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죠. 2015년 9월 중국 베이항 대학교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놀라운 논문을 발표합니다. 한 곤충의 애벌레가 플라스틱폼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갈색거저리라는 곤충인데, 성충은 약 1.5cm 정도 크기이고, 가축들의 사료로도 많이 쓰인다고도 합니다.
그런 갈색거저리 애벌레의 뱃속에 강력한 박테리아가 있어서 플라스틱폼을 먹어도 소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과학자들이 갈색거저리 애벌레가 플라스틱폼을 먹은 뒤 관찰해보니, 이산화탄소와 유기폐기물을 배출했다는 겁니다. 플라스틱을 먹고 퇴비를 만들어내는 애벌레라는거죠.
이런 논문 속 연구 결과를 재빨리 실용화 연구에 착수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성의 싼야과학기술연구원이 갈색거저리 연구실을 만들어 애벌레를 길렀습니다. 연중 햇볕이 뜨거운 하이난은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흙에 폐비닐을 덮어놓습니다.
그러다보니 엄청나게 쌓이는 폐비닐을 처리하기도 어렵고, 토질도 나빠지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싼야과학기술연구원이 하이난섬의 폐비닐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대책으로 지난해 5월부터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갈색거저리 애벌레 연구에 나선 겁니다.
그랬더니 하얀색 플라스틱폼에 애벌레들이 파먹어 들어간 많은 구멍이 생겼고, 비닐봉지도 솜털처럼 변했습니다. 애벌레들이 플라스틱폼은 물론 비닐봉지도 먹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플라스틱폼을 먹은 애벌레도, 비닐봉지를 먹은 애벌레도 모두 이산화탄소와 과립 형태의 배설물을 배출했습니다.
두번째 관심사는 갈색거저리 애벌레들이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폼이나 비닐을 먹어치울 수 있느냐로 옮겨졌습니다. 연구팀은 갈색거저리 애벌레가 플라스틱폼이나 비닐을 소화하는데 24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500마리의 애벌레가 30일 동안 1.8그램을 먹는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기대보다는 먹는 양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폼과 비닐을 먹어 치우는 속도가 이렇게 느려서는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가 어렵겠죠? 때문에 연구팀은 애벌레를 많이 낳을 수 있는 교배종 거저리를 배양했습니다. 이 교배종은 더 많은 알을 낳고, 더 큰 애벌레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얘기겠죠.
갈색거저리가 햇볕에선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폐비닐이 깔린 밭에 갈색거저리 애벌레를 뿌려 놓으면 비닐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그 자리에 퇴비가 남아 토질을 향상시킬거란 예상이 빗나간 겁니다. 햇볕에 노출된 갈색거저리는 폐비닐을 먹기 전에 말라 죽고 말았던 겁니다.
갈색거저리 애벌레를 밭에다 뿌려 놓고 폐비닐을 먹게 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싼야과학기술연구원은 연구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갈색거저리 몸 안에 있는 효소를 추출하는 쪽으로 선회를 한 겁니다. 플라스틱폼과 비닐을 분해할 수 있는 강력한 효소를 추출하고, 이걸 애벌레가 배설한 유기비료와 섞어서 밭에 뿌리겠다는 겁니다.
이런 방식이 갈색거저리 애벌레가 직접 비닐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지금 집중 연구 중 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과연 곤충 애벌레가 지구 환경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지만, 그 선봉에 서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도 우리로선 곱씹어 볼만한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