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골룸] 북적북적 122 : 나는 왜 쓰는가…'회색 인간'

▶ 오디오 플레이어를 클릭하면 휴대전화 잠금 상태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플레이어로 듣기


"그녀는 정말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배가 고팠다. 그녀가 얼마나 배가 고팠냐면, 그녀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싶었다. 지저 인간들이 아들의 시체를 회수해 가기 전, 아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뜯어먹고 싶었다. 아들의 귓불 한 입이라도 베어 먹고 싶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그녀는 배가 고팠다…."

화제의 소설을 한 권 들고 왔습니다. 저자 이름이 낯섭니다. 김동식 작가.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올라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서울로 상경, 액세서리 공장에 취직해서 10여 년을 일했다. 2016년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창작글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글을 썼다..."

이 소개를 통해 알 수 있는 저자의 정보는, 이 소설집이 첫 소설이라는 것, 우리가 흔히 '작가라면 이럴 것'이라고 할 만한 이력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30대 초반의 청년, 평생 읽은 책이 10권 남짓에 불과하고 10년 동안 공장에서 일해온 노동자 출신, 인터넷 게시판 '오늘의 유머'를 통해 글쓰기와 소설 쓰기를 배워 소설집까지 내게 된 사람…. 이렇습니다. 이력만으로도 관심이 가는데 소설을 읽어보면 더 그렇습니다.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냈지?' 싶은 독특한 발상의 이야기가 한두 편이 아닙니다. 소설집 3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는데 그중 1권인 <회색 인간>에 24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만큼 짧은 이야기들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창작글이 모태인 만큼 쉽게 읽힙니다. 읽고 나서 잠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 하고요.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든, 소설을 쓰던 사람이든, 이곳에서 예술은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이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또한 그들은 사명감을 가졌다. 꼭 살아남아서, 우리들 중 누군가는 꼭 살아남아서 이곳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멸종 위기 동물: 인간"

"저 초코바 때문입니다…. 소녀가 초코바를 먹고 어떻게 했습니까? 초코바 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버리지 않았습니까?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 안 되지요."

길어야 스물다섯 쪽 남짓인 소설 24편 실려 있습니다. 2권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3권은 <13일의 김남우>입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1권에, 요괴, 외계인, 악마가 등장하는 작품은 2권에, 현실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물은 3권에 모았다고 합니다.

한 편씩 읽어가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건 '이게 끝인가' 할 만큼 허무하게 마무리되기도 합니다. 어중간해 뵈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번이 김동식 작가의 첫 책이니까,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변모할지 기대됩니다. 그가 이 소설집을 내고 세상과 만남으로써 경험한 다른 세계가 그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그렇습니다.

(* 출판사 요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아이튠즈'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PC로 접속하기
- '팟빵' 모바일로 접속하기
- '팟빵' 아이튠즈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