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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우상호 "민주주의는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역사"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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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관람 소감은?
"영화 보는 내내 먹먹했다"
"당시 생명 위협 느꼈지만 투쟁에 몰입"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접한 계기는?
"박종철 은폐?조작, 예상했지만 사실 확인에 크게 놀라"
"결국 드러난 진실…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 기억 속 '故 이한열' 열사는?
"'오늘은 물러서지 말자' 했던 날, 이한열 부상"
"6월 항쟁, 민주주의를 외쳤던 희생자들의 역사"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필요"


▷ 주영진/앵커: 이어서 여러분께 전해드릴 소식은 영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6월 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서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에서는 특집으로 여러 분을 인터뷰 해서 방송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1987년 그리고 뜨거웠던 그 해 6월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다뤄보려고 합니다.

▷ 주영진/앵커: 지난해 6월 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다룰 때도 모셨던 분입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회장으로 거리에 나섰던 분이시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어서오십시오.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안녕하십니까?

▷ 주영진/앵커: 같은 주제지만 조금은 다른 내용을 이야기도 할 것 같고요. 또 같은 이야기도 할 것 같습니다. 저 1987 영화 보셨습니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어제 문재인 대통령 보실 때 그 옆 자리에서 같이 봤습니다. 뭐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6월 항쟁 당시에 부산 지역 항쟁을 총괄기획했던 분이라 아마 느끼는 감정이 우리 둘이 좀 같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영화 보는 내내 옆에서 우시는 거를 봤어요. 저도 같이 울면서 봤지만. 뭐 먹먹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SNS에 어떤 분이 글을 올리신 거 보니까 1987 영화를 잘 보기는 했는데 조금 아쉽고 섭섭한 게 당시 서울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 부산인데 부산 지역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도 봤는데 말이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때 뭐 부산 말고도 광주, 대전, 대구 뭐 다 대단했죠.

▷ 주영진/앵커: 1987 영화 후반부에 그 부분이 나오지 않습니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네, 그런데 이게 주로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서 이한열 열사로 막을 내리다 보니 주 무대가 서울로 이렇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제 그 장준환 감독도 제작자가 그렇게 설명을 하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총학생회장이 되신 게 언제입니까, 정확하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가 87년 3월 둘째 주 선거에서 당선이 됐으니까요. 그러니까 3월에 당선돼서 6월에 항쟁을 말하자면 지휘하게 된 것이죠.

▷ 주영진/앵커: 그러면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질식사했을 당시 87년 1월이지 않습니까? 영화 속에 보면 1월 14일 밤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다음 날 어쨌든 간에 부검 영장 뭐 이렇게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 나오는데 그 당시에는 우상호 의원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졌을 때 연세대학교에서는 어떻게 투쟁을 하셨어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저는 당시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를 할 거냐, 말 거냐를 고민하고 있었던 시기였고요. 박종철 열사 사건이 나고 나서 제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게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내 동료, 후배들이 고문으로 죽어가는 세상에서 뒤로 물러설 수 없겠다 이런 생각을 했고요. 당시 두 번의 추모식이 있었는데 집회가. 하나는 2월 7일, 한 번은 3월 3일. 그때는 저도 거리에 나가서 같이 저렇게 구호를 외치고 거리에서 투쟁을 했었죠.

▷ 주영진/앵커: 1987년 우상호 의원에게 1987년은 어떤 한 해였습니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종철, 이한열 그분들처럼 내가 항쟁에 참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겠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도 이 나라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진짜 투쟁에 몰입하는 그런 시기였죠. 그런 많은 국민들의 참여 속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한 뭐라고 할까요. 전환의 계기를 만든 그런 한 해라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시청자 여러분, 시청자 여러분은 1987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1987 영화와 관련해서 1987년을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팀에서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 주영진/앵커: 맨 마지막 스틸컷에 나왔던 저분을 아마 87년 6월 항쟁 30주년 때도 찾았는데 누구인지, 어느 분인지 아직 확인이 안 됐던.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저 사진은 광주 사진입니다.

▷ 주영진/앵커: 광주 지역 사진인가요? 아직 어느 분인지 확인이 안 됐다는 그런 기사를 제가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처음 1월에 알려졌습니다만 그때 알려졌던 기억하고 나중에 실제 죽인 사람들이 조작됐다라는 내용. 그 당시에는 학생회장이었으니까 분명히 기억을 하실 것 같은데 상당히 충격적이지 않았습니까? 김승훈 신부의 그 기자회견.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실은 저희는 저희 동료나 선후배들 중에 고문당해 본 사람이 꽤 있으니까요. 물고문을 통해서 박종철 열사가 숨졌다면 절대 경찰 2명의 힘만으로는 고문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런데 이제 당시 경찰이 그걸 축소, 은폐 조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들 의심하고 있었죠. 우리 다 해봤는데, 당해봤는데 어떻게 2명이 건장한 20살의 청년이 몸부림치는 거를 누를 수 있었겠느냐. 그런데 그게 이제 5월 18일에 사실로 확인됐을 때 사실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죠.

