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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재인 정부 '야당사용설명서'

[취재파일] 문재인 정부 '야당사용설명서'
청와대가 14일 국가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의 기능과 조직을 대폭 재편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한편,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기능도 경찰에 넘기도록 했습니다. 1차적 수사권과 함께 대공수사기능까지 넘겨받아 거대해진 경찰은 기능에 따라 조직을 쪼개는 방식으로 힘을 뺐습니다. 한마디로 권력기관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 권력 오남용을 막겠다는 구상입니다.

● "야당 소통 못했다"

이번 개편안은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이미 기관별로 준비해온 안들이거나 대선 공약에 포함됐던 사항들입니다. 다만 국회 사법개혁특위 출범에 맞춰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안을 청와대가 종합적으로 설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국회 논의를 앞두고 행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발표하는 것으로, 여야가 이를 받아 논의해 최종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개편안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인 셈입니다. 정부의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물론 핵심은 야당 설득입니다. 개편안 발표에 앞서 야당에 대한 의견 수렴은 없었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야당과는 소통하지 못했다. 사법개혁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면 여야 막론하고 만나 뵙고 말씀 올릴 생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야당 의견이 정부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야당에 대한 사전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다면 국회 처리 과정이 한결 수월해지겠지만 없다고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어차피 국회가 정부안을 놓고 논의를 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14일 개편안 발표 후 질의 응답과정에서 나온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청와대가 정말 야당과 소통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그 자체를 되묻게 했습니다.

● "야당 반대 알지만 국민 마음은 달라"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개편안은 국회 논의사항인데 여야관계라는 게 대화와 타협으로 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초청해 이야기해볼 의향이 있는가' 답변에 나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단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권한 밖의 문제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여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70%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공수처 지지율이 항상 80%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야당에서 공수처 등을 반대하는 건 알고 있지만 국민 마음이 다르다는 건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다."
여야 5당
청와대 차원의 야당 설득 방안을 묻는 질문에 '어떻게 설득하겠다'가 아니라 '야당 반대 알지만 그건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는 답이 나온 겁니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공수처의 경우 설치를 원하는 국민 여론이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런 여론이 원하는 제도를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야당 설득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청와대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국민이 원하는 것이니 야당이 응해야 하는 것이 먼저인지는 따져볼 일이나 적어도 국정운영을 맡고 있는 청와대가 내놓을 책임 있는 답변이 후자 쪽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 '국민 여론·지방 선거' 함께 거론한 이유?

물론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야당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가 좌나 우,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국민 여망이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됐을 때 여야가 개방된 마음으로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의 여망이 여론조사로 확인됐으니 야당도 반대만 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달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이어 "사법개혁특위 활동이 지방선거 전까지 있다. 지방선거 전까지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절충 타협해 나가면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론적 발언으로 이해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오해의 여지를 남긴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야당은 속성상 늘 정부·여당을 경계의 눈초리로 보게 마련입니다. 오해 살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굳이 정치력이라는 거창한 말 쓰지 않겠습니다. 무슨 소리이냐고요?

야당 설득 방법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민 지지'와 '지방선거'를 묶어 언급했습니다. 비록 여야 간 절충과 타협을 이야기했지만 야당이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의도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공수처 등 개편안은 국민 여망이다. 지방선거 전까지 논의시한이 있으니 야당은 알아서 잘 판단해라. 반대하면 지방선거 때 국민이 표로써 심판할 것이다> 오해가 아니라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앞의 메시지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대화를 통한 해결 v.s. 최대한의 압박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출범 불과 9일 만에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협치에 의지를 보였습니다. 야당 측에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8달이 다 돼 가도록 협의체 구성은 감감무소식입니다.

협치 실종의 책임은 정치권 모두에게 있습니다. 제1 야당 대표는 청와대가 초청할 때마다 양자 회동을 요구하며 거부했습니다. 청와대 역시 야당에 별 기대를 두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야당이야 우리가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 아니냐'라는 식입니다. 이렇다 보니 설득보다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야당을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대통령-5당 원내대표 오찬 회동 그래픽
현재 국회 의석 분포상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통과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숙원 과제로 꼽고 있는 국가권력기관 개편안 통과도 예외가 아닙니다. 식물 국회에 대한 비판은 여야 모두가 져야 하겠지만 국정 운영의 책임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외교 분야 성과에 상당한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정부 출범 때 물려받은 외교 공백을 메우고 무너진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등 시급한 과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자평했습니다. 북핵 문제에서도 최대한의 압박과 대화 시도를 통해 남북 고위급 회담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냈습니다. 정치와 외교는 협상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맥이 닿아 있습니다. 미국, 중국, 북한과의 외교전만큼 야당과의 정치적 협상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가 야당을 향한 최대한의 압박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대화 국면으로 끌고 가기 위한 협치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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