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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로맨틱 코미디, 왜 이제야 백진희에게 왔니

[스브수다] 로맨틱 코미디, 왜 이제야 백진희에게 왔니
배우 백진희는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비주얼만 보면 로맨틱코미디 작품을 수차례 했을 거 같은데,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백진희는 로코 장르의 드라마를 한 적이 없다. 의외로 어둡고 무거운 작품,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극복하거나 독기를 품은 여성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래서 백진희는 로맨틱코미디가 정말 하고 싶었다. 본인과 잘 어울릴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간절히 원할 때, 그녀에게 찾아온 작품이 바로 KBS ‘저글러스’였다. 백진희는 ‘저글러스’에서 좌윤이 역을 맡아 책임감 강한 비서의 모습부터 사랑 앞에 솔직하고 애교 가득한 여성의 모습까지, 캐릭터와 혼연일체한 연기를 보여주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백진희는 가만히 앉아 로맨틱코미디를 기다린 게 아니었다. 수많은 로코 작품을 보며 장르와 캐릭터적 특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백진희가 그려낸 좌윤이는 그 어느 로코 속 여자주인공들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연기해야 예뻐 보일 수 있는지, 백진희는 공부한만큼 잘 표현해냈다.

하지만 백진희는 본인에게 가혹하다. 작품이 성공하고 인기를 얻어도, 스스로는 자책하고 반성하며 침잠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이번엔 자신을 칭찬해보려 한다. “너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선배의 한마디가 그녀를 다독였다.

생애 첫 로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 성과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법을 배운 백진희. 어느덧 스물 아홉살로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그녀를 만나 연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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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글러스’를 끝낸 소감부터 듣고 싶다.
A. 후속 드라마가 시작되니 실감난다. 지난 주말엔 온가족이 다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이랑 같이 밥을 먹은 게 정말 오랜만이더라. ‘저글러스’를 찍으며 두 달 가까이 쉬는 날 없이 잠도 못자고 잘 먹지도 못하며 지냈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나씩 일상으로 돌아가는 구나, 느껴졌다.

Q. 좌윤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나.
A. 윤이는 똑부러지고 감정 표현도 솔직하고, 남을 서포트하는 비서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렇게 수동적인 여자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래서 연기하면서도 신났다. 직장인의 애환도 잘 살리고 싶었다. 그 부분에서 윤이가 공감을 못 얻으면, 후반부에 윤이가 사랑을 하든 뭘 하든 시청자의 응원을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윤이에게 공감해줘서 좋았다.

Q. 비서란 소재가 신선했다. 비서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한 것인가.
A. 그렇다. 비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 책도 보고 교육도 받았다. 비서란 직업을 가진 분들은 마인드도 다르고 인생관도 바뀌어야 하더라. 많이 노출된 직업이 아니라, 제가 혹시라도 잘못 표현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비서들의 고충,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깜짝 놀란 부분도 있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비서 에피소드들이 극적으로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 현실에 더 심한 에피소드도 많더라. 그래서 작가님이 쓰신 비서 이야기에 충분히 납득이 갔다.

Q. 좌윤이는 애교도 많고 사랑스럽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 아닌가.
A. 윤이 자체가 솔직한 캐릭터라 좋으면 좋다,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해달라,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캐릭터의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마음껏 애교부릴 수 있어 좋았다. 실제로도 애교가 많은 편이다.

