를 못하다 보니 아이들 하는 대로 그저 따라 다니기만 했는데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곧 아이들 독립하고 남편도 은퇴하면 부부만 해외여행 갈 기회가 많을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영어공부를 해 놓아야 한다는 거다. 주위에 자신처럼 나이 들어서 뒤늦게 영어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김씨의 아내처럼 최근 50대 이상 장년, 노년 이 가운데서도 특히 여성층에서 영어학습 열기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강의로 유명한 한 영어학원의 지난 5년간 통계를 보면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수강인원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 2012년 50대 수강생이 2만 5천여 명에서 지난해 13만 1천여 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고, 60대 이상도 1만 2천여 명에서 5년만에 6만 명 가까이 폭등했다.
(자료=시원스쿨)
이런 현상은 이 학원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게 학원 관계자의 말이다. 대부분의 영어학원이 새로운 수요자 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5,60대 이상 연령층을 선점할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5060세대를 위한 시니어 영어 첫걸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중, 장년 층도 부담 없이 수업 들으며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 ‘중, 장년 층 대상 맞춤형 영어교육 프로그램 줌마영어’ 같은 홍보문구를 앞세우고 실버세대의 눈길 사로잡기 경쟁에 나섰다.  

한국은 지난해 8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면서 UN이 정한 기준에 따라 공식적인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가 된 게 지난 2000년이니 17년 걸린 셈이다. 프랑스가 115년, 미국이 73년, 일본이 24년 걸린 기간과 비교해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자료=행정안전부)
노년 인구 증가와 더불어 지금의 노년들은 앞 세대의 노년들과 확연한 질적 차이를 보인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늘었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시간적, 경제적으로 더 나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미 있는 노후 생활을 위해 영어 학습과 같은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단 영어 공부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른 취미 활동 등에도 노년층들의 적극 참여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동안 비 경제, 비 소비활동 인구로만 평가돼온 노년 계층이 당당한 ‘파워그룹’으로 올라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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