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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1987' 장준환 감독 "이한열 열사 어머니, 영화 못 보겠다고…"

[스브수다] '1987' 장준환 감독 "이한열 열사 어머니, 영화 못 보겠다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께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영화로나마 확인하기가 쉽지 않으신 거죠."

개봉 2주 차에 만난 장준환 감독은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화 '1987'은 지난해 12월 27일 감독 손을 떠나 400만이 넘는 관객과 만났다. 박종철 열사 유가족은 영화를 관람했고, 이한열 열사 유가족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감독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오전 10시대에 상영한 '1987'을 관람했다. 이 자리에는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도 참석했다.

"오늘은 봐야지. 우리 애기(강동원)가 고생하면서 찍었다는데...."
"아니야. 안될거 같아. 나 오늘도 못 보겠어."

배은심 씨는 이날도 영화를 관람하지 못했다. 시사회부터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한 숙제다. 아들을 하늘로 보낸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마음속에 한이(이한열)는 22살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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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은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광장의 군중으로 끝나는 영화다. 1987년의 겨울과 같은 일을 2017년에 경험한 우리에게 이 영화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국민이 나라가 된 역사의 시작이 1987년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를 만들다 보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감이 잘 안 올 때가 있다. '1987'이 그랬다. 너무 많은 일을 짧은 시간에 해야 했고, 무엇보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유가족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들며 어떤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는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상업 예술을 하는 감독에게 사명, 당위 같은 책임감이 앞선다면 자유로운 표현이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장준환 감독은 부담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연출 세계를 펼쳐나갔고,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한 영화를 내놓았다. 

"2015년 12월경, 어떤 영화의 연출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나리오가 궁금해 김경찬 작가가 쓴 걸 받아서 읽었다. 이야기의 힘이 좋았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더하고 끝내 온 국민이 거리에 나오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 작은 노력이 커다란 성취로 이어지는 구조가 흥미롭고 재밌었다."

전통적인 시나리오 작법에서 '1987'은 정석이 아니다. 상업영화라면 한두 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중심축이 되는 사건으로 이야기의 힘이 집중되어야 한다.

'1987'은 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말은 주인공이 너무 많기도 하고, 반대로 아예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대사 있는 배우만 125명에 달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크든 작든 제 몫을 해내고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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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한두 명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위험할 수 있는 시도였지만, 그 점이 오히려 흥미롭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점이 좋았다. 프랑스에 '프랑스 대혁명'이 있다면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1987년 '6월 항쟁'이 있다. 우리도 이 민주 항쟁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런 용기와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1987'은 박종철이 열고, 이한열이 닫는 영화다. 미완의 혁명이라는 이유로 1987년 6월 항쟁은 그간 평가 절하되어온 면이 있다. 광장에 모여든 국민의 힘으로 직선제를 끌어냈지만, 힘들게 얻은 투표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는 것도 이 역사를 직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 관한 관객 평 중에 '세대 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에 큰 보람을 느꼈다. 요즘은 세대간 단절이 심하지 않나. 딸과 아들이 엄마와 아빠의 시대를 이해하고, 변화를 이끈 작은 노력을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

영화 제작은 2016년 초부터 시작됐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 정권의 힘이 맹위를 떨칠 때였다. 투자받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란 건 예견된 일. 장준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캐스팅에 힘을 쏟았다. 인기와 연기력을 갖춘 톱배우 캐스팅이 이뤄진다면 투자와 배급을 하겠다는 데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강동원 배우가 출연하겠다고 했다. 몇 해 전 단편 영화 '러브 포 세일'을 함께 작업한 인연이 있었다. 내가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니 블랙리스트 위험을 감수하고 선택 해줬다. 시나리오의 초고를 가장 먼저 본 김윤석 선배도 출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정우 배우도 출연 의사를 전해왔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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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배급도 기적적으로 이뤄졌다. 캐스팅을 진행하던 중 '태블릿 PC 사건'이 터지고 정국이 요동쳤다. 그리고 CJ엔터테인먼트가 '1987'에 손을 내밀었다. 

시나리오에 명시된 제목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이미 동명의 영화가 있는 데다 전직 대통령이 써서 유명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던 장준환 감독은 "시대가 주인공일 수 있겠단 생각"으로 지금의 제목을 붙였다. 