Q. 좌윤이와 백진희가 비슷한 점이 많은 건가.
A. 여태껏 맡았던 역할들은 제가 그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했다. 이번엔 저와 캐릭터가 비슷한 부분을 찾아 그걸 더 극대화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윤이는 회사에선 철두철미하고 완벽하려 하지만, 집에선 아무것도 안하는 여자다. 보통 일반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그래서 윤이는 회사에선 깔끔하게 오피스룩을 입지만, 집에선 180도 바뀌어 백수룩을 입는다. 그런 윤이의 모습이 저랑 비슷한 지점을 조금 더 극대화시킨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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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소에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이 뭔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중 고른다면?
A. 작품이 재밌는 게 1순위다. 읽을 때 막힘없이 잘 넘어가고, 제가 대중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걸리는 부분 없이 공감이 가야한다. 그 다음이 캐릭터다. 캐릭터가 좋고 서사가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제가 잘 소화하지 못한다면 무모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엔 무모하게라도 맡았는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이 잘 못해낼 거 같으면 아예 안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는데, 거기에 누가 되면 안되지 않나. 잘할 수 있고, 작품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도전하는 게 맞다. 한 작품씩 더 하고, 한살씩 나이를 더 먹어가며 그런 게 보인다.

Q. 그래서 좌윤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캐릭터라 생각한건가.
A. 그렇다. 윤이는 처음부터 너무 잘하고 싶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지 모르겠는데, 이런 캐릭터는 내가 잘 살릴 수 있고, 좀 더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대본을 읽으며, 윤이가 나의 외적인 부분과 만나면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올 거란 생각도 했다. 다리를 다쳐 윤이를 못하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Q. 다리 상태는 어떤가.
A. 지금은 다 낫긴 했는데,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다. 이제 드라마가 끝났으니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으며 재활에 신경쓸 계획이다. ‘저글러스’ 초반에는 발이 너무 부어 힐을 못 신었다. 그래서 카메라감독님이 앵글을 조절해 힐이 아닌 슬리퍼를 신고 촬영하곤 했다. 배려해준 모든 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Q. 상대역이었던 남치원 상무 역의 최다니엘과 연기호흡을 어땠나.
A. 예전에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할 때, 다니엘 오빠가 카메오로 나온 적이 있다. 오빠와는 그 때부터 알고지내, 이번 드라마에선 상대배우와 친해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오빠와 연기해보니 잘 맞았다. 전 대본에 충실한 스타일이고, 오빠는 대본의 빈틈을 채우는 스타일이더라. 그 합이 좋았다. 제가 쉬면서 로코 작품들을 많이 봤는데, 로코는 중반부터 남자캐릭터가 힘을 받아야 끝까지 잘 끌고 갈 수 있다. 여성시청자가 여자캐릭터에 감정이입해 남자캐릭터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시청자가 좌윤이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좌윤이가 사랑이 담긴 눈으로 남치원을 바라보는 부분들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Q. 배우 윤현민과 공개연애 중이지 않나. 여자친구의 로맨스 연기에 질투하지는 않던가.
A. 애정신에 질투났을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티를 안 냈다. 오빠는 응원 많이 해주면서 모니터도 잘 해줬다. ‘저글러스’의 전작이 오빠가 출연한 ‘마녀의 법정’이었는데, 그 바통을 제가 이어받아 우리도 신기해했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결과가 좋아 감사하다. 서로 연기조언 같은 건 하지 않지만, 대신 작품 들어갈 때 대본을 맞춰주며 도움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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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드라마를 하며,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나.
A. 단편적으로는 너무 추웠고 잠이랑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2달동안 쉬는 날이 하루도 없어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 좌윤이가 끌고 가야하는 분량이 많아 쉬지 못하고 계속 밤을 새며 촬영했다. 다친 발은 부어오고 얼굴이 점점 피폐해지더라.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체력적으로 지치다보니 처음처럼 대본을 많이 보지 못하고 촬영장에 나갔다. 혹시라도 제가 디테일을 놓치고 연기할까봐, 그게 불안했다. 다른 배우들이나 감독님이 잘 잡아줄거라 생각하며 믿고 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두려움과 계속 싸우며 연기해야 했다.