다 엄청나게 은폐했을 텐데 어떻게 김승훈 신부님이 이걸 알아내서 폭로하실 수 있었지? 나중에 이제 감옥에 있던 이부영 선배님, 또 한재동 교도관 이런 분들이 용기 있게 그것을 바깥으로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역사는 이렇게 아무리 철통같이 막으려고 해도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이게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때 결국 진실은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그 전달된 진실 때문에 분노한 국민이 일어난다, 이렇게 확신하고 있었죠.

▷ 주영진/앵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까지 지내셨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네.

▷ 주영진/앵커: 정치인으로 기억을 하지만 민주화 운동과 동시에 그 이전에는 동아일보 기자였다는. 아마도 기자였기 때문에 교도소 안에서 교도관이 했던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까. 그냥 넘어가지 않고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부영 선배님 말씀은 교도관의 이야기를 퍼뜨렸다기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처음에 듣고 당시에 조한경 경찰관, 같이 감옥생활 한 분한테 접촉을 해서 직접 확인하셨대요. 기자, 그게 기자 정신이죠.

▷ 주영진/앵커: 확인이죠. 들은 내용을 확인하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렇죠, 그러고 나서 확인이 되니까 다시 그 교도관을 통해서 바깥으로 사실을 전달한 것인데 저도 감옥생활 해봤지만 그 안에서도 그렇게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하신다는 게 저는 참 쉽지 않은 일인데.

▷ 주영진/앵커: 동시에 그렇게 알게 된 내용을 감옥 밖으로 알린다는 게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 당시가 얼마나 엄혹했던 시절입니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게 만약에 발각되면 이부영 선배 본인뿐만 아니라 그 교도관은 직업을 잃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어제 영화 그분도 같이 봤는데 어제 이한열 어머니도 그러시더라고요. 저분이 진짜다. 저거를 어떻게 자기 직업을 걸고 진실을 바깥으로 전달할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아마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이렇게 소리 없고 이름이 없는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기를 걸고 조금씩조금씩 이렇게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생긴 그런 항쟁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건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 주영진/앵커: 그러면 지난해 6월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에 나와서 당시 긴박했던 상황, 교도소 안에서 알게 된 상황을 어떻게 밖으로 전달했는지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에서 인터뷰했던 영상이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인터뷰를 하는데 말이죠. 우리는 보통 한재동 교도관을 기억하는데 또 새로운 인물이 한 명 더 등장을 해요. 지금 전병용 씨. 사실은 한재동 교도관을 통해서 전병용 교도관한테 쪽지가 전달되고 전병용 교도관이 김정남 전 수석에게 전달을 한다는 거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영화에서는 이름이?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영화에서는 그래서 한 분만 나오기 때문에 한재동 씨의 한 자와 전병용 씨의 병용을 따서 한병용으로 나옵니다, 교도관이.

▷ 주영진/앵커: 유해진 씨가 맡았던 역할이군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렇습니다. 두 분을 한 분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극중 인물로 만든 것이죠.

▷ 주영진/앵커: 한재동, 전병용이라는 두 실제 인물을 한 사람으로 축약해서 영화에서 표현을 하려다 보니 이름을 한병용으로 했다. 또 숨겨진 이야기를 우리 우상호 의원은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한재동 전 교도관이 이부영 의장과 당시 같이 나왔거든요. 그 당시에 어떤 인터뷰,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제가 여쭤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87년 그 당시에 어떤 심경으로 그 쪽지를 밖으로 전달했는지 직접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한재동 교도관님이 말씀하신 거 지금 들어봐도 상당히 역사의식이 있던 교도관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니, 어제도 대통령과 영화 보기 전에 사전 간담회 할 때 저분이 갑자기 일어나서 이한열 열사 어머니한테 박종철, 이한열 열사 가족들한테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왜 인사를 하세요? 그 훌륭한 일을 하시고 그랬더니 아까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사실은.

▷ 주영진/앵커: 지금 화면에 막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람입니다.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런데 박종철 열사의 은폐 조작 사건을 사실 폭로하지 않았더라도 6월 항쟁은 어차피 진행되는 거고 학생들을 상대로 직격 최루탄을 쏘는 경찰들의 직격 최루탄은 여전히 난무했기 때문에 어차피 누군가는 희생됐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저분이 죄송해야 할 일이 아니죠. 그때 가해자였던 전두환 정권에 관련된 사람들이 죄송해야 할 일이지 아무 죄 없는 저 교도관이 왜 죄송하다고 하는지. 어제 참 뭉클했어요, 그 말씀 듣는데.

