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60조 2항이다. 국회의 권한을 밝힌 조항이다. 읽는 게 불편하다. 옛날 문어체에다 생소한 한자어에 막히기 때문이다. ‘주류(駐留)’라는 낱말에서 길을 잃는다. 뜻을 분명히 새길 수가 없다.
한글학자 리의도 춘천교대 명예교수는 “주류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쓴데다 ‘~에의’ 하는 식의 일본식 어투가 어색하다.”고 지적한다. 리 교수가 이 부분을 알기 쉽게 고쳐봤다. ‘~ 외국군대를 대한민국 영토에 머무르게 하는 일에 대하여 동의할 권한이 있다.’ 훨씬 알기 쉽고 깔끔하다.
조문이 너무 길어 읽기조차 힘들다. 이해하기도 어렵다. 중간에 나오는 기망(欺罔)이라는 낱말 역시 낯설다. ‘기망’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속임수’로 고쳐 쓰고, 문장을 간결하게 줄이면 뜻이 좀 통할 것 같다.
맞춤법이 아예 틀린 곳도 있다. 헌법 72조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문장 끄트머리의 ‘붙일 수 있다.’는 ‘부칠 수 있다.’로 고쳐 써야 옳다. 더불어 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국립국어원에 의뢰해 헌법을 검토한 결과 드러난 오류다.
국립국어원은 헌법의 136개 조항 가운데 111개 조항에서 문법, 표현, 표기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오류는 어려운 한자어나 뜻이 모호한 표현을 쓴 경우로 무려 133건이나 됐다. 맞춤법에 어긋나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도 56건이나 됐다. 과도하게 피동형을 쓰거나 문장 어순이 잘못돼 문법에 어긋난 것은 45건이다.
나라의 최상위 규범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국법제연구원 차현숙 법제전략분석실장은 “헌법 개정이 제헌헌법을 기반으로 부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어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헌법은 과연 누구의 언어로 썼는가’ 하는 점이다. 리의도 교수는 “헌법의 주인은 국민인데 전문인과 정치인의 언어로 썼다.”고 꼬집었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1987년을 제외하면 그 동안의 헌법 개정이 민주적인 논의 없이 국가 권력의 필요해 의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어학자들은 끊임없이 헌법개정 작업에 참여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모두 아홉 차례의 헌법 개정 과정에서 1962년 5차 개헌 때를 제외하곤 국어학자, 또는 언어학자들이 참여한 기록이 없다. 심지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직후 이뤄진 9차 개헌 때조차 국어학자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헌법을 제정한지 70년이 다 되도록 헌법 속 일제 잔재도 제대로 지우지 못했다. ‘기망’, ‘부속도서(附屬島嶼)’ 같은 낱말이나, ‘~에의’ 같은 일본식 표현이 버젓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해 놓고도 말이다.
헌법은 자구 하나 고치려 해도 까다로운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헌법 개정할 때 아니면 할 수 없다. 마침 정치권에서 개헌을 논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촉구하고 있다.
전종익 교수(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는 “알기 쉬운 헌법을 만들자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논의가 진전돼 개정안이 나오면 조문화 작업을 할 때 국어학자에게 자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헌법에 담을 말의 온도를 국민에게 맞추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