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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선캠프 軍 출신 '코드 인사'…적폐인가, 개혁인가

[취재파일] 대선캠프 軍 출신 '코드 인사'…적폐인가, 개혁인가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선 캠프 출신 영관급 군인들의 이름이 군 주요 기관장 후보로 오르내렸습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우여곡절 끝에 마뜩지 않지만 자리 하나를 꿰찼고, 어떤 이는 꿰찼다가 한 달 만에 쫓겨나는 꼴불견을 연출했습니다. 캠프 출신의 한 공군 예비역 장군은 5.18때 공군의 광주 폭격 대기설을 모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제기하는 뜻밖의 행보를 하더니 역시 기관장 자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대선 캠프 출신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논공행상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들이 밟아온 길과 지금 자리가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지, 군 안팎에서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려를 불식하고 인사권자의 면을 살리는 길은 하나입니다. 새로 맡은 자리에서 개혁 잘하는 것입니다. 개혁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 '난장판' 국방기술품질원장 인선

국산무기의 메카 국방과학연구소의 신임 소장으로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2명의 예비역 대령이 유력하게 거론됐습니다. 예비역 육군 대령 이창희씨와 예비역 공군 대령 강태원씨입니다. 지난 대선 때 예비역들의 문재인 후보 지지 캠프인 국방 안보 포럼의 주축입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소장 응시자격은 예비역의 경우 장성으로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령과 강 대령은 규정 상 국방과학연구소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정부가 꼼수를 썼습니다. 예비역의 응시자격을 ‘영관급 이상’으로 확 낮췄습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고 위인설법(爲人設法)입니다.

먼저 이창희 대령을 보겠습니다. 이 대령은 호사가들의 예상과 달리 국방과학연구소에는 노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국방기술품질원이었습니다. 무기의 개발, 도입, 양산, 전력화 전 과정에서 무기와 핵심부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쟁쟁한 인사들이 국방기술품질원 제 5대 원장에 도전했는데 역시 캠프 출신 이 대령이 선정됐습니다. 상급기관인 방위사업청은 지난 달 28일 "이창희 예비역 대령이 12월 29일 취임한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 전경
순식간에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7시간 쯤 뒤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취업 심사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임용이 보류됐다"고 알렸습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의 기본인 취업 심사를 건너 뛴 채 취임식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것입니다.

이후 한 달간 인사혁신처가 이 대령에 대한 공직자 취업 심사를 했습니다. 어제(26일) '임용 불가' 결론이 났습니다. 이 대령은 작년 1월까지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했고 맡은 직책이 획득정책과장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 획득정책과장이라는 자리와 국방기술품질원장이 직무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전역 1년 만에 취업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적용됐습니다.

자격도 안되는 캠프 출신이 좋은 자리 차지하려다 국방기술품질원 업무 방해하고 청와대와 방위사업청 망신살만 뻗치게 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장 자리는 다시 공모해서 뽑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 강금원 인척,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노리다 부소장 되다

다시 국방과학연구소로 돌아가겠습니다. 결국 국방과학연구소장 최종 후보군에 강태원 대령이 올랐습니다. 순탄하게 강 대령에게 국방과학연구소장 자리가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청와대는 세간의 눈이 거슬렸습니다. 강 대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씨의 가까운 인척입니다. 강금원씨와의 관계가 강 대령에게는 후광이자 부담이 됐습니다. 강 대령은 지난 달 최종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장이 아니라 부소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강 대령은 부소장 임명 전까지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몇년간 일했습니다. 선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본부장 2계단을 훌쩍 뛰어넘고 초고속 내부승진을 한 셈입니다. 소장 뽑는다 해놓고 은근슬쩍 부소장 갈아 치운 기괴한 인사 절차입니다. 강 신임 부소장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취약한 안보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국방 안보 포럼를 조직하고 예비역 회원들을 끌어모으는 데 공헌한 실세이기 때문에 '소장 위의 부소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전경
군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기술 독점 관행과 업체에게 책임 떠넘기기 악습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며 “국방과학연구소 경력이 일천한, 사실상 외부 인사인 강 부소장이 인정에 휩쓸리지 않고 강력한 개혁을 할 수도 있다”고 촌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대선 캠프 활동을 한 것은 정치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개혁을 해낼지, 원래 목표인 소장 자리 얻는 데 전력을 기울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 '5.18 폭격 대기설' 김도호 장군의 군인공제회 이사장 기용

대선 캠프 예비역들 논공행상의 하이라이트는 이창희, 강태원 대령이 아니라 지난 22일 김도호 예비역 공군 소장의 군인공제회 이사장 기용입니다. 김 신임 이사장의 최근 행적은 모군인 공군에 대한 그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군인공제회 이사장 인사가 뜻 밖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군인들 회비를 기탁받아 운영하는 군인공제회는 지난 10년간 누적손실액이 7,091억원에 달하는 전형적인 말썽 기관입니다. 군인들 돈을 잘 굴려서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는 기관이라는 데 투자만 하면 사고가 나서 금융계에서는 유명한 '마이너스의 손'으로 통합니다. 큰돈을 주무르는 곳이다 보니 비리 사건도 곧잘 터집니다.

이런 기관을 맡은 김 신임 이사장의 기이한 행적이란 이렇습니다. 그는 공군 전투기들의 5.18 광주 폭격대기설을 제기한 주역 중 한명입니다. 모 방송의 메인 뉴스 앵커와 전화 인터뷰를 해서 광주 폭격 대기설에 결정적인 힘을 실었습니다.
군인공제회 신임 이사장 취임식
그런데 그는 광주 폭격 대기설의 다른 인터뷰이와 마찬가지로 광주를 폭격할 것이라는 구두 또는 문서로 된 지시를 받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김 신임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습기에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대기하라니까 '정황상', '느낌상' 광주로 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30년 이상 몸담은 공군을 백성을 폭살할 수 있는 살인집단으로 추락시키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 근거가 경솔하게도 37년 전의 개인적 느낌과 정황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증거는 한톨도 없었습니다.

민간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국방부 5.18 진상조사 특위도 김도호 예비역 소장과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18 때 공군이 광주를 폭격하기 위해 대기했다는 증거, 근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지만 그런 소문들이 무성했고, 어쨌든 정황상으로 그런 것 같다"입니다.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었는데 공군 전투기들이 공대지 무장을 하고 대기했으니 전투기들이 뜨면 갈 데가 광주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진상조사 특위도 확보하고 있는 80년 5월의 공군 문서를 보면 코랄씨(Coral sea), 미드웨이(Midway) 등 미 해군 핵항모 2척과 미 공군 에이왁스(AWACS) 정찰기가 5.18 직후 급히 한반도로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핵 항모 2척이 한꺼번에 한반도로 오는 일은 잦지 않습니다. 핵항모 2척과 에이왁스는 광주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을 겨냥한 전력이었습니다. 북한이 5.18 때 군사를 움직였거나 적어도 움직일 가능성이 커서 한미가 공동 대응할 준비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김 신임 이사장은 정황과 느낌만으로 자신의 모군이 백성을 몰살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걸 보면 양심상 군 생활이 참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별 2개 달았으니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군인들의 돈을 관리하게 됐습니다. 군인공제회의 빈 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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