Q. ‘저글러스’를 통해 배우 백진희가 배운 게 있다면?
A. 첫촬영 2주를 앞두고, 제가 제일 늦게 작품에 캐스팅됐다. 4부까지 대본을 보는데 제가 할게 너무 많더라. 처음엔 솔직히 여유가 없었다. 초반엔 좌윤이 스토리로 전개가 흘러 제가 끌고 가야 했는데, 혹시나 제가 못해서 드라마가 주저앉을까봐 걱정이 앞섰다. 그 이유 때문에 주변 배우들을 잘 둘러보지 못했다. 그러다 극중 엄마 역을 맡았던 이지하 선배가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절 믿어주시는 그 말에 크게 힘을 얻었다.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더라. 또 드라마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시청자의 공감을 받다보니, 주변 배우들도 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힘으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Q. 힘들었지만 무사히 잘 끝냈다. 드라마도 캐릭터도 사랑받고.
A. 이 드라마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건, 저 혼자의 힘이 아니다. 편집도 음악도, 그 외 모든 게 다 좋았다. 중후반부터는 모든 캐릭터들이 제 역할을 잘해줘 그 합심으로 끝까지 잘 갈 수 있었다. 종방연 때 봉전무 역의 최대철 선배가 “네가 초반애 잘해서 드라마가 잘 끝난 거다. 너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알아야 지치지 않는다고 조언해주셨다. 그 말이 마음에 크게 와닿더라. 제가 최선을 다했기에 드라마를 잘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기로 했다.

Q. 원래는 자신한테 가혹한 편인가보다.
A. 작품이 끝나면 다시 보며 문제점을 찾으려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나, 그와 나의 차이는 뭔가 생각하며 스스로 작아지는 시간들을 갖는다. ‘미씽나인’도, ‘내딸금사월’도 그랬다. 작품이 끝난 후에는 다시 되돌아보며 스스로 작아져 바닥 끝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혼자 공부도 많이 한다. 로코가 하고 싶어,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로코를 하나 연구했다. 로코 속 여자캐릭터가 사랑받는 법을 익히려 노력했다. 로코가 정말 내게 왔을 때 정작 못해낼까봐, 계속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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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그토록 로코를 원한 건가.
A. 그동안 어두운거 위주로 연기했다. 성공한 작품들도 있지만, 아무리 드라마가 잘 되더라도 제 캐릭터가 외면받으면 그만큼 힘든 게 없더라. 그걸 타파하고 싶었다. 또 로코를 하면, 제가 가진 작고 왜소한 외적인 모습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로코가 제게 오면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로코들을 계속 찾아보며 연구했다. ‘또오해영’, ‘내성적인 보스’, ‘연애말고결혼’ 같은 작품부터 ‘공블리’ 공효진 언니, 신민아 언니 작품들도 챙겨봤다. 사랑스러운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의 작품들도 봤다.

Q. 어느덧 데뷔 10년에,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A. 아직은 연초라 실감은 안 나는데, 연말이 되면 기분이 이상할거 같다. 그래도 20대 초반보단, 지금의 제가 더 좋다. 그 땐 너무 많이 흔들렸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지금은 경험치가 안에 있다 보니 조금은 유연해진 거 같다.

Q. 20대 초반에 힘든 시기를 보냈나보다.
A.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는 게 좋은 거 같진 않다. 고민도 많아지고, 어린 나이에 연배 많은 분들을 대하다보니 눈치도 봐야하고 의도치 않게 실수도 한다.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모르는데 사회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어른이라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이 전부인데, 촬영장에서 그보다 나이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니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작품을 쉼없이 하며 하나씩 배워갔다. ‘기황후’나 주말드라마처럼 호흡이 길고 선생님들이 많은 작품들이 큰 가르침이 됐다. 연기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외적인 것들도 많이 배웠다.

Q. 30대엔 어떤 배우가 되길 꿈꾸나.
A. ‘오만과 편견’의 이현주 작가님이 제 멘토다. 제 고민을 이야기 하면 “사람은 결이 있어야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결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30대 중반쯤엔 삶의 결이 묻어나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 그 결은 인생의 여러가지 일을 겪고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져나간다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강선애 기자     

(SBS funE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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