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선권, 비핵화 언급에 경청"
화기애애했던 오전 전체회의가 끝난 뒤 우리 대표단은 판문점 현지에서 취재 중인 기자단에게 오전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우리 대표단이 비핵화를 언급했느냐는 것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우리 회담 대표는 오전 회의에서 비핵화를 언급했다며 "북측이 그(비핵화) 문제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 리선권, 평양에서 질책받은 듯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이 비핵화 언급을 경청'했다는 남한 언론의 보도가 나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남한 언론은 평양의 대남담당기관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선권이 평양의 질책에 어떻게 대응했을지는 종결회의에서 나온 리선권의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리선권은 종결회의에서 "남측 언론에서 …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이 확산 되고 있다"며 "(회담에 대해) 오도되는 소리가 나오면 좋은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자신은 비핵화에 대해 '경청'한 적이 없는데 남한 언론이 사실을 오도했다는 의미로, 아마도 리선권은 평양에 '남한 언론이 없는 사실을 꾸며댔다'고 둘러댄 것으로 보인다.
● 평양에서 통일전선부도 듣고 있었는데…
그런데, 사실 리선권 위원장을 질책했을 것으로 보이는 북한 통일전선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판문점에서 열린 이번 회의를 북한도 평양에서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통신선로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려 평양에서 회담장의 화면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회담 대표들의 목소리는 평양으로 그대로 전송되고 있었다.
따라서, 오전 전체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이 비핵화에 대해 언급할 때 리선권이 즉각 반발하지 않았다면, 평양의 통일전선부라도 급히 판문점 회담장의 북측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가만있지 말라"는 쪽지를 리선권에게 전달했어야 했다. 하지만, 통전부도 우리 대표단이 비핵화 언급을 할 때 별생각 없이 그냥 그대로 듣고 있었다.
● 리선권의 반발은 평양 향한 목소리
오후 들어 '비핵화 언급에 북한이 경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급해진 것은 리선권 뿐 아니라 평양의 통일전선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을 가만히 있었다고 남한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셈인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보도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비핵화'는 금기어… 민감한 평양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리선권이 한나절 만에 돌변한 9일의 상황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핵화'라는 금기어는 북한의 어느 누구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살아남기 힘든 폭탄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어 한반도 평화정착의 방도를 찾아보려는 우리 정부의 과제가 그래서 녹록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