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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 외면한 전염병연구소와 전북대 총장 ①

'국가재난질병' 연구 외면한 전염병연구소와 전북대 총장①
흔히 우리는 과학은 정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지저분하고 은밀하며 문제투성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과학은 깨끗하고 순결하며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학'과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과 정치는 함께 가는 '공생관계'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연구비가 필수적인데, 그 연구비를 이른바 '네크워크'로 불리는 '인맥' 등을 통해 찾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수의 과학자는 묵묵히 이룬 연구 성과를 통해 연구비를 받습니다.)

앞서 저는 2차례 걸쳐 '전북대학교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부적절한 운영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2003년 이후 이어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I'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가 'AI 긴급 백신'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AI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커 병원체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생물안전등급 3급(BL3' 시설에서 실험해야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백신 개발에 나설 제약회사에 '생물안전등급 3급' 시설을 갖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에서 실험하라고 권고했는데, 정작 국가방역정책에 이바지 해야 할 연구소는 돈벌이를 위해 대기업(LG화학)의 연구를 대행해주고 있었습니다.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라고 나랏돈 371억 원을 들여 지은 연구소가 대기업 연구를 대행하며 돈벌이에 나서며, 국가방역정책은 지장을 받는 것입니다. 연구소 설립 취지와 국가 정책에 대한 고민보다 조직을 키우기 위해선 그저 돈을 가져오면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드러나는 거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1) [SBS 8시 뉴스 단독]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대기업 용역 실험?  http://bitly.kr/bhBw
(2)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http://bitly.kr/J21


이에 앞서 2차례 보도에서 미처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연구소 책임·관리자인 전북대학교 이남호 총장에 추가 설명을 요구했고, 이 총장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이 총장의 해명이 얼마나 타당하고 합리적인지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반론권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해명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이남호 전북대학교 총장
이남호 총장 해명 1. "연구소는 과제 성격에 따라 연구를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연구소가 대기업 연구를 대행하며, 국가재난연구에 악영향을 끼쳤다."라는 지적에 대해 이남호 총장은 "그렇지 않다. 정부 연구과제는 과제대로, 지자체나 기업 용역과제는 그 과제대로 연구를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설립 취지는 연구소가 홈페이지에 스스로 밝혔듯, 'AI'와 같은 '국가재난질병 연구'입니다. 대기업에 동물실험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어오라고 세운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익이 안 나기에 민간에서 하지 않는, 하지만 국민 공중보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염병 연구를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달라는 것입니다.

AI로 지금까지 땅에 묻힌 가금류는 7천2백만 마리, 직·간접 피해액도 1조 원에 달합니다. 'AI 긴급 백신 개발'은 중요한 국가방역정책으로, 연구소는 설립 취지에 따라 실험실을 제공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연구소는 돈을 좇아 대기업 연구를 대행했고, 그 때문에 백신 개발에 나서야 할 제약사들은 연구시설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남호 총장은 "정부 연구 과제를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교육자이자, 장관급 고위 공무원의 현실 인식이라고 보기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좀 더 들어가, 시간을 거슬러 2015년 8월 3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이남호 총장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개소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신개발은 예방적 대응방안으로서 인수공통전염병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다."

연구소 비전과 관련해 '백신개발 연구의 중요성'을 힘줘 강조했던 이남호 총장은 불과 2년여 만에,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백신 개발 연구를 매몰차게 외면했습니다. 자신의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으로, 전형적인 '언행 불일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쉽게 바뀐 이유는 역시 '돈'이었습니다. 국립대학이라는 거대한 교육기관을 이끌어가는 '장(長)'으로서 적절한 판단인지 진지하게 곱씹어보게 됩니다.
AI 백신 연구 거부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이남호 총장 해명 2. "용역 과제 수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총장이 관여하지 않는다."
 
"연구소가 'AI 백신' 실험을 거부한 것이 연구소장 개인의 판단인지, 아니면 총장을 포함한 대학의 판단도 포함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이남호 총장은 "용역 과제 수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연구소에서 한다. 총장이 관여할 사안도 아니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요? 취재과정에서 복수의 전북대 및 해당 기업 관계자는 "연구소장이 LG화학의 용역 연구를 수행하겠다고 총장에게 보고했다."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재원들은 또, 소장 보고에 대해 "총장도 조직에 돈이 들어온다며 흔쾌히 수락해 사업이 진행됐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연구소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총장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남호 총장이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면 연구소장이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반대로 연구소장이 보고했다면 이 총장이 거짓 해명을 하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 이에 대해 이남호 총장은 추후에 입장을 알려주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 연구소 운영에 대한 의사 결정을 누가 하느냐?"라는 추가 질문에 이남호 총장은 "연구소 내에 자체 운영위원회가 있어 일상적인 연구는 자체적으로 논의하며, 중요 정책에 관해서는 연구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본부 차원의 최종 논의를 거쳐 정책 결정이 이뤄진다."라고 답했습니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 즉, "총장이 관여할 사안도 아니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설명입니다. 같은 내용의 질문을 조금 다르게 물었을 뿐인데, 맥락이 전혀 상반된 답변을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연구소 자체 운영위원회에서 대기업 용역사업을 수행 하겠다는 회의록이 남아 있다면 제시해 달라."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이남호 총장은 아직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AI 백신 연구 거부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설사, 총장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연구소장은 독단적인 판단으로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용역 연구를 받은 것이고, 그로 인해 결론적으로 국가 방역 정책에 지장을 줬습니다. 그건 저희 취재진이 확보한 연구소 내부 문건으로도 확인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연구소장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 이남호 총장 자신도 대학 총괄 책임자로서 사과하는 게 상식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하지만, 전북대학교 고위관계자는 "연구소장의 개인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라는 입장만 밝혔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 외면한 전염병연구소와 전북대 총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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