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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같은 재료 다른 요리…'다키스트 아워', '덩케르크'와 차이는?

[리뷰] 같은 재료 다른 요리…'다키스트 아워', '덩케르크'와 차이는?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면, 영화는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같은 역사를 두고 다른 초점를 선택한 영화 두 편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행해진 작전 중 하나로서, 덩케르크 전투에서 벨기에군과 영국 원정군(BEF) 및 3개 프랑스군 등 총 34만여 명을 구출할 목적으로 실행된 작전)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조 라이트 감독의 '다키스트 아워'다.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 노벨문학상 수상자(1953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능변가였고, 문장가였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언변을 통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그 역량이 정점에 달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처칠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총리직에 올랐다. 당시 유럽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나치군의 맹공에 대부분 함락됐다. 독일군은 체코, 리투아니아, 폴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에 이어 프랑스까지 진격하며 바다 건너 영국을 위협해왔다.

영국은 서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안좋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발이 묶인 영국군만 20만 명에 달했다.

고립무원의 영국을 이끌던 처칠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독일 나치군에 평화를 구걸하며 살아남을 것인가. 자존심을 지키며 투항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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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아워'는 백기 투항과 결사 항전의 갈림길에 섰던 처칠의 고뇌의 시간을 그린 영화다. 시대적 상황은 영화 제목 그대로 어둠의 시간이지만, 처칠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가장 빛나는 시간의 기록이다. 

머릿속을 스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지난해 개봉해 전국 278만 관객을 사로잡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다. 두 영화는 같은 시대를 공유한다. 시간순으로 따지면 다이나모 작전 실행 전의 순간을 그린 '다키스트 아워'가 선행한다.

영화의 포커스와 연출의 방향은 사뭇 다르다. '덩케르크'는 관객을 전시 상황으로 안내한다.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물리적으로 다른 세 시간대와 공간을 한 이야기 흐름 안에 펼치며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적 야심이 빛난 이 영화는 탁월한 촬영과 음향까지 더해져 놀라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 '어톤먼트'(2007)에서 5분간의 롱테이크로 해안에 고립된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바 있다. 주인공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가 징집된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이었고, 그가 살아남은 곳이 덩케르크 해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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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나치의 기세가 극에 달했던 동시대에 영국인 나아가 전 세계에 큰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 작전은 후대의 영국 영화인에게도 큰 영감을 선사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어려서부터 들어온 덩케르크 작전을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오랫동안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라이트 역시 전작에서 신(Scene)으로만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독립된 한 편의 영화로 완성했다.

'다키스트 아워'는 전쟁보다는 정쟁에 주목한 영화다. 영국 의회에서 시작해 의회에서 끝을 맺는다. 전쟁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다이나모 작전이 수행되기 전 왕실, 의회, 작전실 등의 풍경을 심도깊게 보여준다.

전시 내각을 물려받은 처칠은 자신을 불신임하는 여당과 비판을 일삼는 야당 사이에서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껄끄러운 관계의 조지 6세와는 신뢰를 회복해야 했다. 또한 시시각각 영국을 위협해오는 나치의 공세를 저지하면서, 미국에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이 모든 결정에 이르렀던 순간들을 영화는 '암흑의 시간'(Darkest Hour)이라고 명명했다. 

'다키스트 아워'를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영화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등 시대극에서 탁월한 영량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이번 영화가 두 작품에 비해 훨씬 뛰어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술로 시대를 재현하고, 카메라로 의회 내 썰전의 긴박함을 담아내고, 조명으로 인물의 고뇌를 표현하는 등 세심한 디테일을 자랑하지만 메시지 전달 방식이 직접적이고 투박한 편이다. 전반부에 비해 중반 이후의 구성이 단조롭기도 하다. 

영화는 중반 이후 처칠의 고뇌에 집중하면서 연설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철수는 승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덩케르크의 철수는 승리지요"와 같은 명연설과 명대사도 나오지만,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도 다소 과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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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 처칠이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과 더불어 엔딩의 연설 신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아니 어쩌면 영국인이 처칠과 자국에 대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처칠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가장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다.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수상이 확실시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다키스크 아워'에는 게리 올드만이 없다. 자신을 완전히 지운 배우는 스크린에 오롯이 캐릭터로 섰다.

보통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 영화에서는 타입 캐스팅을 한다. 처칠처럼 풍채가 크고 개성이 강한 얼굴일수록 외모 근사치가 높은 배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 라이트 감독은 마른 몸과 날카로운 생김새를 가진 게리 올드만을 캐스팅해 처칠로 변신시켰다. 매 촬영마다 3시간씩 특수분장을 하며 100kg가 넘는 처칠의 외형을 만들었고, 인물의 영혼은 연기력으로 채워 넣었다.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 등은 물론이고 감정 조율, 긴장감 조성까지 완벽에 가깝다. 

'다키스트 아워'가 '덩케르크'에 비교해 명백하게 훌륭한 점은 배우의 탁월한 연기다.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처칠 역의 배우가 게리 올드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인물을 중심에 둔 영화에서 필요한 절대 요소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상영 시간 125분, 12세 관람가.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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