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폭행·거짓말 그리고 행정 무능…답 없는 빙상연맹

올림픽 앞두고 일주일 새 두 차례 논란…비난 자초

[취재파일] 폭행·거짓말 그리고 행정 무능…답 없는 빙상연맹
지구촌 겨울 축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눈앞에 두고 우리나라의 메달밭인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을 관리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잇달아 충격적인 사건으로 팬들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대표팀 지도자는 선수를 폭행하고, 연맹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이번에는 행정 착오로 한 선수의 올림픽 출전 꿈까지 앗아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 아직도 이런 일이?

지난 16일 진천선수촌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A코치가 ‘에이스’인 심석희 선수를 폭행해, 선수가 선수촌을 이탈한 사건입니다. 심석희를 쇼트트랙에 입문시키고 14년간 지도해온 지도자의 폭행이라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심석희 선수는 이틀 만인 18일 대표팀에 복귀했고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그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훈련에 임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컸지만, 4년을 준비한 올림픽 출전을 위해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맹은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선수가 선수촌을 이탈하고,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18일 오전이 되어서야 회의를 열고 코치의 직무 정지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징계를 내리면서도 징계의 근거가 될 폭행 여부와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는 말만 반복했고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이 지난 뒤에도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났습니다.

-기사 참조
'심석희 폭행' 의혹 쇼트트랙 코치, 올림픽 앞두고 직무정지
진천선수촌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심석희 선수가 선수촌을 이탈한 다음 날, 즉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한 날, 충격적인 일이 또 있었죠. 심석희 선수가 폭행으로 선수촌을 이탈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독감’이 걸려 병원에 갔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겁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과거에도 파벌 싸움과 선수간 폭행, 또 음주 파문,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추문에 휩싸인 적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연맹은 숨기기에 급급했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습니다.

이번에도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심석희 선수 폭행 사건이 보도된 이후 닷새가 지난 지금까지도 연맹의 김상항 회장은 물론 부회장과 전무 등  임원 누구도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재발방지 대책 등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을 숨기듯 뒤로 숨기 바쁜 듯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빙상계 한 관계자는 빙상연맹의 태도에 이런 전망(?)을 내 놓았습니다.

"예전처럼 이번에도 사건이 잊혀 질 때까지 ‘침묵’을 지키다, 조용해지면 가벼운 징계를 내리고 넘어가려고 하겠죠."

수 많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 지도자와 부모님들 역시 SBS와 전화 통화에서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짧은 신음을 토해내더군요.

"어떻게 아직까지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요?"

-기사 참조
금메달만 딴다면…쇼트트랙, 성적 압박에 폭력 일상화
빙속 추월 노선영 선수
● 선수의 꿈 앗아간 '행정 무능'

연맹의 행정 난맥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2016년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쇼트트랙 노진규 선수의 누나인 노선영 선수는 “평창올림픽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올림픽 출전 규정도 모른 연맹의 행정 무능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어떻게 아직까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까요?

먼저 국제빙상경기연맹 , ISU의 올림픽 출전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 ISU 스피드 특별규정 209조 제2(Qualification System) 제e항
For the Team Pursuit events the ISU Members/NOCs may select their team (consisting of 3 or 4 Skaters) at their discretion among Skaters who have been entered for the Olympic Winter Games, but it is expected that all members of the team have been entered for the Olympic Winter Games with the intention also to
fill an allocated quota place for at least one individual event/distance

정리하면 “팀추월에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 개인 종목 출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ISU 홈페이지에서 취재진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규정을 근거로 ISU는 지난 20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노선영 선수가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팀추월 대표인 김보름, 박지우는 개인 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권을 확보해 문제가 없지만 노선영은 개인종목 쿼터가 없어 팀추월 멤버로 나설 수 없다는 겁니다. 규정대로 노선영 선수는 평창올림픽 출전 자격이 없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이 규정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지난해 10월 “기준 기록만 통과하면 된다”는 ISU 담당자의 답변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한 연맹에 있습니다. 연맹이 알려준 올림픽 출전 ‘가이드’대로 노선영은 개인 종목에서 출전 랭킹을 끌어올리는 대신 팀추월 훈련에만 주력했습니다.

현실은 달랐고, 답변은 틀렸습니다. ISU는 연맹의 항의에 “연맹이 내용을 잘 못 이해한 것”이라면서 209조 규정을 근거로 노선영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보내왔고,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 꿈은 이렇게 물거품이 됐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올림픽만을 위해 달려온 노선영의 충격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연맹의 행정 착오가 원인이 된 올림픽 출전 좌절이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빙속 추월 노선영 선수
올림픽을 바라보며 굵은 땀을 흘려온 선수들을 돕고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연맹의 역할이고, ‘선수’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폭행 사건은 감추기에 급급하고, 선수의 올림픽 출전마저 ‘막아선’ 연맹의 행정 난맥을 보며 안방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내겠다는 결의 대신 선수들의 한숨 소리가 더욱 커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빙상경기연맹의 10여 년 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2018년의 현주소입니다. 그것도 안방에서 열리는 지구촌 축제를 눈앞에 두고 말이죠. 종합 4위를 노리는 ‘동계 스포츠 강국’의 위상에 맞는 ‘환골탈태’, 정말 기대하기 힘든 걸까요?

-관련 기사
규정도 몰랐던 빙상 연맹…노선영, 올림픽 출전 좌절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