▷ 주영진/앵커: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으로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서 고문치사 사건도 조작, 은폐됐다고 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기자회견 이후에 전국적으로 민심이 들끓고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6월 9일인가요? 지금도 그날은 잊지 않고 계실 것 같은데.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학교 교문 앞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쓰러지게 되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네, 그날 집회는 다음 날 6월 10일에 시청으로 집결하기 위한 사전 집회 성격인데 그 집회를 주도하면서 제가 오늘은 물러서지 말자. 오늘 물러서면 내일도 물러서고 영원히 우리는 물러서게 되기 때문에 민주화는 못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아마 한열이가 그 이야기를 굉장히 귀담아듣고 자기 마음에 내면화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최루탄이 터졌을 때 교문에서 저렇게 다 후퇴했을 때 저 친구가 후퇴 안 하고 거기 앞을 지키고 있다가 최루탄에 희생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때 다 뒤로 후퇴했던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많이 울었어요. 한열이는 왜 두려움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저렇게 안 물러서고 저렇게 싸우다가 희생됐는데 우리는 뭔가. 말로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던 비겁한 놈들 아니냐 이런 생각에 많이 울고 병원에서 한열이 지키면서 그다음에 거리에서 더 열심히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죠.

▷ 주영진/앵커: 이한열 열사의 죽음까지. 그래서 87년 6월 거리로 나섰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더 이상 고문 없는, 최루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목소리 높여서 외쳤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우상호 의원이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고 이한열 열사의 선배이기도 하시고요. 당시 우상호 의원을 상징하는 사진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찾아서 준비를 해 봤습니다. 우상호 의원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계시는 거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런데 저 사진에 옆에 있는 배우 우현 씨는 맞는데.
 
▷ 주영진/앵커: 연세대학교 학생회 사회부장이었고.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 옆에 지금 배우 안내상이라고 돼 있는데 저분은 안내상 씨가 아닙니다.
 
▷ 주영진/앵커: 저분은 안내상 씨가 아니에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워낙 둘이 친하니까, 저랑 워낙 당연히 안내상 씨가 아닐까. 안내상 씨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거는 사실이지만 총학생회 집행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 저 앞에 있지는 않았고요. 저분은 당시에 교육대학 학생회장 했던 분입니다.
 
▷ 주영진/앵커: 연세대 교육대 학생회장 하셨던 분이고. 우현 씨 저 모습, 아마 이번 1987 영화에서 치안본부장으로 나왔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이었지만 영화 속 1987에서는 치안본부장, 반대편 쪽 사람으로 나왔죠? 저 당시에 말이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정말 국민들을 너무 우습게 봤던 브리핑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래서 그때 저희 그때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그러면 전두환 앞에 놓고 책상 한번 쳐보자. 탁 치면 억 하고 죽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국민을 현혹시켰기 때문에 더 분노했던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우상호 의원,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87년 6월이 우상호 의원에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한열 열사를 떠올리면 우상호 의원, 지금도 눈시울이 많이 붉어지셨는데요. 이한열 열사에 대해서 우상호 의원이 했던 이야기, 그 영상도 저희가 찾아봤습니다.

▷ 주영진/앵커: 우상호 의원님, 1987년 6월 그때 떠올리면 정치를 하게 된 초심도 아마 같이 떠올리시게 될 것 같은데요. 1987 영화, 1987년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께 우상호 의원이 기억하시는 그래서 왜 우리가 그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주의라는 게 결국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 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자유로운 환경이 생겼다는 것을 우리가 잊으면 마치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 때 촛불집회 나갔던 것처럼 30년이 지나도 우리 아이들 세대가 또 거리에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희생되고. 저는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절대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가다듬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 주영진/앵커: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네, 이 영화를 그래서 저는 처음에 만들 때 저도 자문을 해줬습니다만 이 영화가 과연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상영될 수 있겠냐. 한 2년 전부터 준비를 한 영화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가 참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굉장히 밀도 있게 잘 다뤄져서 저는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꼭 좀 보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주영진/앵커: 우상호 의원께서 중요한 점 지적해 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87년 6월 항쟁은 지금의 여야 정치적 지향점을 떠나서 모두가 함께 기억하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 아니겠습니까?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87년 6월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1987이라는 영화가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단 하나,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동의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우상호 의원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고맙습니다.

▷ 주영진/앵커: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오늘 마무리하면서 1987 영화 장면, 87년 6월 당시의 시위 화면 모아서 저희가 영상을 준비해 봤습니다. 노래는 민중 가요가 아니고요. 1987년에 아마 가장 많이 울려퍼졌던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래 가사가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후에 그날이 생각날까,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 가사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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