중, 후반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운동화 한 짝이 주는 울림은 엔딩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장준환 감독이 의도한 방점이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연출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이야기, 형식 다 마음에 들고 꼭 해야 할 이야기 같은데 이 정권하에서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을 품고 신촌에 있는 이한열 기념관을 갔다. 그곳에 전시된 고인의 유품을 훑어봤다. 운동화 한 짝이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며 '나머지 한 짝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궁금증이 들더라. 그리고 그 운동화에 담긴 은유와 상징이 머릿 속으로 그려지더라. 강조하고 싶었다."

'1987'의 주요 에피소드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라는 특성상 픽션이 가미되기도 했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성격 및 이미지 등은 변화가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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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 때 실존 인물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게 기본 절차다. 하지만 우리는 기획부터 제작, 캐스팅까지 모든 것을 비밀리에 해야 했다. 소문이 날 경우 암초를 만날 수 있으니...관련 인물을 일일이 만나볼 수 없어서 기사, 책, 문서 자료들을 구해 고증을 해나갔다."

'1987'의 구성적 특징은 안타고니스트 박 처장(김윤석) 중심으로 인물이 얼기설기 엮인다는 점이다. 전작 '화이:괴물이 된 아이'에서 호흡을 맞춘 김윤석은 감독이 원하는 절대악을 입체적이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연기해냈다. 

"김윤석 씨는 평안도 사투리뿐만 아니라 실존 인물의 외형에 근접하게 다가가기 위해 몸에 패드를 넣고, 입에는 마우스피스를 물었다. 실리콘 재질의 마우 피스는 턱밑과 잇몸 사이에 넣으면 얼굴이 굉장히 다른 느낌이 난다. 대신 발음도 어렵고 대사를 칠 때마다 침이 잔뜩 고이는데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대단한 연기를 해주셨다."

영화를 보면서 든 궁금증 하나는, 영화 후반부 박 처장(김윤석)이 한병용(유해진)의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실에 들어갔을 때 했던 자기 고백의 진위였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 신을 찍을 때 김윤석 선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말은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박 처장만의 거짓말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는 것처럼 모호하게 연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실제로 당시 박 처장은 자신이 평남 용강 지주의 아들이었는데 공산당이 쳐들어와 가족을 몰살했다고 말하고 다녔다더라. 그런데 용강 출신의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도 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더라. 작은 마을의 지주 집안이면 누구나 알았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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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대부분 실존 인물이지만, 중·후반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연희(김태리)는 가상 인물이다. 이 인물이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많은 관객이 공감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각성이 이뤄지는 동기가 영화적으로 아쉽게 표현됐다는 반응도 적잖다. 잘생긴 대학생 때문에 각성하게 된 것 아니냐는 주체성에 대한 지적이다.

"저나 김태리 씨 모두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연희의 변화가 잘생긴 대학생이나 운동화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가족이 직접 정권의 폭력을 겪고 나서 결심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호흡을 맞추다 보니 그런 오해도 하실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시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또 상대적으로 영화에 여성 캐릭터가 적다는 지적에 대해 감독은 "일부에서 '역사에서 여성을 지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한 내 발언이 앞뒤 맥락이 잘리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나도 딸을 키우는 아버지다. 현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이유 없이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으로서 역사에 여성이 없다는 식의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해명했다.

장준환 감독은 1987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최루탄 냄새가 많이 나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영화에서처럼 어쩌다가 광주 5.18의 진상을 다룬 비디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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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987년, 그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면 어떤 인물이 됐을 것 같느냐"고 묻자 "술은 좋아하지만 최 검사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 같고, 아마도 황 박사(박종철 부검의)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끝내 진실을 쓸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내 자식에게 어떤 시대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라도 말이다."라고 답했다.

장준환 감독은 이날 '1987'이라는 숫자 패치가 달린 캡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내인 문소리가 영화 스태프들을 위해 제작해 선물한 모자라고 했다.

부창부수라는 말은 장준환-문소리 부부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장준환 감독은 지난해 문소리의 연출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에 남편 역할로 출연했다. 문소리는 남편의 컴백작 '1987'의 엔딩 데모신에 "호헌철폐! 독재 타도!"라는 함성으로 힘을 보탰다.

훌륭한 배우이자 전도유망한 후배 감독이 된 문소리에 대해 "'여배우는 오늘도' 개봉 때는 팔불출 같아서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수줍게 웃어 보였다.

장준환 감독 만큼이나 문소리 역시 '1987'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시사회 날 문소리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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