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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음란사이트 운영해 번 '비트코인'…첫 몰수 판결 의미는?

[취재파일] 음란사이트 운영해 번 '비트코인'…첫 몰수 판결 의미는?
지난달 30일, 가상 화폐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를 법원이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습니다. 33살 안 모 씨가 음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216 비트코인 중 191 비트코인에 대해 법원이 원심을 깨고 몰수 결정을 내린 겁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원심을 뒤집은 ‘비트코인 몰수’ 판결이 갖는 시사점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검은 돈'도 가상 화폐로…국내 몰수 첫 사례
가상화폐, 비트코인, 법원 가치인정
음란사이트 운영자가 이용자들에게 대가로 가상 화폐를 받은 이번 사건은 가상 화폐가 ‘검은 돈’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에 사용된 ‘검은 돈’은 재판 과정을 거쳐 몰수나 추징 결정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안 씨의 비트코인을 몰수해 달라’는 검찰의 청구를 기각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①비트코인 일부를 범죄 수익으로 특정하기 어렵고, ②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어 몰수하기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①비트코인 일부를 범죄 수익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수사 과정에서의 기술적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존의 현금 흐름 추적과는 달리 가상 화폐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선 새로운 수사 기법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1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이러한 기술적 장벽 때문에 안 씨가 받은 비트코인이 음란사이트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원지검은 1심 선고 뒤 ‘비트코인 환수팀’을 만들었고,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와 함께 비트코인이 범죄 수익이란 점을 입증하기 위한 추가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수사팀은 비트코인에서 생성되는 ‘비트코인 주소’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안 씨가 갖고 있던 216 비트코인 중 191 비트코인이 음란 사이트 운영 수익임을 입증해냈습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범죄 수익에도 가상 화폐가 쓰이는 현실이 도래했고, 수사기관 또한 이에 맞춰 새로운 수사 기법을 발전시켜야 했던 겁니다.

②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어 몰수하기 적절치 않다는 원심 판단을 뒤집기 위해 검찰은 해외 사례를 수집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이번 2심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된 것이 2013년 미국의 ‘실크로드 사건’입니다.

‘실크로드’는 ‘무엇이든 거래할 수 있다’는 모토로 2010년대 초 미국에서 인기를 끈 온라인 거래 사이트입니다. 이베이(e-Bay)와 비슷하게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시켜 주는 모델이었는데, 문제는 이 사이트에서 불법 위조 상품은 물론 마약까지 빈번하게 거래됐다는 겁니다. FBI는 결국 수사에 착수해 2013년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울브리치를 체포했고, 울브리치가 사이트 운영 수익으로 받은 당시 수 백만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압수했습니다. (FBI가 압수한 울브리치의 비트코인은 당시 채굴 총량의 1.5%에 달했다고 합니다.)

압수된 비트코인에 대해 뉴욕 주 지방법원은 2014년 몰수를 판결했고, 수사 당국은 몰수한 비트코인을 경매해 국고에 귀속했습니다. 이 외에도 호주, 프랑스, 불가리아, 독일 등에서도 재판부가 비트코인 몰수를 결정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검찰의 손을 들어줬고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을 처음으로 몰수 대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비트코인, '화폐'로서 법적 가치 인정?
가상화폐
이번 판결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비트코인이 현실 세계에서 갖는 ‘경제적 가치’가 법적으로 처음 인정됐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고 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수 있다’고 판시해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인정한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는 ‘화폐로서의 가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설명입니다.
  
즉, 검찰이 범죄 수익임을 입증했고, ‘비트코인 지갑’에 보관된 전자파일 형태로 안 씨의 비트코인을 압수했기 때문에 ‘범죄수익’으로서 몰수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외의 영역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현 수원지방법원 공보판사는 “이 판결에서 인정한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는 범죄 수익으로 인정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라며, “법정 화폐로서의 통용 가능성은 이 판결의 쟁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비트코인이 교환과 거래의 매개인 ‘화폐’로서 그 의미가 인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국가가 비트코인 파는 상황 올까?

이처럼 2심 판결만 놓고 보면 비트코인은 ‘범죄 수익으로서의 몰수 대상’에 한정해 경제적 가치를 갖습니다. 하지만 몰수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가가 제도권 영역에서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통상 몰수된 물품은 국고에 귀속되고, 공매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몰수된 비트코인이 공매 절차를 밟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매를 진행할 것인지, 그 가치 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국가가 결정해야 합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몰수한 비트코인을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팔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법원이 몰수 대상에서 제외한 25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추징 보전’을 청구할 계획인데, 추징 과정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25 비트코인에 해당하는 가치의 현금을 안 씨로부터 추징하려면, 역시 국가가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로 얼마의 가치를 갖는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수원지검은 몰수한 비트코인을 공매할 지 아니면 그냥 폐기할 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 비트코인만은 지키려 했지만…

피고 안 모 씨가 갖고 있던 비트코인은 압수 당시 4~5억 원의 가치였지만, 가상 화폐 상승의 바람을 타고 2심 판결 선고 일에는 그 가치가 25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안 씨는 법무 법인을 선임하고 재판부에 14차례의 반성문도 제출하면서 형량 감형과 함께 비트코인 몰수도 막아보려 했습니다. 세간에서는 ‘1년 6월 살고 나와서 비트코인 팔아 수 십억 원이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돌았습니다.
  
검찰도 이 점을 감안해 비트코인을 안 씨로부터 ‘몰수’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행여 2심 재판부가 비트코인을 ‘몰수’하는 대신, 비트코인의 가치만큼 현금을 ‘추징’하라는 판결을 하면 안 씨가 범죄 수익을 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추징’은 판결 선고 당시의 가치를 환산해 이뤄집니다. 안 씨의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 추징액보다 비싸지면, 안 씨는 판결 이후에도 범죄 수익을 계속 얻게 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야동’ 제공 대가로 안 씨가 받은 비트코인의 행선지는 7일 이내 상고가 없다면 2심 결과대로 국고로 정해집니다.

▶ 법원, 1심 뒤집고 "비트코인 몰수"…판결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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