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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좌·우 진영 이전투구, UAE 사태…출구는 어디

[취재파일] 좌·우 진영 이전투구, UAE 사태…출구는 어디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군사적 지원, 즉 자동개입 조항이 삽입된 양해각서와 약정을 아랍에미리트와 맺은 사실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그제(8일) SBS는 현 정부의 군 핵심 관계자의 진술을 통해( ▶ [단독] UAE 극비 양해각서에 '유사시 군사적 지원' 포함), 어제(9일) 중앙일보는 김태영 전 국방장관의 인터뷰로 임종석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을 둘러싼 모든 의혹의 퍼즐들을 맞췄습니다.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전을 수주하고 그 대가로 이명박 정부는 이듬해 4월부터 10월까지 4건의 군사 분야 양해각서와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양해각서와 약정에는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 들어있었습니다. 헌법에 따라 국회의 사전 동의 사안인데 이명박 정부는 국회 몰래 아랍에미리트와 양해각서ㆍ약정을 맺었습니다.

꼼수였습니다. 조약의 형식이면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니 양해각서와 약정이라는 그들만의 묘수를 찾아내 국회 동의 절차를 건너뛰었습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이 같은 저의를 간파하고 "국가 간 의무와 권리가 발생하면 조약이고, 따라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며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을 질타했었습니다.
[취재파일] 좌우진영 이전투구, UAE 사태…출구는 어디
현 정부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가 맺은 양해각서와 약정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헌입니다. 그래서 지난 11월 송영무 국방장관을 아랍에미리트로 보내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의 변경을 요청했지만 아랍에미리트의 반발만 샀습니다. 임종석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은 기분 상한 아랍에미리트를 달래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실체적 진실은 위와 같습니다. 하지만 보수 뿐 아니라 진보 쪽도 자기 입맛에 맞게 이번 사태를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팩트는 좀 멀리 있었지만 손에 닿을 만했는데도 힘들여 찾지 않고 풍문에 기대어 상대 진영을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 노무현 공격 수단으로 둔갑한 UAE 독소조항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과 일부 보수 매체들은 아크부대의 아랍에미리트 파병의 근거를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맺어진 한-UAE 군사협력협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럴듯합니다. 이명박 정부도 아크부대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2006년 협정을 들이밀었으니까요.

하지만 2006년 군사협력협정에는 파병 관련 조항이 없습니다. 2010년 11월 11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2006년 협정은 아크부대 파병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이 여실히 확인됐습니다. 국방위 회의록에 따르면 유승민 의원과 김태영 장관은 2006년 협정과 아크부대 파병을 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입니다. 유승민 의원이 마지막으로 "그게(2006년 협정이) 근거가 안 되는데 찾아보니까 그런 것밖에 없으니까 오늘 보고서에 파병 근거라고 갖고 오신 거예요, 제가 보기에"라고 묻습니다. 김태영 장관의 대답은 "그렇습니다"였습니다.

2006년 협정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고등훈련기 T-50을 아랍에미리트에 팔기 위해 맺은 것입니다. T-50 수출에 실패해 협정은 국방부 캐비닛에 처박혀 있었는데 다급하게 아크부대를 파병하려다 보니 법적 근거가 없어서 구색 맞추려고 꺼낸 카드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국회에서 딱 걸렸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척 한 건지, 진짜 몰랐던 건지 "아크부대 파병은 노무현 정부 때 잉태됐다", "아랍에미리트 사태의 근원은 노무현 정부이다"라며 허무맹랑한 헛발질을 해댔습니다.

이에 앞서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들은 임종석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의 이유를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찾았습니다. 아랍에미리트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뿔이 났기 때문에 임종석 실장이 수습하려고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다는 주장입니다. 역시 소설로 판명됐습니다.

● 박근혜 공격 수단으로 둔갑한 UAE 독소조항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에도 아랍에미리트와 협정 1건이 체결됐습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군수물자를 지원하기 위한 협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닙니다. 당시 협정 문안을 직접 작성한 예비역 장성과 군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가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아크부대 철수를 위한 군수 지원이 상호군수지원협정의 핵심입니다. 즉 한반도 유사시 아랍에미리트가 항공기를 제공해 아크부대의 특전사 요원들을 재빨리 우리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한 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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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정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진영의 매체들이 악용했습니다. 협정의 내용 확인이 수월한 편이었는데도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군수물자를 보내기 위한 협정"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습니다. 한 발 더 들어가 "이 협정은 '준(準)동맹'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억측을 내놨습니다. 우리나라 바쁠 때 아랍에미리트가 비행기 빌려준들 준동맹국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그 매체는 모든 상황이 정리된 어제(9일),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임종석 비서실장이 특사로 가야 했을까", "이 문제를 놓고 각종 추측과 오보가 난무했다", "저희는 이 문제에 대해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남 탓할 일 아닙니다. 그쪽 역시 경솔하게 추측과 오보를 양산해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 속도 내는 출구전략

군 핵심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아랍에미리트 논란의 최고 해법은 덮는 것"이라고 밝혀 왔습니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국회가 파병을 동의할 리 없기 때문에 군사적 지원은 할 수 없고 그래서 해당 조항은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이제는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에 대해 "군사적 의미가 없다"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며 선을 긋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 "덮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칼둔 행정청장 방한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사태의 봉합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결국 돌고 돌아 제 자리에 올 일을 애초에 왜 불거지게 했냐는 것입니다. 잠깐만 따져 봐도 아랍에미리트가 조항의 삭제, 변경에 동의할 리 만무했는데 괜히 벌집만 쑤셔 놓은 꼴이 됐습니다. 이제 와서 민망하기는 보수, 진보 매체와 여야, 청와대가 매한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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