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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승사자는 정말 3인조일까?

키 위에 정성껏 차린 밥과 나물 3그릇. 경기도 남부에서 사람이 죽은 직후 저승 사자(혹은 저승 차사)를 대접하기 위해 대문 밖에 차려놨던 '사자상'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키 대신 작은 상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엽전 3개와 짚신을 같이 놓기도 했습니다. 멀고 험한 저승길을 망자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며 저승사자에게 쓴 인정이었습니다.
‘사자상’ 모습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웹툰 '신과 함께'에 나오는 저승사자들은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때로는 비정하지만 인간미와 유머까지 갖춘 모습으로 나오죠. 그렇다면 우리 전통 무가에서는 저승사자가 어떻게 묘사돼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승은 어둡고 차갑게, 저승사자도 쇠줄이나 쇠몽둥이를 들고 인정사정없이 망자를 끌고 가는 무서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통해 우리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 것처럼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모습'일까요?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굿에서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군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안동대 민속학과 이용범 교수가 촬영한 황해도 <진오기굿> 현장 사진을 봐도 무녀가 전립을 쓴 군졸 복장으로 사자상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황해도 진오기굿 중 ‘사자밥을 먹는 저승사자’ (사진=안동대 이용범 교수 제공)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전설의 고향' 저승사자가 완전 엉터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상여에 꽂았던 저승사자 장식(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을 보면 '하얀 얼굴에 검은 갓과 검은 옷을 입고 괴수나 호랑이를 올라탄 형상'으로 나옵니다. 많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승사자 상여 장식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그렇다고 저승사자가 무섭게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황해도 <진오기굿>이나 서울굿 <사재삼성>에서는 망자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를 어르고 달래는 '사자놀이' 절차가 있는데, 때로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이용범 교수는 "굿 속에 나오는 저승사자를 시각적으로 완전하게 그려내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무섭고 엄격한 존재로 표현된다"면서 "그러나 때로는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의 심정을 대신 전해주는 매개자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승사자는 몇 명이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신과 함께'에서 그린 것처럼 3명뿐일까요? 앞서 본 사진처럼 사자상이나 굿 상에 올려진 밥그릇과 짚신은 3개씩입니다. 호남 지역의 씻김굿인 <장자풀이>에서는 "길목에 저승사자를 먹일 사자상을 차리고 기다렸다. 저승사자 셋이 나타나 차려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대체로 우리 무속에서는 저승사자를 3명으로 봤음을 암시합니다.

그럼 '신과 함께'에 나오는 것처럼 강림도령, 월직차사('차사'는 죄인을 끌고 가는 관리), 일직차사 등 3인조로 구성될까요? 강림도령이 저승사자가 된 연유는 제주 <시왕맞이굿>의 '차사본풀이' 대목에서 자세히 묘사됩니다. 강림도령 설화는 저승까지 쳐들어가 염라대왕을 체포했을 정도로 용감한 나졸 출신으로 나중에 염라대왕에 의해 저승사자로 스카우트된다는 스토리입니다.

'신과 함께'에서는 월직이나 일직차사가 오랑캐를 수비하던 변방 수비대장과 오랑캐 소녀 출신으로 그려지지만 전통 무가에서 그런 대목은 찾기는 어렵습니다. 저승사자는 모두 남성으로 그려집니다. 주호민 작가의 뛰어난 창작력이 가미된 이야기인 듯합니다.  

저승사자의 구성 멤버도 딱히 고정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저승 3사자가 시직, 일직, 월직차사로 구성되고, 때로는 시직차사 대신에 황천차사가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찰의 명부전에는 저승사자를 직부사자, 감재사자 등 2명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고, 충남 서산 개심사에 전하는 <사직사자도>에는 저승사자가 연, 월, 일, 시직차사 등 4명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승 사직사자도 (사진=개심사 소장)
저승사자가 3명이든 4명이든, 나졸 차림이든 선비 차림이든 인간이 지어낸 이미지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상상력의 산물은 동시대인들의 폭넓은 공감을 받을 때만이 사라지지 않고 연속성과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설화나 무가에서 묘사된 저승사자와 저승의 모습에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의식세계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간신앙의 경우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의 이승-저승 간의 교류라는 독특한 믿음이 고대로부터 전해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불교-도교가 융합된 시왕사상 (사람이 죽으면 49재까지 일곱 왕, 이어 3년간 세 왕까지 모두 열명의 왕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믿음), 옥황상제, 5방 신장 이야기 등이 들어오면서 저승의 모습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형성됐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웹툰 '신과 함께' 주호민 작가
검은 양복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저승사자들, 자동차와 전철, 컴퓨터까지 도입된 저승 세계, 군 복무시절 억울한 죽음을 당해 저승 가길 거부하는 원귀, 무자비한 철거 속에 사라지는 성주신, 조왕신 같은 전래의 가정신들 등등..  우리의 삶 속에 있었으면서도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져 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공유되던 고유의 신들, 전래 설화, 신화가 한 작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해석돼 기적처럼 살아나고 있습니다.

웹툰 '신과 함께'는 온라인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극장가에도 관객 1,200만 명 돌파라는 놀라운 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월에는 뮤지컬로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당분간 우리 문화계의 새로운 코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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